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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 2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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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일본인들의 울릉도-독도 인식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울릉도-독도 인식

에도시대 일본인들에게 독도는 울릉도로 가기 위한 이정표 정도의 가치를 넘지 않는 것이었으며, 중요한 것은 울릉도였다. 에도시대 조일간 외교분쟁(안용복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일본의 울릉도 점유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시기 일본인들에게 독도는 울릉도에 딸린 자그마한 바위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울릉도가 조선의 땅이라면 독도는 당연히 울릉도에 부속된 子島로서 조선의 땅으로 인식된 것이다.

1592년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등이 제작한『조선국지리도(朝鮮國地理圖)』에 들어 있는 ‘팔도총도’와 ‘강원도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于山島와 鬱陵島로 표기되어 정복대상지 조선의 영토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 우산도가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로 울릉도 보다 강원도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동국여지승람의 동람도(東覽圖)를 모방한데서 발생한 결과라 생각된다. 아무튼 이 지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산도와 울릉도 두 섬이, 즉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조선의 영토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인식은 큰 변화 없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에도시대 일본인들에게 이어진다.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우선 1667년 이즈모(出雲)의 관리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명에 의해 오키섬을 돌아보고 보고 느낀 바를 채록한『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의 기록을 들 수 있다.

“은주는 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은기도다. ... 북서쪽으로 이틀 낮 하룻 밤을 가면 송도가 있고 또 하루를 더 가면 죽도(속언에 기죽도라고 말하는데 대나무, 물고기, 물개가 많다. 생각건대 신서에 나오는 소위 오십맹이 아닐까)가 있다. 이 두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에서 은주를 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땅은 이 주로 한계를 삼는다(隱州在北海中 故隱岐島 ... 戌亥間 行二日一夜有松島 又一日程有竹島(俗言磯竹島多竹魚海鹿 按神書所謂五十猛歟) 此二島無人之地 見高麗如自雲州望隱州 然則日本之乾地 以此州爲限矣).”

위 자료를 볼 때, 당시 돗토리, 이즈모 등지의 사람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와 송도로 부르면서 이 섬들과 해역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오키섬 사람들은 울릉도에 대한 출어가 계속되었으므로, 이 해역의 정보에 밝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독도를 은기도에서 울릉도로 가는 노정에 중요 이정표로 삼고 있었다는 것, 울릉도가 풍요로운 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섬을 은기도와 비교하면서 은기도가 일본에 속해 있는 것과 같이,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에 속해있는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일본의 주장대로 송도 즉, 독도에 대한 위와 같은 정확한 정보는 시마네현이나 돗토리현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히 후대까지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선대의 자료들이 구전 혹은 전사되는 과정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들은 관찬(官撰)자료가 아니라 개인이 만든 사찬(私撰)자료가 대부분으로서 지리적 정보가 비교적 정확한 대신, 영유권에 대한 인식은 모호하거나,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寶曆년간(1751-63)에 기따구니 미찌앙(北园通葊)이 인슈우(隱州)사람 모씨가 구술하는 바에 의해 편찬했다고 하는『죽도도설(竹島圖說)』에는 “隱岐國 松島의 西島로부터 海上道程으로 40리쯤 북방에 한 섬이 있으니 이름을 竹島라고 한다. 이 섬은 일본에 접하고 조선에 인접하였는데 지형은 삼각으로 주위는 대충 15리 정도 ... 호슈(伯州) 요나코(米子)로부터 죽도까지 海上道程 160리 정도가 된다. 요나코에서 이즈모로 나와 오키의 후쿠시마(福浦)에서 松島까지는 海上道程 60리정도, 송도에서 죽도까지는 40리 가량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의 諸說은 享保 9년(1724) 官府(에도막부)의 하문에 의하여 요나코의 백성 大谷九右衛門 및 村川市兵衛라고 하는 자의 答書에 의거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울릉도의 지형과 가는 길 등은 자세히 적혀 있는데, 송도 즉 독도를 은기의 부속도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1823년 大西敎保가 은주시청합기를 기초로 하고, 또 오키섬 어부 등의 실재 경험담 등에 의하여 은주시청합기를 증보, 수정한 ‘隱岐古記集’에서는 “섬의 총둘레 16里(은기군도 도고섬을 가리킴) ... 亥의 방향으로(북서향) 40여리에는 松島가 있다. 주위는 약 1리 정도이며 果樹가 없는 巖嶋라고 한다. 또 서방 70여리에는 竹嶋라고 전해오는 대나무가 무성한 큰 섬이 있다. 여기서 조선을 바라보면, 은주에서 운주를 보는 것보다 더 가깝다고 한다. 지금은 조선 사람이 와서 살고 있다고 하며, 여러 곳의 뱃사람에게 물으니 방향이 사실 그러하다.”고 되어 있다. 죽도와 송도의 위치와 그 형상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에도시기 일본에서는 죽도(竹島-울릉도)와 송도(松島-독도)가 조선의 영토이며, 송도가 죽도에 딸려 있는 섬이라는 사실, 죽도는 조선에 가까이, 송도는 일본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된 채, 차츰 이 해역에 대한 구체적인 지리적 정보는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것은 울릉도, 독도가 일본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일본의 땅이 아니었으며, 앞에서 살펴봤듯이 안용복 사건 후부터는 그 나마 이 해역에 대한 제한적 출항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1785년에 일본 최고의 지리학자이며, 지도제작의 대가였고 또 대표적 경세가였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만든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를 들 수 있다. ‘삼국접양지도’는 하야시의『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에 수록된 부도 5장 중 하나로, 일본을 둘러싼 3국을 색깔을 달리해 구분하여 그려 넣은 것이다. 이 지도에는 조선해(동해)에 조선의 색으로 칠해진 섬이 3개 그려져 있다. 영일만 앞 바다에 이름 없는 큰 섬이 그려져 있고, 바다 한 가운데 비슷한 크기의 섬에는 竹嶋라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이름 없는 작은 섬이 붙어 있다.

여기서 영일만 앞 바다의 섬은 울릉도를 그린 것이다. 『삼국통람도설』의 또 한 장의 부도인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之圖)’에는 영일만 오른쪽에 섬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울릉도 천산국(鬱陵嶋 千山國)’ 이라 적혀 있다. ‘삼국접양지도’에 그려진 영일만 앞의 섬은 바로 이 섬을 그린 것으로 봐야 한다. 다음으로 바다 가운데 竹嶋라고 쓰여진 섬 역시 울릉도를 그린 것이다. 에도시대 일본은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 독도를 마츠시마(松島)라고 불렀으니, 죽도는 바로 울릉도이다. 결국 이 지도에는 울릉도가 2개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죽도에 바짝 붙여져 있는 이름 없는 작은 섬은 무엇일까. 이 섬을 울릉도 주위의 댓섬 정도로 볼 수 없는 것은, 지도의 축척 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같은 지도안에 그려진 일본의 은기도 등이 섬 1개로 그려져 있는 등 이 지도의 제작방식 상 섬 주위의 작은 바위나 섬들을 그려 넣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 섬은 바로 독도를 그린 것이다. 당시 독도는 울릉도로 가는 이정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굳이 송도라는 이름을 적어 넣을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며, 독도가 울릉도에 딸려 있는 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울릉도에 바짝 붙여 그린 것이다.

실재의 거리와는 달리 붙여 그려진다는 것은, 지리적 정보에 밝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나, 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거리를 가지고 영속관계를 표현하려는 고지도의 특성을 이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던 하야시가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 채 영일만에 바짝 붙여 그린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경우는 하야시의 지도만이 아니다. 그리고, 죽도의 왼쪽에 조선의 것(朝鮮ノ持ニ)이라고 기입해 놓은 것은 안용복 사건의 영향으로 이 섬들이 조선의 것이라는 것을 특기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 특기의 방식 역시 독도를 울릉도에 딸려 있는 섬이라 파악하고 두 섬의 영속관계를 묶어서 한꺼번에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울릉도가 바로 죽도인 것을 모르고 울릉도와 죽도 2개의 섬을 그린 것은 안용복 사건이후로 이 섬들에 대한 지리적 정보가 어두워져 갔던 결과였다. 그것은 죽도 아래에 적혀 있는 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 섬으로부터 隱州(오키섬)를 볼 수 있고, 또 조선을 볼 수 있다”고 적어 놓았다.” 이것은 “이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일본 본토인 이즈모에서 오키섬을 보는 것과 같다”는 1667년의 『은주시청합기』의 내용과 다르다. 실재 울릉도에서는 약 160킬로 떨어진 오키섬을 볼 수 없다.

이 섬들의 동남쪽에는 일본 색깔(녹색)로 칠해져 있는 은기도가 그려져 있다. 결국 은기도 서북쪽 바다에 놓여져 있는 섬들은 모두 조선의 것이며, 이 섬들이 있는 바다는 조선의 바다인 것이다. 지리적 정보는 어두워져 가지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이며 그 바다가 조선해(朝鮮海)라는 것. 하야시의 지도들은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울릉도-독도와 그 주변 바다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당시의 대표적인 역사적 자료라 할 수 있다.

서양세력의 영향이 있기 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르고노트-죽도, 다줄레-송도로 연결시킨 지볼트의 日本圖(1840년)가 나오기 전에 일본 스스로 그린 일본지도 몇 개를 더 살펴보자.

1835년 그려진 청조일통지도(淸朝一統地圖). 이 지도에는 조선의 강원도 옆에 울릉도와 독도를 울릉과 자산(子山), 즉 우산으로 그려 넣어 두 섬이 우리나라 땅이란 것은 분명히 했는데, 울릉과 자산(우산-독도)이 곧 죽도와 송도인지 모르고 일본 가까이에 또 다케시마와 마츠시마로 표기한 2개의 섬을 그려 놓았다. 그런데 일본에 가까운 이 두 섬 역시 색깔은 조선의 영토로 되어 있다. 섬이 4개가 되었다.

1867년 편찬된 대일본방정전도(大日本防正全圖)는 일본의 각 지방을 색깔로 구분하여 그린 일본 전국도이다. 여기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 그려져 있는데, 은기 북쪽에 두 개의 섬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송도라는 명칭은 없고, 두 섬에 걸쳐서 竹島라고 표기되어 있다. 송도를 죽도의 속도로 보고 두 섬을 죽도라고 통칭했을 수도 있다. 즉, 송도는 ‘죽도 곁에 있는 작은 섬(竹島外一小島)’으로 파악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에도시대의 일본인들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인식은 명치시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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