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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전부터 독도서 강치잡이

독도 ‘실효적 지배’ 새 근거] 1890년 이전부터 독도서 강치잡이


독도 영유권과 관련,일본이 1905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시마네현 편입 조치를 주장하기 이전에 한국이 이미 실제로 독도를 이용했다는 새로운 근거가 제시됐다.

수도권대기환경청 선우영준 청장은 곧 출간될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학위 논문 ‘독도 영토권원에 대한 연구’에서 1889년 이전 울릉도민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았고,1904년과 1905년 이를 일본에 수출했다는 사료 해석을 내놓았다. 논문 심사위원들은 경제적 목적을 갖고 독도를 실제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한국 국민의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입증할 실마리가 된다고 평가했다.

논문에 따르면 1900년 울도고시 공포 전인 1889년 이전에 이미 울릉도에 거주하던 한국인과 일본인이 독도에 가서 강치를 잡은 기록이 있다. 울릉도 체류 일본인의 벌목 및 행패를 조사하기 위한 한·일 공동조사단 한국측 책임자인 우용정이 쓴 ‘울도기’ 후록에 “(일본인과) 함께 고래를 잡았으나 그 고기와 기름을 나누지 않았다(甚至於同約捕鯨而不分其肉油)”고 씌어 있다. 선우 청장은 울릉도에서는 당시 고래잡이가 불가능했으므로 고기와 기름을 얻을 수 있는 동물은 강치밖에 없다고 논증했다.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은 또한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매년 가죽 800관(600엔)씩 일본에 수출한 기록이 1907년 시마네현 다께시마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책 ‘죽도 및 울릉도’에 나온다. 당시 한국인 노동자 일용 임금이 최대 0.6원이라고 기술했다. 이 논문은 그간 일본이 “한국 사람들은 강치가 있는 줄도 몰랐고,잡지도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논문 심사위원인 임영정 전 동국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은) 장차 국제 법정에서 (실효적 지배의) 하나의 근거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교수는 그러나 “선우씨의 논증은 아직은 가설 수준으로 국내외에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반박과 재반박,철저한 고증 등 보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 강치는 물개를 닮았지만 좀 더 크며 동작이 느리고 항상 바위 위에서 잠을 잔다. 수컷 성체는 길이가 3m에 달하고 무게는 560㎏에 이른다. 일부다처제로 수컷 한 마리가 암컷 약 30마리를 거느린다. 수컷은 어류와 오징어를,암컷과 새끼는 어류 외에 미역줄기를 즐겨먹는다. 암컷 큰 것은 180㎝ 정도. 독도 부근에 1만마리 단위로 몰려 왔지만 일제시대 때 남획으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고기맛이 고래고기의 붉은 부위와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항 전문기자
hnglim@kmib.co.kr 2006-07-26 19:04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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