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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시마네현 고시’ 원천무효 길 텄다



[독도 ‘실효적 지배’ 새 근거] 日 ‘시마네현 고시’ 원천무효 길 텄다


대한제국이 1900년 10월 27일 칙령으로 공포한 ‘울도(鬱島)고시’에는 울도 관할구역으로 울릉도와 석도를 언급하고 있다. 이 울도고시는 일본이 독도의 영토편입조치를 완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마네현 고시’보다 5년 앞선 것이다.

따라서 석도가 독도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점과 울도고시 공포 전후에 이미 한국인들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이용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면 시마네현 고시는 원천적으로 무효가 된다. 일본은 한국이 역사상 한 번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적이 없기 때문에 1905년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국제법적으로 적법하게’ 독도를 선점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무주지(無主地)에 대해서만 선점이 가능하므로 이는 무효다.

◇독도서 잡은 강치 일본 수출=선우 청장의 논문은 먼저 시마네현고시에 앞서 한국인들이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서 일본에 수출하고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1907년 시마네현 다케시마(竹島)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奧原碧雲)이 쓴 ‘죽도 및 울릉도’에 따르면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이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매년 가죽 800관씩 일본에 수출한 사실이 나온다. 강치 가죽 800관은 약 286마리분에 해당된다. 이는 같은 기간 일본인들이 일본 땅인 오키시마(隱岐島)를 근거지로 독도에서 매년 2800여두씩 강치를 잡은 것과는 따로 이뤄졌다.

또 다케시마 조사단은 1906년 3월 울릉도와 독도를 돌아 봤으며 시마네현 소학교 교장인 오쿠하라는 군수와 한국인들이 결성한 사상의소(상공회의소에 해당)를 방문,여러가지 조사를 했다. 오쿠하라는 사상의소가 강치,오징어 및 전복 등의 일본 수출을 주관했고,수입은 일본측 일상조합에서 주관했다고 적었다. 울릉도민들은 또한 같은 기간에 오징어와 말린 전복도 소량 수출했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강치잡이를 하지 않았다거나,울릉도 거주 일본인들의 피고용인으로서만 독도에 가서 강치를 잡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오쿠하라에 따르면 시마네현의 어업인인 나카이(中井養三郞)가 오키시마에서 출항해 독도에서 강치를 잡았고,물과 식료품도 오키시마에서 조달했다고 거듭 말했다. 만약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를 거점으로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했다면 항해거리가 두배가 되고 처리시간도 지연돼 비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1889년이전 독도서 강치잡이=1900년 울도고시 공포이전인 1899년 이전에 이미 울릉도에 거주하던 한국인과 일본인이 독도에 가서 함께 강치를 잡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록도 제시됐다. 6일 이상 울릉도와 독도를 시찰한 우용정이 쓴 ‘울도기’의 후록에 나오는 ‘심지어동약포경 이불분기육유(甚至於同約捕鯨 而不分其肉油)’라는 구절에 나오는 고래가 강치라고 선우청장은 주장했다.

당시 울릉도에는 접안시설 규모가 작아서 10t급정도의 연락선이나 어선만이 정박할 수 있었다. 선우 청장은 따라서 70t이상의 포경선이나 운반선이 필요한 고래잡이는 울릉도에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안이 가파른 울릉도 지형특성상 고래의 연안몰이도 불가능한데다 포획장비도 없었다. 한국과 일본이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해 함께 포획할 수 있었던 것은 강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899년 무렵 울릉도에는 약 100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평가와 전망= 임영정 전 동국대교수는 “당장 국내에서 연구성과로 인정받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일단 보완작업을 거쳐 책으로 내면 일본으로부터 반박이나 반응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은 “(이 논문이) 울도고시에 적시된 석도가 독도임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그 후 독도의 일본 편입을 주장한 시마네현 고시는 무효라는 것이 확실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어학 연구를 통해 ‘돌섬-석도-독도’로의 변천과정을 살핀 것도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논문 심사위원장인 유인봉 교수(성균관대 행정학과)는 “광범위한 접근을 통해 기존의 국제법이나 역사학 연구성과에서는 제기되지 않은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임항전문기자 hnglim@kmib.co.kr  2006-07-26 오후 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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