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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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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막부 때, 독도 해금령 발견

울릉도, 독도는 조선땅이니 가지말라는 해금령(解禁令)발견

일본막부(幕府)때 
울릉도, 독도는 조선땅이니 가지말라는 해금령(解禁令)발견


본 사람들이 독도를 처음 알았던 것은 임진왜란 때이다.  조선에 왔던 왜장들이 동해바다 외진 곳에 사람이 살지 않은 두 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전쟁시에 일본 왜장들의 눈에는 우리나라의 탁월한 문화도 부러웠지만 울릉도의 재목이라든가 독도의 해산물 등 자연이 풍부한 것을 감탄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도에 막부를 열고 조선의 문화를 수용하고 일본 문예 부흥의 일환으로 울릉도,독도에 가서 벌목작업과 해산물 획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때 막부의 움직임과 동시에 일본에 처음으로 어선 회사를 차린 돗토리현[島取懸] 요나고[米子]출신의 오오다니 신기치[大谷甚吉]와 무라카와 이치헤[村川市兵衛]가 있었다.  이들이 도쿠가와막부에 가서 조선에 있는 무인도 울릉도,독도에 가서 고기를 잡도록 해주시라는 허가서를 신청했다.  막부의 움직임이라 하고 허가를 1617년 5월 16일에 내주었다.

아래(왼쪽) 허가서는 현재 요나고[米子]역사 사료관에 보관된 것인데, 문서 내용에는 오다니가문[大谷家門]에서 기탁한 것으로 되어있다.  길이 1m이고 폭이 50cm의 보시는 바와 같이 한자 초서체로 되어있다.

문서의 내용을 한자로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從伯耆國米子竹島江先年船相渡之由仁候, ,然者如其 冷渡致渡海 渡之段米子町人 村川市兵衛 大屋甚吉 申上付而達上聞候之處不可 有異儀之旨被仰候問被得共 意渡海之儀可被仰付候 恐恐謹言」
                                                                                                                       正月十六日
                                                                                                                       井上主計守
                                                                                                                       工井大炊頭
                                                                                                                       酒井雅樂頭

 다시 말해서 지금 돗토리현[島取縣], 시마네현[島根縣]의 옛 이름은 호키국[伯耆國]이라 했다.  호키국에 사는 무라카와[村川]와 오다니[大谷]가 어선을 만들어 동해에 출항하고 있었는데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를 잡도록 도쿠가와막부에 청원서를 냈는데, 답이 오기를 고기를 잡으러가도 좋다는 내용의 허가서를 내준 것이다.  허가서를 받은 두 회사 어선들은 출항하여 울릉도와 독도에 와서 고기를 많이 잡아갔다.
 
그때 울릉도는 향나무가 많았다.  고기를 잡으러 와서 향나무가 많은 것을 안 어부들은 귀국하여 다시 벌목인을 데리고 울릉도에 와서 향나무 외 많은 재목들을 베어 갔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향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향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일본인들에게 참 좋은 기회였다.  울릉도의 큰 나무들을 벌목해 가서 일본에 사찰을 많이 지었다.  대표적인 사찰은 교토[京都]에 있는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이다.  이 절의 기둥들은 울릉도에서 벌목해간 제목들이라고 일본 사찰 주지스님들의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독도 근해에는 세계에서 희귀한 물개가 많았다.  도쿠가와막부가 해산물 중에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은 물개이다.  오다니[大谷]어선과 무라카와[村川]어선들은 물개를 잡아 많은 수입을 올렸다.  도쿠가와 장군은 물개의 고기를 먹고 가죽은 옷을 해 입었고 장군들의 화살을 꼽는 화활통을 만들어 사용했다.  물개 가죽은 어느 지승가죽보다 질긴 것이 특징이고 또 가벼웠던 것이다.  그리고 물개를 잡아먹고 물개의 이빨(齒)을 도쿠가와 장군은 반지를 해서 끼고 다녔다.  지금의 시마네현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섬 오키섬 자료관에는 독도에서 잡아온 물개의 이빨로 만든 반지라 하고 전시되어 있다.  반지를 끼고 다녔던 사람은 도쿠가와 장군과 부인이라 기록해놓고 있다.  막부라 독도에서 획득한 수산자원은 연소득의 15%라는 설명도 곁들여 놓았다.

일본 막부에서 허가를 얻어 울릉도와 독도에 와서 벌목과 고기를 잡아가도록 허가를 낸 것은 남의 나라니까 그렇게 했을 것이다.  허가서는 마쓰다히라 호키노카미[松田平伯耆守]에게 내려져서 오다니,무라카와에게 전달된 것이다.  마쓰다히라는 지금의 시마네현, 돗토리현의 현지사(도지사)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도쿠가와막부가 현장에게 내린 공문서이다.  이때 많은 일본 어선들이 불법으로 와서 고기를 잡아가고 벌목도 해 가는 것을 알고 수영성(水營城)에서 근무하던 안용복(安龍福)이 울릉도와 독도에 가서 수비를 했고, 일본 막부에 가서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안용복은 후세에 장군의 칭호를 얻었으나 일본 막부에 가서 울릉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확인서까지 받아 귀국하다가 대마도까지 와서 일본의 괴한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안용복 장군의 막부에 가서 항의를 하고 탄원서를 낼 때 도쿠가와 장군은 울릉도와 독도에 어선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1696년 다시 문서를 호키번주(伯耆番主, 지금은 돗토리현, 시마네현)에게 내렸다.

이 문서도 허가서와 같은 크기이며, 요나고(米子)역사사료관에 있다.

문서의 내용을 한자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先年松平新太郞因州伯州領知之節相窺之伯州米子之 町人村川 市兵衛大屋甚吉竹조江渡海至今雖海之檥制 禁價申付之被仰出之候 問可被存共趣候 恐恐謹言」


                                                                                                       正月二十八日
                                                                                                          士屋相模守
                                                                                                           戶田山城守
                                                                                                           阿部豊後守
                                                                                                        大久保加賀守

다시 말해서 마쓰다히라카미[松平守]에게 이미 허가를 내주어 출항하는 오다니,무라카의 어선이 지금부터 독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이 문서가 내려진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1696년 정월 스무여섯날이다.  그러니 안용복 장군이 막부에 가서 탄원서를 낸 것이 1693년이 꼭 3년 후에 항해금지명령이 내려진 셈이다.  이번 사료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 있어서 귀중한 사료라고 판단된다.

김문길(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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