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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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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옛 기록들에 나타나는 독도

일본의 옛 기록들에 나타나는 독도

이제까지 우리는 독도에 관한 우리쪽의 문헌들을 살폈다. 그러면 일본쪽의 문헌들은 독도를 어떻게 다뤘는가?

독도에 관한 일본의 기록들 가운데 최초의 것은 1667년에 편찬된 『은주시청합기』이다. 1667년은,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숙종 바로 앞 대의 왕인 현종말기에 해당된다.
이 책의 편찬자는 사이토호센이었다. 그는 이즈모국에 속한 운주번의 관리, 곧 번사로 상관의 명령을 받고 1667년 가을에 오키시마를 순시한 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해서 『은주시청합기』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올린 것이다.

이 책에 일본의 서북 경계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이 부분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해석상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우선 원문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옮기기로 한다.

 "隱州在北海中 故云隱岐島 女安倭訓海中
  言遠故名與 南方至雲州美穗關[....]
  戌垓間行二日一夜有松島 又一日程有竹島
  此二島 無人之地 見高麗 如自雲州望隱州
  然則 日本之乾地以此州爲限矣"

그러면 이 부분을 어떻게 읽어야 하겠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우선 지적해야 할 것은 이 부분에 두 개의 섬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하나가 마츠시마, 곧 송도이고, 다른 하나가 다케시마, 곧 죽도이다. 그때 일본은 독도를 송도라고 불렀고 울릉도를  죽도라고 불렀다. 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부분을 읽으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은주는 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은기도라고 말한다. [....] 술해 사이에 두 낮 한 밤을 가면 송도가 있다. 또 한 낮 거리에 죽도가 있다. 이 두 개의 섬들은 무인도인데, 이 두 개의 섬들로부터 고려를 보는 것이 마치 운주에서 은기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서북 경계는 은주로써 끝을 삼는다.

 이 부분은 일본의 서북 경계가 은주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서북 경계 너머에 있는 두 개의 섬 다케시마와 마츠시마, 곧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인정한 셈이며, 그러므로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한 셈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일본의 공식적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은주시청합기』는 이미 1667년에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 쪽에서는 그렇게 읽지 않는다. 그들은" 이 두 개의 섬들로부터"라는 뜻의 차이도를 있는 그대로 읽지 않고, "앞에서 말한 이두개의 섬들로써" 일본의 서북부의 한계로 삼는다고 읽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는 영토 귀속 논쟁을 일으킬 때 이 문구를 들고 나온다.

그러면 어느 쪽 해석이 옳은가? 두 말할 필요조차 없이 우리 족 해석이 옳다. 일본식 해석은 의도적인 오역이며 제밭에 물끌어대기 방식임이 명백하다.

사실『은주시청합기』가 마련된 시기에 일본은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 증거를 우리가 앞장에서 살핀 1618년의 울릉도 조업 허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쿠가와 막부가 오오다니 집안과 무라가와 집안에 대해 울릉도 연해에 들어가 조업해도 좋다는 허가를 호오키 주를 통해 주었을 때,"주인을 하사하면서 이것을 가진 어민들로 하여금 다케시마 지역에 출어하게 했다"라고 일본쪽 자료는 말하고 있는데, 주인이라는 것은 외국 무역을 공인하는 증명서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일본이 다케시마, 곧 울릉도를 외국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뒷날 이점을 부인하기 위해 일본은 이 주인을 도해면 허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주인이 외국무역 허가의 성격을 지녔음은 부인 될 수 없다. 이것은 울릉도 지역이 당시 조선의 주권아래 있었음을 일본 정부가 자인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 은주시청합기』 다음으로 독도를 다룬 일본의 옛 문헌으로는 당시 일본의 대표적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던 하야시(1738~1793)가 만든 『삼국접양지도』가 있다. 하야시가 자신의 저서인 『삼국통람도설』의 부속 지도로 1785년에 만든 이 지도는 국경과 영토를 나타내기 위해 나라별로 색을 칠했다.

이 지도는 조선 국을 황색으로, 일본국을 녹색으로 각각 채색했다. 그리고 다케시마와 마츠시마를 정확한 위치에 그려 넣은 뒤 두 섬 을 모두 조선국의 색깔인 황색으로 표시했다. 그뿐 아니라 이 두 섬 옆에다 "조선의 것으로 "라는 문자까지 적어 넣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조선 영토임을 명백하게 표시한 것이다.

『삼국통람도설』의 또 다른 부속 지도인 『대일본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도 조선국을 황색으로 칠하고 일본국은 녹색으로 칠했는데 다케시마와 마츠시마를 황색으로 칠했을 뿐만 아니라. 제 자리에 정확히 그려 넣었다.18세기 후반에 일본의 지리학자가 만든『총회도』역시 이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이상에서 소개한 세 개의 지도들은, 모두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관찬 또는 준관찬의 것들이다. 이 사실은 일본의 도쿠가 정권은 물론 일본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했음을 입증한다.

특히 울릉도와 관련해서는 도쿠가와 막부는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우리가 앞장에서 보았듯, 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그 사실을 조선 조정에 공식으로 알렸던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 헌종 3년인 1837년에, 비밀리에 울릉도에 들어가 벌목한 한 큰 상인을 사형에 처해 조선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까지 했다.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새롭게 야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무사들이 1868년에 도쿠가와 정권을 타도하고 이른바 왕정복고를 통해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메이지정권을 세운 뒤부터였다. 조선 전체에 대해 침략의 야욕을 품기 시작한 그들은 우선 일본 외무성으로 하여금 조선의 내부사정을 은밀히 정탐하게 했으며, 그리하여 외무성은 1869년 12월에 세 사람으로 구성된 조사단을 조선에 보냈다.

이때 외무성은 조사단에 맡길  임무를 가운데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조선 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을 조사하는 임무를 포함시킬 것을 태정관에게 건의했다. 태정관은 어떤 특정 직제의 이름이 아니고 오늘날의 총리부에 해당되는 집합적 명칭이다. 태정관의 최고 책임자인 태정대신은 그 건의를 받아들여 이 섬이 "조선 부속으로 되어 잇는 시말"을 조사해 오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지시를 받은 3인 조사단은 조사를 끝낸 뒤『조선국교제 시말 내탐서』라는 제목이 붙은 보고서를 올렸는데, 이보고서는 이 두 섬이 "조선부속으로 되에 된 경위"를 자세히 기록했다. 이자료는 무엇보다 일본의 외무성과 태정관이 다케시마와 마츠시마가, 곧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음을 명명백백하게 증명한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조사단이 대원군 섭정 아래서 조선이 엄중한 쇄국정책을 쓰고 있음을 정확히 파악한 사실이다. 그래서 조사단은"무력을 배경으로 한 사절의 조선 파견"을 정부에 건의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건의였다. 그러나, 이한기 교수의 지적처럼,"그들은 그래도 오늘의 일본 정부와 같이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따위의 허위 진술을 하지 않은 것이 주목된다."

일본 외무성의 공무서만이 아니다. 일본 내무성의 공무서들 가운데도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 내무성은 1876년에 일본 전국의 지적을 조사하고 지도를 편제하기 위해 각 현에 조사를 지시했다. 이때 시마네 현은 울릉도와 독도를, 그들의 표현으로는 다케시마와 마츠시마를, 자기 현 지도와 지적조사에 포함시킬 것인가 제외시킬 것인가를 내무성에 물었다. 내무성은 다섯 달 남짓한 시간에 걸쳐 17세기 말에 조선과 주고받은 관계 부서들을 모두 조사했다. 그리고 나서 이 문제는 이미1699년에 끝난 문제로 조선 영토이며 "일본은 관계가 없다"라고 결론을 내린 뒤 일본 지도와 지적 조사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내부 결정을 내리고도 내무성은 태정관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자 태정관은 자체 조사를 끝낸 뒤에 두 섬에 관해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지령문을 1870년 3월20일자로 결정했다. 이 지령문은  1877년4월9일자로 시마네 현에 송달됐다. 이와 관련해, 신용하 교수는 "결국 일본 내무서와 태정관의 이 결정서는 결정적으로, 독도가 한국 영토이며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 명치 정부의 최고 국가 기관이 공문서로서 재확인하고 명확히 한 일본측 문헌의 하나인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메이지 정부의 육균성과 해군성도 자신들이 각각 만든 지도에서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다. 우선 일본 육군성 참모국이 1875년에 만든『조선전도』는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했다.

이어 일본 해군성의 지도들을 보자. 일본 해군성 1876년에『조선동해 안도』를 편찬했다. 이 지도는 러시아군함들과 영국 군함들이 측량해 만든 지도들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다. 이 지도에서 일본 해군성은 우선 독도를 조선 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 군함이 독도를 3.5마일 정북 방향 북서 10도 방향5마일 거리 등에서 그린 그림들을 마치 사진으로 촬영한 것처럼 정확하고 선명하게 그려 넣었다.  

일본 해군성 수로국은 그 뒤 1887년에『조선수로지』를 편찬했다. 여기서도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했다. 그래서『일본수로지』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상에서 살핀 일본의 옛 문헌들은 독도가 울릉도와 더불어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명백한 자료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메이지 정부 시대의 일본 자료들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를 혼동해 쓴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본 사람들 가운데 울릉도를 다케시마가 아니라 마츠시마로 부르면서 마츠시마를 개척하려고 하니 허가해 달라고 정부에 청원한 경우가 그것이다.

이한기 교수는 여기에 대해, 이러한 명칭 사용의 혼란은 무엇보다도 두 섬에 대한 "당시 일본인의 지리적 지식이 명확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또 이러한 지리적 지식의 결핍은 결국 이 수도가 일본의 관할 밖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일본 정부는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메이지 시대의 초기까지 일본은 일관되게 울릉도를 다케시마로 독도를 마츠시마로 불렀다. 그러나 그 뒤에는 울릉도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측정이 잘못됐고 그 결과로 그들의 지도들이 잘못된 탓에 국제적으로도 울릉도의 명칭과 위치에 혼란이 생겼고 이것이 일본에서도 명칭의 혼란을 가져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책임이 일본에 있지 않고 유럽 사람들의 지도들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의 유럽 사람들의 지도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우리가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피겠지만 여기서 간단히 설명한다면, 울릉도에 제일 처음 유럽 이름을 붙인 사람의 프랑스의 라 페루즈였다. 그는 1787년에 자신이 이끄는 군함이 울릉도에 이르자 이 섬을 제일 먼저 발견한 승무원 다즐레의 이름을 따서 다즐레 섬이라고 불렀다. 이어1797년에는 영국의 브로오튼이 같은 울릉도에 대해 아르고노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브로오튼이 그 섬의 경도와 위도를 잘못 측정해 그 뒤에 유럽에서 나온 지도에 울릉도와 다즐러와 아르고노트라는 두 섬으로 표기 됐다.

이어 1840년에 독일의 박물학자 지볼트가 일본 지도를 만들 때 울릉도를 아르고노트 섬에 독도를 다즐레 섬에 맞추어 기재했다. 그 뒤 브로오튼의 측정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어 유럽의 지도들에서 아르고노트 섬이 없어진 결과 다즐레 섬만 남게 됐는데, 그래서 원래 울릉도를 뜻하는 다즐레섬, 곧 다케시마가 독도처럼 됐다는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일본 정부는 1905년 2월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킬 때 종전의 이름 마츠시마를 공식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한기 교수가 적절히 지적했듯, 이러한 일본측의 설명은 더욱 의혹을 자아낸다. 만일 울릉도가 옛날부터 다케시마로 불려왔다면 유럽 사람들의 지도가 어떻든지 울릉도는 끝까지 다케시마로 불려야 마땅하며, 독도가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듯 일본교유의 영토로 마츠시마로 불려 왔다면 독도는 끝까지 마츠시마로 불려야 마땅하다. 설사 지볼트의 지도가 잘못 됐다 할지라도 독도의 명칭은 그 "고유"의 명칭으로부터 빼앗아 울릉도의 명칭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볼트의 지도를 맹목적으로 따랐다면, 일본이 옛날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는 일본측의 주장은, 이교수의 표현 그대로,"거짓말이다"

 

-독도는 우리땅-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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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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