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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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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에 살아 온 독도: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온 독도:
       -신라시대부터 조선중기까지
 

 그러면 독도는 언제부터 우리 겨레와 함께 숨을 쉬어 왔는가?

우리 배달겨레가 중국과 시베리아 및 한반도에 자리잡고 살던 저 아마득하게 먼 옛날부터 독도는 우리 배달겨레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놓고 따진다면, 아무리 늦게 잡는다고 해도 신라 시대 이후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숨 쉬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겨레의 역사책들 가운데 독도가 제일 처음 기록된 책은 고려시대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듯,『삼국사기』는 서기 1145년이던 고려 인종23년에 왕명을 받들어 김부식이 펴낸 역사책으로,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사서이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신라본기』지증왕 13년 조와『열전』이사부조에 바로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것들에 따르면, 이미 그 시대에 울릉도와 우산 도라는 두 개의 섬이 우산국이라는 하나의 독립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기512년이던 신라22대 왕 지증왕은  하슬라주 군주로 이찬 벼슬에 있던 이사부를 시켜 우산국을 정복하게 했다. 이사부는 목우사자, 곡 나무로 만든 사자 모양의 무기를 써서 우산국을 정복한 뒤 같은 해6월에 신라에 귀순시켰다.『삼국사기』는 이것을 "우산국 귀복"이라고 표현했다. 그 뒤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

우산국은 신라가 망한 뒤에는 신라의 항복을 받은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했다. 그러다가 11세 초엽이던 고려 8대 왕 현종 9년에 동여진의 침략을 받아 잠시 항복했다. 그러나 현종이 곧 군대를 보내 동여진 군대를 내쫓고 우산국 사람들을 구출했으며, 그래서 우산국은 다시 고려에 귀순했지만. 이때는 고려 국세도 쇠진한 탓에 왜구들이 고려를 짓밟았는데, 그 왜구들이 울릉도까지 몰려가 분탕질을 하곤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지적돼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고려 현종이 죽은 뒤에는 우산국이라는 호징이 더 이상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울릉도 또는 울릉도로 기록됐고 그 통치자에 대한 호칭도 우산국 주로부터 우릉성주등으로 바뀐 것이다. 현종 때 고려 지방 관제의 개편이 일단 끝났음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울릉도와 우산도로 구성된 우산국이 완전히 중앙 정부의 직할아래 들어갔음을 뜻한 것으로 풀이 될 수 있겠다.

어떻든,『삼국사기』라는 국가 편찬의 사서에 나타나는 우산도가 바로 오늘날의 독도이다.『삼국사기』에 독도라는 말 그  체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우리가 앞으로 검토함에 따라 명백하게 드러나듯, 우산도가 독도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역사의 기록만 놓고 따진다면, 아무리 늦게 잡는다고 해도 독도는 신라에 복속된 서기 512년부터 우리 배달 겨레의 교유 영토인 것이다.

우산도에 대란 기록이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책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조선왕조의 4대 왕 세종 시대를 다룬『세종실록』권153『지리지』에j이다. 이것은 우리는 앞으로 『세종실록 지리지』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책에 따르면, 강원도 울진현에 몇몇 부속 도서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우산도와 무릉도의 위치와 상호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우산과 무릉의 두 섬은 (울진)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무릉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울릉도를 가리킨다. 위나라의 여러 권위 있는 국사학자들이   밝혔듯, 무릉도는 고려 고종 시대부터 쓰였던 울릉도의 별칭이었다. 이렇게 볼 때, "울진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우산도와 무릉도라 하는 두 섬이 있다"는 말은 "울진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우산도와 울릉도라하는 두 섬이 있다"는 말과 똑같다.

우산도와 무릉도의 두 섬이 별개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세종이 만든 직함에서도 입증된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 때부터 이곳에 왜구들과 여진 사람들이 처들어 오는 일이 심해져 태종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본토로 쇄환하면서 이곳을 비우는 이른바 빈 섬 정책, 곧 공도 정책을 썼다. 세종도 같은 정책을 썼다. 그래서 1425년에 해당하는 세종7년에 그들을 쇄환하기 위해 김인우를 울릉도에 파견하면서 그 직함을 "우산무릉등처 안무사"라고 함으로써 그의 관할 지역이 우산도와 울릉도의 두 섬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무릉도가 울릉도를 가리킨다는 것은 『고려사 지리지』에서 확인된다.『세종실록 지리지』에 뒤이어 출판된 『고려사 지리지』권58 울진현 조는 울릉도 항에서 울릉도가 울진현의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있고 신라 시대에는 무릉도 또는 우릉도로 불렸다고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울진현의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에"울릉도와 우산도의 두 섬이 있다는 얘기가 있으며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취지의 기록은 『세조실록 지리지』와『고려사 지리지』에 출판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도 나타난다. 조선 9대 왕 성종12년인 서기 1481년에『동국여지승람』이 출간된 뒤 두 차례나 고쳐서 11대 왕 중종 26년인 1531년에 "새롭게 덧붙였다"라는 뜻으로 "신증"이라는 관사를 씌워 출간된 책이 바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이 책의 권 45가운데 울진현  조가 나온다. 여기서도 울릉도는 무릉도 또는 우릉도라는 별명을 가졌음이 지적돼 있고, 울진현 바로 앞 동쪽 바다 가운데 울릉도와 우산도의 두 섬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이 두 섬이 원래는 한 섬이었다는 얘기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뿐 아니다.『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8도 총도』라는 지도가 덧붙여 있고 강원도의 지도가 덧붙여 있다. 이 지도들에는 동해에 조선의 영토로서의 우산도와 울릉도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지도들이 나온 이후, 조선왕조 때 나온 지도들은 거의 모두가 동해에 우산도와 울릉도를 그려 놓고 그 섬들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다.

다만 우산도의 위치가 지도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우산도를 울릉도의 바깥쪽에 그려놓지 않고 울릉도의 안쪽에 그려놓은 경우도 있다. 바로 이 지도를 가리키면서 일본은 우산도가 독도라는 우리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제작된 다른 지도들, 예컨대 정상기의 『동국지도』,1822년의『해좌전도』,1846년에 제작된 김대건의 『조선전도』등은 우산도를 울릉도의 동쪽에 정확히 그려 놓았다. 그리고 이 우산도가 울릉도와 함께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히 했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고려 왕조와 조선 왕조가 각각 구가 편찬으로 발간한 역사책들은 동해 한 가운데에 울릉도와 우산도라는 두 개의 섬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했다. 이러한 입장을 학계에서는 2도설을 라고 부른다. 그 책들이 2도설을 취하면서, 그 섬들이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음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잠시 독자들에게 미리 일러두고자 하는 것은 2도설 이라는 용어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앞으로 살피게 되듯,2도설을 부인하고 1도설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같은 섬이라고 주장하는데, 학계에서는 그것을 1도설이라고 부른다. 일본 학자들에 따르면, 예컨대『고려사 지리지』에 "울릉도와 우산도의 두 섬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라는 표현에 미뤄 조선 조정에서도 두 섬이 있다는 확신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조선시대 몇몇 학자들이 우산도가 울릉도라고 쓴 기록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역사적 문헌들이 2도설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밝히는 일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밝히는 일이 직결된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2도설을 역사적 문헌들을 통해 살폈다. 그런데 우산도라는 이름 대신에 다른 이름이 등장하면서 2도설을 보여 주는 역사적 문헌들이 있음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우선 조선9대 왕 성종 시대를 다룬『성종실록』을 보면, 동해 한가운데에 울릉도라는 섬말고 삼봉도라는 섬이 따로 있음이 다음과 같은 취지로 기록돼 있다.

 "동해 한가운데에 삼봉도라는, 누구도 한 차례도 가보지 못한 수수께끼와 같은 섬이 있는데 병역과 세금에서 벗어나려는 강원도와 함경도의 유민들이 바로 그 섬으로 들어가 산다는 말이 있어서 조정은 수토군을 조직해서 그 섬을 찾아내게 했다. 그러나 수토군은 한 차례도 그 섬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성종 7년이던  1476년에,(오늘날에는 함경도라고 부르는)영안도 관찰사 이극균이 보낸 영안도 영흥 사람 김자주등 12명이 삼봉도를 보고 왔다. 김자주의 보고에 따르면, 삼봉도를 바라보니 섬 북쪽에 세 개의 돌이 줄이어 서 있고 섬과 섬 사이에 인형과 같은 것이 서른 개쯤 나란히 서 있었다. 김자주 등12명은 그것을 보고 겁이 나서 섬에 들어가지 못하고 섬의 모양을 그려 왔다."

이 기록은 삼봉도가 오늘날의 독도라는 심증을 준다. 우리가제2장에서 이미 살 펴듯이, 독도는 꼭 세 개의 큰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역시 제2장에서 이미 살폈듯이, 독도 주변에는 가제가 많이 산다. 가제들이 서 있는 모양을 보고 그들은 인형들이 서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을 것이다.

삼봉도에 대한 기록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임금 순종 때 출판된 『증보 문헌 비고』에도 나타난다. 이 책의 권31 울진현 우산도 울릉도 조에"성종 2년에 삼봉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사람이 있어 박종원을 시켜 가보게 했는데, 박종원 일행은 바람과 파도 때문에 삼봉도에 닿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울릉도에서 하루 밤을 잤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이 기록 역시 울릉도 밖에 삼봉도가 존재함을 밝혔고 따라서 2도설 뒷받침한다.

2도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역사 문헌은 『정조실록』권 40의 18년(1794년)6월 무오 조에 나온다. 여기서는 울릉도말고 가지도라는 또 하나의 섬을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 관찰사 심보현은 수토관 한창국으로 하여금 울릉도 일대를 답사하게 하면서  자신도 참여했다. 그들은 부하들과 함께 그 해 음력 4월26일에 울릉도의 동쪽 해안을 떠나 가지도를 왕복한 뒤 4월30일에 울릉도의 서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 과정에서 일행은 가지어 너댓마리가 놀라 뛰어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양이 꼭 물소 같았으며, 포수들이 총을 쏘아 두 마리를 잡았다."

 이 기록에 나오는 가지도를 최남선과 같은 국사학자는 독도라고 보았다. 가지는 동해에서는 독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가제를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울릉도 사람들은 가제를 가지라고 부른다.

가제는 강치과에 속하는 바다 짐승 강치의  별명이다. 몸길이가 수컷은 2.5미터이며 몸빛은 흑갈색이다. 물개나 바다표범과 비슷하되 좀 작다.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데리고 살며 오뉴월에 한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낙지와 오징어 또는 물고기를 포식하는데, 한문으로 해려 또는 해룡이라고 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폈듯이, 김자주 일행이 보았다는 "인형과 같은 것"을 가제라고 추정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요약을 하기로 하자. 우리 겨레가 국가의 차원에서 편찬한 역사책, 이른바 관찬 사서는 그 당시 강원도에 속한 울진 앞 동해의 한가운데에 울릉도와 우산도, 또는 울릉도와 삼봉도, 또는 울릉도와 가지도의 두 섬이 있음을 명백하게 기록했고 지도로도 표시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섬들이 우리 겨레의 영토에 속하는 것임을 명백하게 기록했다.

문제는 우산도 또는 삼봉도 또는 가지도가 오늘날의 독도이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론한다. 일본 학자들이나 정부에 따르면, 가제는 오늘날의 독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 부근의 다른 섬들에서도 볼 수 있는  가제도 또는 가지도를 독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봉우리가 셋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섬은 울릉도 부근의 다른 섬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이러한 반론들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와 논리는 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의 논문들에 잘 제시되어 있어서 필자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산도만 갖고 말한다고 할 때, 그것이 오늘날의 독도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일본학자들이 내세우는,"우산도가 울릉도"라는 한두 조선 사람의 기록은 개인적인 수필 같은 데서만 보이는 것이어서 무시해도 좋겠다. 앞에서 말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 문헌들이 우산도는 울릉도와 별개의 섬으로 오늘날의 독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1808년에 조선 조정이 편찬한 『만기요람』이 그 점을 더욱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순조 8년에 편찬한 이 책은 재용편과군정편으로 구성됐는데, 군정편에는 "효종때 실학자 유형원이 펴낸 지리책인『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며,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라는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이 1904년까지는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고 독도를 마츠시마라고 불렀음에 비춰 볼 때, 우산도가 독도임을 명백하다고 하겠다.

-독도는 우리땅- 한줄기 김학준
"于山, 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則可望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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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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