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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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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강점의 첫 번째 희생지 독도

일본의 조선 강점의 첫 번째 희생지 독도

독도는 엄연히 우리 배달의 겨레의 땅이자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이 사실을 우리 배달 겨레는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다케시마, 곧 대나무 섬이라는 뜻에서 죽도라고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 배달 겨레는 100퍼센트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믿는데 반해 일본 사라들은 99퍼센트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1 퍼센트 정도 양심적인 사람들만이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한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하는 극소수의 일본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일본 가나가와현립대학의 가지무라 히테키교수다. 한국의 역사에 밝은 이 석학은 독도가 한국 땅이 명백한 데도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침략주의적 근성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고인인 이 분은 그 일 때문에 일본의 극우분자들로부터 폭행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독도는 처음부터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땅이다. 수천년넘도록 엄연히 우리 배달 겨레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본 사람들은 시비를 걸어온다. 자기네 땅이라는 것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 입장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람들의 한반도에 대한 침략적 근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강탈하려고 시도했던 때는 한 두 차례가 아니었다.

삼국 시대의 것들은 일단 제외하고 고려 이후의 것들 가운데 굵직굵직한 것들만 짚어보아도, 우선 떠오르는 것이 왜구의 침노이다. 이때 고려 백성들은 왜구를 화적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몽골 군대에 이미 짓밟힌 고려 땅을 거듭 유린하면서 행패가 이만저만 심하지 않았다.

조선 중종 때 삼포왜란을 일으켰던 그들은 선조 때는 마침내 대규모로 침략해 들어 와 7년에 걸쳐 살육과 분탕질을 계속했으니 이것이 역사상 악명 높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임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엄청난 국난 속에서 우리 겨레는 한 덩어리로 뭉쳐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일본의 우리 강토에 대한 침략의 욕망은 19세기 말에 다시 표면화됐다. 메이지유신으로  새로운 국가체제를 갖춘 그들은 함포 외교로 조선 왕실로  협박한 뒤 1876년에 불평등 조약의 상징과도 같은 병자수호조약을 얻어낸 것이다. 이 때로부터 34년 동안 청·일 전쟁과 을미사변, 러·일 전쟁, 을사5조약 등 침략의 수순을 단계적으로 밟은 그들은 1910년에 마침내 조선을 병탄했다. 이34년은 따라서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책에서 제1기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제1기의 마무리 단계에 해당하는 1905년 2월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일방적으로 편입시켰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시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겠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본이 조선 전체를 집어삼키기 다섯 해에 앞서 독도를 우선 강점했다는 것은 독도가 일본의 조선 강점에서 첫 번째 희생자였음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독도 강점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개시를 실질적으로 알린 중요한 표징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34년에 거친 일본의 조선 침탈은 1910년 8월에 이른바 한·일 합방으로 매듭지어졌다. 이 경술국치로부터 35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본의 무자비한 식민지배를 받았다.

일본의 해외 침략은 조선의 식민지화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 만주를 강점한 뒤 중국 대륙을 침략했으며, 마침내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및 네덜란드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이른바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침략의 발길을 미국의 하와이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넓혀 갔다. 일본이 동해의 한 작디작은 외로운 섬  독도를 강점했을 때 그것이 광활한 아시아·태평양으로 확대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이 과연 몇몇이나 됐을까?

전 세계를 지배할 것 같던 일본은 그러나 1945년 8월15일에 당연히도 처참하게 패마하고 말았다. 그래서 한반도로부터 물러나야만 했다.
그래도 일본 사람들은 참회나 반성의 빛이 없었다. 오히려 "두고 보자. 꼭 다시 돌아올 터이니"라고 되뇌였다.

그들은 과연 되돌아오는 시도를 개시했다. 패망으로부터6년5개월이 조금 지난1952년1월28일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영토에 속한다는 주장을 담은 각서를 우리나라의 주일대표부에 전달한 것이다. 주일대표부는 물론"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이며 일본 정부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분명하면서도 단호하게 반박했으나 이 각서를 계기로 일본정부는 똑같은 취지의 각서를 여러 차례 전달해 왔다.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년에 평균 두 차례 꼴로 그렇게 했다.

그 뿐만 아니다. 일본정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1945년이래 독도가 누구의 땅인지를 가리기 위해 유엔 산하 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따지자고 제의해 왔다. 독도의 역사적 배경과 성격을 정확히 모는 제3국 사람들이 들으면 일본의 제의가 그럴듯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우리 겨레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된다. 강도가 물건을 주인에게 빼앗아 잠시동안 지녔다고 해서 그 물건을 영원히 자기 것이라고 끈질기게 우기며 재판소에 가 따져 보자고 할 때 어찌 거기에 응할 수 있겠는가. 또 그것보다 부차적인 것이 되겠으나 국제사법재판소가 영토 분쟁에 관해 보여 준 입장이나 국제사법재판소의 사람 구성 등을 고려할 때 일본에 유리하게 해석할 우려가 없지 않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일본인 법률기를 재판관으로 심어 놓았다는 사실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1995년부터 오늘날까지 독도에 대한 영토적 야망을 매우 공격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나타내 왔다 199년 일본의 패망 50주년의 해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보다 더 자숙하면서 앞으로 지난날의 잘못이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오히려 "일본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이웃 아시아 나라들을 서양 제국주의로부터 구해낸 아시아 해방전쟁 이었다. 한국을 합병한 것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행위였으며 한국 식민 통치하는 동안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망언을 내뱉었는데, 그러한 언동과 맥을 같이 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고유 영유권"을 앞세운 것이다.

그 구체적 행위가 일본 문부성이 검인정한 각급 학교용 지리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하도록 조처한 일이다. 그래서1996년부터 일본 학생들은 적어도 지리부도를 통해 독도를 일본 땅으로 배우고 있다. 이 일에 대해, 신용하 교수"일본 학생들에게'독도 침탈'을'영토 수복'이라고 왜곡된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을 강화한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1996년에 들어와서 일본은 더욱 노골적이면서 도발적인 태도를 취했다. 1월 하순께, 일본정부는 흔히EEZ(Exclusive Economic Zone)로 약칭되는 배타적 경제수역 또는 경제전관수역 2배 해리를 선포하기로 의결하면서 거기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다.

이어 일본 내각의 총리대신 하시모토 유타로가 2월10일에"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공개 발언한 데 이어 외무대신 아케다 유키히코는 한극이 독도에 접안 시설을 하려는 것은 "일본의 주권에 대한 침해"라고 공개 발언했으며, 야당인 신진당조차 한국이 독도를  한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노골적인 침략 행위"라고 공개 성명한 것이다.

일본의 여야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렇게 망언 망동을 계속하자 한국의 여론은  당연히 들끓었다. 그런데도 3월 2일에 하시모토 총리대신은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타일랜드의 수도 방콕에서1996년도 아시아·유럽 정상회담(ASEM)이 열려 대한민국 대통령과 일본국 총리대신이 같이 참석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3월2일에 열렸을 때 그는 그렇게 주장한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독도를 둘러싼 우리 배달 겨레의 입장과 일본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리고 위 나름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을 필요를 느낀다.

-독도는 우리땅- 한줄기  김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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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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