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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관심으로 막아낸 독도수역 공동조사

2006년 9월 초순은 정말 아찔하고 위태로웠던 시기였다. 일본은 2006년 4월부터 독도수역에서 사전통보제를 반드시 관철시킬 각오로 한국 압박에 나섰다. 2006년 4월 한국의 반격으로 그동안 일본이 한국 정부의 방해 없이 일방적으로 누려왔던 독도 주변에서의 자유로운 활동들이 저지 당하자 일본은 본격적인 한국 압박에 나섰다. 그 첫 조치가 한국과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바다, 바로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해양조사 등 활동사항을 사전에 서로 알리고 받아들이자는 사전 통보제 였다 . 한국은 이 제안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일본의 공작과 압박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의 독도 정책을 변화시켜 급기야 7월부터 한국 외교부와 정부의 표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포까지 거론하던 거부 방침이 ‘생각해 보겠다.'로 바뀌고 ‘논의해 보겠다'로 진전하더니 8월부터는 ‘검토하겠다'로 바뀌고 9월에는 ‘독도 수역에서 일본과 원만한 해양질서를 수립하고 싶다'고 일본 제안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었다.

이런 정부 정책의 변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변화가 대통령의 결정과 허가 없이 진행될 수는 없는 사안이라고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에 대한 인식이 7월쯤에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능동적으로 독도정책을 바꾸었다고 보기는 힘들고 한국 외교부가 일본 제안을 계속 거부하자 일본이 ‘한국이 정말 그렇게 나온다면 어업협정에 규정된 권리행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밖에 없다'고 위협카드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업협정 문제까지 거론하기에는 국내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 일본의 제안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한국의 분위기에 발 맞추어 8월에는 일본에서도 공개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국 정부가 이미 일본 제안을 존중하기로 방침을 바꾸었기 때문에 분위기 조성을 위해 독도 수역에서의 일방적인 조사행위는 자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2006년 4월에 비하여 완전히 달라진 한국의 독도정책이 모습을 드러낼 시기는 2006년 9월 4-5일의 배타적경제수역 경계획정을 위한 회담과 2006년 9월 6-7일의 외무차관급 전략대화 때였다.

이미 한국은 일본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독도본부를 비롯한 국민 여론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참에 터진 것이 중국의 이른바 백두산 공정문제였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런 국가적 재난을 독도문제를 포기하고 일본에 넘겨주는 기회로 활용하려 들었다.

독도본부의 사전 작업으로 이미 사전통보제는 독도 영토주권을 넘겨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언론을 비롯하여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 외교부가 사전 통보제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일본도 이런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국 외교부는 9월 4-5일 협상에서 사전통보제를 받아 들일 수 없다고 일본측에 통보하였다. 한국측이 절대 들어주지 않으면 한일간의 외교적 합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고 궁극적으로 일본의 정책은 파탄을 빚고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이미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이런 곤경을 고려하여 협상장에 나오기 전에 공동조사제라는 바뀐 방안을 제안하였다. 공동조사제 는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러시아의 방사능 오염을 조사하는 방안인데 일본은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한국이 먼저 조사하고 일본이 뒤에 조사하는 방안,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조사하는 방안, 일본이 먼저하고 한국이 나중에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국이 골라잡으라는 것이다. 결국 사전통보제와 비슷한 성격의 제안이었는데 이름만 바뀐 것이다.

외교협상은 국민 시선을 의식한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9월 7일 외무차관 전략대화에서 일본이 이미 제안했던 공동조사제중 동시에 조사하는 방안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한국 외교부는 일본 제안을 거부한 듯 보도자료를 흘렸지만 일본 언론에서는 독도수역에서만 공동조사를 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9월 8일 외교부에서 발표한 한국과 일본이 합의한 내용은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 2곳에서 공동으로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독도와 아주 가까운 곳은 한국이 조사하고 독도에서 떨어진 곳은 일본이 조사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정부는 공동조사제를 받아들여 합의한 이유로 일본 정부의 제안이 방사능 오염을 조사하는 인도적인 것이라 거절하기 어려웠으며 한국에도 필요한 일이고 독도에서 수 십 해리 떨어진 곳이라 영유권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성립될 수 없는 괴변을 앞세워 일본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고 발표하였다.

독도본부는 일본 외무성의 발표와 일본 언론 보도를 세밀하게 검토하였다. 일본 측에서는 명백하게 독도 배타적 경제수역에서만 조사가 이루어진다고 발표가 나오고 보도 내용도 그런 것이었다. 한국 외교부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판단한 독도본부는 즉시 언론에 사태의 진상을 알리는 해설문을 보내고 9월 11일(월) 오전 10시 외교부 앞에서 시위겸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근무자들이 토요일 일요일 밤을 새면서 준비하였다.

외교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9월 9일 독도본부의 해설에서 사실을 전해듣고 외교부에 조사 지점을 좌표로 알려 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여 그곳이 모두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독도본부 사무실에 와서 김봉우 의장의 짧은 평가를 녹음해 가서 9시 뉴스에 내보내기도 했다. 예전에는 외교부가 발표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문용어로 가득찬 허위 발표를 따질 능력도 없었고 따질 엄두도 못 내었는데 독도본부가 미리 알려준 자료 때문에 외교부의 허위 발표가 먹히지 않은 것이다.

11일 오전 10시 외교부 앞에서 독도본부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 외교부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조사 지점은 명백하게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이다. 거리가 멀건 가깝건 독도의 배타적경제수역이라는 점에서 영유권 위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 조사는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 제56조에 규정된 연안국의 관할사항이다. 그러므로 일본과 공동으로 독도수역에서 조사를 하면 우리 영토주권을 훼손하게 된다. 이번 협상의 주제와 대상은 처음부터 두 나라가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지점 즉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협상 대상 수역이었다. 외국이나 국제기구를 끌어넣는 방안은 협상 주제도 아니었고 협상 과정에 등장한 바도 없다. 협상 내용도 바로 이곳에서 어떻게 조사를 하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 되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노무현대통령이 4월에 독도문제를 거론한 것은 순전히 선거전략용이었는가. 백두산 위기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틈을 이용해서 독도를 넘긴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일본의 독도 도발에 침묵하자고 주장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독도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내용은 이미 언론사에 문건으로 전달된 것이었다. 독도본부는 독도 주권을 다시 찾기 위한 연대 운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구상에 들어갔다.

그런데 9월 11일 오후 5시 15분에 일본 외무성 차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내용은 독도수역에서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독도수역 3곳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3곳에서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회견 문답에서 외무 차관은 이런 합의가 11일 오후 늦게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하였다. 그렇다면 이미 발표한 합의문을 버리고 다시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일본에게 유리하게 결정된, 이미 합의하여 발표한 내용을 무시하고 긴급하게 협상을 진행하여 11일 일본 외무성 차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한 것이다. 이로써 독도를 둘러싸고 조성되었던 위기는 일단 가시고 공동조사제는 제목에 맞게 내용이 가다듬어 졌다.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이 이미 합의했던 안까지 부정하며 일본의 전속 배타적 경제수역 3곳을 끼워 넣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관심 때문이었다 . 한국 외교부는 무리하게 합의한 공동조사제가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몰고 올 것을 우려했고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월 독도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다가 쉽게 번복하여 다시 독도 위기를 몰고 오면 정권 자체에 엄청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여 이미 합의한 사안을 거부하는 배수진을 친 듯하다.

일본으로서는 아베의 이미지가 군사팽창주의자로 고정되어 가는데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한일간에 물리적 대결국면을 연출하게 되면 외교가 없어지고 대결만 남게 된다는 점에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껴 한발 물러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측과 마찰을 빚는 과정에서 어업협정의 실체가 드러나 일본이 닦아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본의 양보를 끌어낸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이번 일본의 양보가 앞으로 몰아 올 파장은 매우 크다. 그동안 한국은 방사능 오염조사를 비롯하여 독도 부근에서 일본이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대한민국의 주권침해 행위를 알면서도 계속 모른 척 해 왔다. 즉 국민의 눈과 귀를 속여 일본의 영토주권 침탈을 묵인해 온 것이다. 묵인에 따르는 영토 상실의 책임에 눈을 감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의 독도수역에 한정된 공동조사를 거부함으로써 이런 묵인을 상쇄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10년 노고가 헛일이 되었다. 이런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독도본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의 독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이런 거대한 역사를 이루어 낸 것이다. 특히 독도본부 회원들의 힘이 이런 거대한 상황을 만든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독도본부는 회원님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 9. 15.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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