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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찾기 좌담회

"청-일 간도협약은 명백한 불법행위"

간도찾기 좌담회
일시:2004년 1월 9일 오후 2시
장소:경향신문사 회의실
참석자:강석화(경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임영정(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명기(천안대 석좌교수), 김득황(문학박사-재야사학자)

백두산에 우뚝 선 채 고토(故土)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정계비 터. 정계비엔 조선의 땅임을 확인케 하는 문구가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1909년 청-일간 간도협약으로 간도는 중국땅으로 굳혀져가고 있다. 그런 간도를 우리나라 땅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녕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뉴스메이커〉는 국내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간도전문가들과 사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강석화:중국이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뉴스메이커〉가 '간도 되찾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 저는 '간도 되찾기' 논의에 앞서 당시 조선과 청이 어떤 목적으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느냐는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세기 후반에 나타난 영토 확장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심 갖고 있는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의 간도가 아니라 그 시기에 간도 문제가 제기된 역사적 배경입니다. 영토적인 관심은 조선 후기 이전까지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함경도 북부 지방 개발이 이뤄지면서 간도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이죠. 1712년 정계비를 세운 것도 함경도 북부 개발이 동북아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간도가 우리땅이냐, 중국땅이냐 하는 것을 명확하게 가리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국제법에 근거해서 따져봐야 합니다.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학계에서도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의 경제적 지원도 있어야지요.

김득황: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사람이 간도로 이주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3,000년 이상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이는 간도가 우리땅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천리 금수강산만 찬미할 것이 아니라 영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김명기:말을 보태자면 간도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신라 통일 시대에는 발해왕국이 200여 년간 이 땅을 지배했다고 문헌에 나와 있습니다. 결국 간도의 뿌리와 거주기간을 봐도 간도는 우리땅이라는 얘기이지요.

임영정:아무리 간도가 우리땅이었다고 해도, 또 문서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법에 의해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것 아닐까요? 또 이미 체결된 청-일간의 조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김명기:국제법에 근거한다는 말은 타당한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국제법상 청-일간 간도협약은 무효입니다. 이 건은 조금 뒤 말씀드리기로 하구요. 현재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은 북한과 중국이 맺은 변경(邊境)조약입니다. 북한이 국제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이 조약을 어떻게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변경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내용이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에 섣불리 다룰 사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국이 북한과 중국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가 하는 부분도 고민입니다. 일각에서는 문제삼았다가 그동안 민간단체에서 공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북한과 중국 간 맺은 변경조약 체결을 수용해야 할 것인지, 아닌지도 고민할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변경조약이 한 나라만 묵인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유엔에 조약 사실을 알리고 등재해야 하는 등 행정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중국 학자들 간 의견이 분분하지만 간도는 명백한 우리의 땅입니다. 그렇지만 중국이 실효적 지배(남의 땅이라 하더라도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것)를 하고 있는 이상 국내 사학자들이 철저하게 간도가 우리땅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임영정: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문서적인 조치를 취했습니까? 국내에서도 간도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김명기:외국 학계에 공표하는 일은 없었지만 국내에서는 간도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습니다. 1948년 제정된 헌법 제3조에 의거, 간도가 우리땅임을 명기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니까요. 간도협약이 무효임을 헌법에 기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1909년 청이 일본에 양도하긴 했지만 1909년 청-일 간도조약 이전에 이미 1905년 을사보호조약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에 1909년의 조약은 당연히 무효라는 것이지요. 말이 조약이지 우리땅을 자신의 땅인 양 마음대로 팔아먹은 것 아닙니까? 국제법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논리 개발과 관례를 찾아 꾸준히 연구해 법적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도 분쟁에 대해 중국은 지금껏 이렇다 할 공식적 입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1998년 제가 북경의 한 학술회의에서 이 문제를 갖고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중국 학계에서는 말도 못 꺼내게 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간도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통일 이후, 간도를 찾는 일도 문제입니다. 만일 중국과 북한의 조약이 유효하다면 통일 한국이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임영정:한 예로 동독과 서독은 통일 후 동독과 폴란드 간 협정을 다시 체결했는데 영토 문제는 통일 독일이 다시 정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우리도 만약 통일돼 통일조약에 간도 문제를 명시한다면 간도 인수와 승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간도와 관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부의 경제적 지원 문제입니다. 중국에서는 학자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행정부서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봅니다.

김득황:김명기 교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간도협약 무효는 옳은 얘기입니다. 저는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간도가 우리땅임은 정계비가 세워진 이후 여실히 드러납니다. 제가 주지하고 싶은 것은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조선과 청나라 양국이 목책(영토를 구분짓기 위해 만든 경계선)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뒤 조선과 청은 정계비에서 토문강의 발원지까지 185개의 흙두렁과 돌무더기를 쌓아 양국의 경계를 분명히 한 것이지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조약 문제입니다. 1909년 청-일간 간도협약을 체결했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광복 이전 청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이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에 의해 파기됐기 때문에 그 효력이 발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도에 관한 협약 역시 무효입니다. 저는 재야사학자로 활동하면서 늘 간도를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왔지만 현실적으로 간도를 찾기 어렵다면 간도 지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자치국을 세우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자치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지요.

김명기:김 박사 말씀대로 간도에 자치기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간도 지역에 사는 조선족이 많지 않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중국인이 65%, 조선족이 35% 정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약의 시효, 시효 하는데 그 시효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조약은 청-일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효를 기준으로 삼거나 인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임 교수께서는 간도에 친척도 있으셔서 많은 자료를 모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간도 관련 국내 학계의 반응과 간도 현지에 있는 조선족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임영정:네. 국내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백산학회를 중심으로 북방 영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만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간도 영토를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제가 중국이 이런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03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사회과학원에 볼 일이 있어 갔는데 중국 학계에서는 〈변강사지〉란 잡지를 통해 영토 문제를 확고히 하겠다는 학술적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조도-열도는 물론 만주-간도에 대한 자료를 보완하고 있던 것이지요. 그래서 입국 후 제가 이런 내용을 국내 학계에 알렸습니다만 별 반응은 없었습니다.

 김득황:시효가 몇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 많이 거슬리는데요. 그렇다면 청-일 간도협약을 인정하는 조짐이 있나요?

김명기:김득황 박사 말씀처럼 간도협약과 관련해서 국제법상 시효가 몇 년 남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습니다. 조약 자체가 우리나라가 주체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의미합니다. 현재 조선족들이 이주해 있는 간도 얘기를 하자면 그곳은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마지막으로 떠났던 피난처였습니다. 또 그곳은 우국지사들이 집결하고 항일투쟁을 하던 곳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의미로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35% 이상 조선족이 산다고 해서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간도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우선 당장 사는 데 지장을 초래하고 본토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얘기입니다.

강석화:임 교수께서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오래 전 우리땅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국제법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무리한 요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계비에 담겨 있는 경계는 사학자들께서 꾸준한 연구와 우리땅임을 검증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1970년대 초부터 백산학회에서 자료를 모으고 수집해온 결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간도가 새롭게 조명됨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사회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김명기:국제법을 따라야 할 경우라면 연구한 자료를 잘 관리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도 하고 자료를 모아 우리 것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 기관을 관장하는 곳도 있어야 하고 전문 인력들이 간도찾기에 투입되어 성과를 얻어야 합니다.

김득황: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간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간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할까요?

김명기:다시 말씀드리지만 간도는 우리땅임이 확실합니다. 우리의 조상인 발해와 고구려가 이 땅을 200년 이상 지배해오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현실적으로 중국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정확한 자료와 사료를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합니다. 또 아까 나온 안건 중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간도에 대한 조약이 승계될 수 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는데 중국과 북한 간 변경에 관한 협약 체결은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국제적인 조약규정상 중국과 북한은 유엔헌장 제103조에 의해 이 조약을 유엔 사무국에 등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등록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영정:저도 세 분의 생각과 비슷합니다만 조금 다른 시각을 내놓는다면 19세기 영토적 관념에서 벗어나 간도를 생활의 터전으로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한인타운도 한국의 영토는 아니지만 한 마을이 사회를 이루며 살 듯 간도도 생활터전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정리/연세영 기자 pakosm@kyunghyang.com  뉴스메이커558호 2004.1.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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