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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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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영토전쟁 총성 울렸다

한-중 영토전쟁 총성 울렸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내 학계가 최근 '왜곡대책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가칭 '동북고대사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내년 6월 중국 쑤저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위원회를 앞두고 때아닌 역사논쟁이 일고 있는 것이다.

통일 가능성 높아지자 본격 작업
전문가들은 "고구려사 왜곡은 단순한 역사 논쟁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면에는 간도 문제 등 영토 분쟁의 소지를 뿌리째 뽑으려는 중국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동해 지명과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끊임없는 이의제기도 영토 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거의 50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한-중-일 3국의 영토 전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토 보존 또는 확장을 위해 자국의 이익에 맞게 역사를 수정하고 관철하려는 '역사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2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선포했다. 고조선-고구려-발해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이 대형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 산하의 공식 기구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주도하고 있다. 고구려사연구회 서길수 회장(서경대 교수)은 "동북공정은 이미 1995년쯤부터 추진됐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중국 학자들의 고구려사 연구가 활발해졌다. 고구려 유적을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것도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의 취약성으로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국이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천대 법학과 노영돈 교수(국제법 전공)는 "동북공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통일 이후 간도 영유권 제기를 근원적으로 없애려는 데에 있다"며 "간도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우리나라보다 중국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압록강-두만강을 잇는 현재의 한-중 국경선은 1909년 일제와 청나라 간에 맺은 간도협약에 의해 정해졌다. 당시 한국은 1905년 이미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근대 한반도 지도가 제작된 일제부터 줄곧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국경은 '바뀔 수 없는 선'으로 각인됐다. 광복 이후 교육기관에서는 이 국경선을 가르쳐왔다. 이때부터 두만강 이북의 간도는 우리의 역사와 지도에서 사라졌다. 한국민들의 뇌리 속에서도 간도는 잊혀졌다.   

하지만 간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은 간도협약 자체가 무효임을 주장한다. 국제법상 강제로 주권을 침탈한 국가가 맺은 조약은 아무런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간도협약과 동시에 맺은 만주협약은 일본 패전 후 무효화됐다. 다만 간도협약의 경우 광복 후 혼란기, 한국전쟁, 남북분단의 상황을 거치면서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지속돼온 것이다. 노 교수는 "간도협약은 국제법의 통념상 틀림없이 무효화될 수 있는 것"이라며 "이전의 한-중간 협약으로 소급시켜 국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도협약 무효화될 수 있다"

간도협약이 무효화될 경우 한-중간 국경 문제는 1712년(숙종 38년) 백두산 정계비 건립 당시로 소급될 수 있다. 백두산을 선조가 태어난 영산으로 여기던 청의 강희제는 목극등을 백두산으로 보내 조선과 청의 국경에 정계비를 세웠다. 강압적으로 백두산 일대를 자국의 영토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문에는 '서위압록 동위토문'(서쪽은 압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이라고 씌어 있다. 백두산 정계비에 의해 백두산 천지는 청의 영역에 속하지만, 조선은 토문강을 국경선으로 삼게 되므로 두만강 이북의 간도를 인정받은 셈이 됐다. 토문강은 송화강의 지류로서 흑룡강에 이르는 지역까지 아우른다. 흔히 동간도라고 일컫는 이곳은 현재 중국의 옌벤(延邊)자치주 지역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정계비에 '토문'이라는 강의 명칭이 논란이 됐다. 청은 토문이 두만(도문)강이라고 고집하면서 영토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청은 1883년(고종 20년) 동간도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두만강 이남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했다. 조선과 청은 1885년(고종 22년) 을유담판, 1887년 정해담판을 통해 국경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문제는 결국 간도협약으로 귀결돼 결국 두만강이 접경선이 되고 말았다.

북한-중국간 비밀조약도 변수
 최근 〈잊혀진 고토, 만주의 역사〉를 집필한 김득황 박사는 "정계비에 나타난 '분수령'의 의미를 볼 때 백두산 정계비에 연결된 강은 압록강과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뿐이며 두만강은 이 인근에 있는 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건천(마른 강)인 토문강의 경계선을 뚜렷히 구분하기 위해 울타리를 만든 사실까지 확인되고 있다.     

일부 사학자들은 정계비와 관련없이 조선과 청나라의 진짜 국경은 다른 곳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627년 정묘호란(인조5년) 후 조선이 청에 보낸 서문(誓文)에 "각기 경계를 봉하여 온전히 지킬 것이다"라는 뜻의 '각전봉강'(各全封疆) 구절이 나온다. 경계선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만으론 구체적으로 조선과 청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청의 강희제가 서양인 레지 신부에 의뢰해 제작한 지도(당빌 지도)에 의하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일부 만주 지방도 조선에 포함돼 있다. 김득황 박사는 이 선을 '레지 선'으로 명명했다. 만주 지역에는 이미 15세기 이전부터 조선인들이 이주해 땅을 개간  하고 살았다. 지도에는 평안도를 뜻하는 영문 표기 PING NGAN이 압록강 이북에 걸쳐 표기돼 있다.

당시 두 차례의 호란(병자-정묘) 후 기세가 등등해진 청은 자신들의 성지인 만주로 조선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봉금(封禁)했다. 조-청의 국경선은 레지선에서 압록강-토문강으로, 다시 압록강-두만강으로 점점 밀려났다. 

현재 한-중간의 국경논쟁은 북한이란 '완충지역'을 끼고 있는 셈이다. 노 교수는 "북한은 간도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간도 영유권에 대해 일절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1964년 중국과 '조-중 변계조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조약은 비밀조약으로 그 내용 조차 밖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연변 학자들에 의하면 중국측이 주장했던 두만강의 남쪽 지류 홍단수와 간도협약에 규정된 두만강의 또다른 지류인 석을수보다 북쪽이어서 당초 간도협약보다 우리나라가 더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남북간 통일이 될 경우 조-중 변계조약도 비합법적 정부간에 체결된 조약이라는 이유로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뉴스메이커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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