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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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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야 할 우리 땅 북간도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땅 북간도
 
국토는 그 크기로 가치를 따질 수 없다. 크고 작음의 차이없이 한 조각의 국토도 지킬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일본과의 독도 분쟁으로 일본의 도전을 받고 있다. 비록 작은 땅이지만 독도의 가치는 군사적으로 자원적으로도 소중한 땅이다. 그 크기는 18.61㎢의 암초에 불과하지만 독도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의 촉각은 곤두서 있다.

그러나 우리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땅은 비단 독도에 한하지 않고 있지만 그 관심은 상대적으로 아주 멀리 있다.

바로 중국과 경계에 있는 북간도, 독도와 비할바 없는 기름진 옥토가 2만1천㎢가 넘는 광활한 땅이다. 이땅은 지금 북한 지역과 인접해 있어 영토 수복운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관심마저 가라 앉아 있는 상태이다.

 일본, 청나라의 간도협약에 의해 빼앗겨

현재 한반도와 중국은 두만강 한 원류인 홍토수(紅土水)를 경계로 구분되어 있는데 북간도는 이 홍토수 이북지역으로 중국 길림성의 일부를 말하며 조선족 자치주로 존재하고 있다.
북간도는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옛터로 발해 멸망 후에는 여진족이 거주했던 곳이지만 조선 중기 청의 건국과 함께 사람들의 거주가 금지되면서 이 지역 국경이 모호해 졌다. 그러나 청의 거주금지 조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함경북도 주민과 산동지방 한족들이 이 지역 미개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서 서로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선과 청 양국은 1712년 현지분규 해결을 위해 이 지역을 공동으로 답사, 백두산정계碑를 세우고 압록강과 토문강을 양국의 국경선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후 1881년 청나라가 북간도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간하기 시작하자 우리나라도 관리를 현지에 보내 백두산정계비의 국경선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주민의 거주지를 합법화, 이 지역이 다시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청은 정계비에 기록된 「토문」을 「두만」으로 해석, 북간도를 청의 영토로 주장했으나 우리정부는 이 지역 주민으로부터 조세를 받는 등 끝까지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구한말 북간도는 열강들의 흥정의 대상이 되어 1909년 간도 협약으로 일본이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북간도를 청에 양도하게 됐던 것이다.

당시 간도협약은 당사자인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맺어졌다. 일본은 소위 '을사조약'에 의해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형식적이나마 우리의 주권은 살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 국토의 당사자인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간도협약은 맺어졌고 간도땅은 중국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재 중국은 간도에 대해 "당시 일본과 간도 문제는 끝났다"고 주장하며 "한국과 간도로 인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단 이후 북한과 중국은 백두산을 비롯한 북방영토에 대해 비밀협상을 한 이후 중국에 대해 영토문제를 전혀 제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영토 회복에 있어 하나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지대인 압록강, 두만강은 좁은 곳은 발로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이다. 즉 이곳을 무대로 하여 우리가 북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
북방영토의 중요성은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철의 장막지대로 막혀 있던 북방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중국 러시아의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북간도는 우리가 북방으로 진출을 발돋움하게 해주는 도약대가 될 것이다.

과거 일본이 간도 파출소까지 두면서 그땅을 중요시했던 것, 일본이 간도를 벌판으로 만주 점령에 들어가자 서구 열강들이 촉각을 세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게다가 자원적으로도 간도는 풍부한 보고가 된다. 간도를 장악했던 나라는 융성했다는 역사를 보더라도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영토문제 연구소장 양태진 교수 인터뷰

영토문제가 연구가로서 간도문제에 대해 오랜 연구력을 쌓아온 양태진(梁泰鎭)씨.
북방영토에 대한 양 소장의 입장 표명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영토문제 특히 북방영토는 이벤트처럼 자극적으로 건드려서는 안된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부상하면서 영토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으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내면화하여 연구를 쌓아가야 한다."

 상대국 자극보다 연구 내면화해야

동아시아 영토문제 연구소 소장이며 독도학회 운영위원, 동해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영토 수복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는 양 소장이다. 그가 영토문제를 내면화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나갔다.

"지금 한국인이 중국의 북방쪽을 여행하면 중국의 공안 당국이 굉장히 언짢아하고 있다. 한국인이 연변이나 백두산에 올라가서 '여기는 우리의 땅이었다.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들이 중국 중앙정부에 보고가 되어 상당한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녹둔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의 경우 96년 말 그 실례가 나타났는데 시베리아 연해주 정보기관에서 카레이스키(한국계 러시아인)의 연해주 이주 내지는 방문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며 중앙정부에 비자 발급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는 과거 한인촌에 살던 한국인 2,3세들이 다시 몰려와 자치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를 방임하면 소수민족이 결집해 그땅이 한국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영토 회복을 하지도 못하면서 당사국을 자극만 하게 되면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그 배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그 땅이 러시아 혹은 중국땅이 된 변천사를 논문 등을 통해 입증하고 근거 자료를 계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일이다."
현재 중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중국은 고구려나 발해는 중국의 한 성과 같은 존재였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국민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영토 문제에 대한 중국측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는 「중조 변계사」에 양태진 소장은 '중화민국에 대해 부당한 논리를 펴고 있는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물유적 보호 도와야

"그쪽 지방에 남아 있는 한민족의 유적과 유물을 보존함으로써 우리의 원대한 희망과 포부를 심어야 한다."

양 소장은 '중국 문물국'에 돈을 주어서라도 우리의 유물 유적을 보존함으로써 우리 후손들이 참고 자료로 삼고, 밖으로도 자료로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유물과 유적이 훼손되고 나면 그만큼 우리가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간도 연변지역의 한족을 의도적으로 소개시키고 있어 한족의 집중화가 줄어 들고 있다. 그런데 이는 국제법상의 영토분쟁이 있을 때 현지 주민의 투표 결과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와 발해는 순수한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알리고 그쪽에 사는 2,3세들의 투철한 역사 민족의식을 키우는 한편으로 세계에 우리의 주장이 보편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또한 과제이다.

 정부차원 주장없어아쉬워

대 중국관계에서 한국 정부는 영토와 관련하여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실리적 차원에서의 접근'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을 컨트롤 하는 중국의 작용이 큰데, 영토문제를 언급하면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양 소장은 정부의 이러한 태도가 수긍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정부는 시기적으로 적절한 때에 한 번씩 언급하든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주의 주장이 필요하다. 국제법상으로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논리가 있듯이 정부차원의 계속적인 문제 제기가 없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

영토란 한 시대, 한 상황에서 결정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 발전과 더불어 빼앗겼던 땅도 부흥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영토에 대한 국민의 의지와 국가 의지가 화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토를 언젠가는 찾을 수 있는 관건이되는 것이다.

 국민적 의지와 끈기 필요

이웃집과 담장 경계가 생겨 소송이 일어나면 후손이 똑똑하고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남달라야 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세력이 강하면 약한 사람은 권세에 눌려 제 주장을 못하지만 부흥한집안은 문집이나 회고록이 나와 자기 주장을 쓴다. 이것이 나중에 재판에 걸렸을 경우 재판 증거주의에 의해서 되찾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후손의 영토의식과 국가의식의 강약에 달려 있다.

1902년까지 조선이 작성한 간도 주민의 호적이 양 소장에 의해 발급되었다. 또한 함경도 관찰사가 조세를 받았던 기록도 있다. 이러한 것이 간도가 조선땅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 증거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남북분단이라는 민족문제에 걸려 영토문제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하여 제쳐두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은 힘의 논리이기도 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영토를 찾기 위해서는 국력 신장이 우선일 수 있다.

그러나 양 소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좁은 국토, 인구의 제한,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우리가 국방을 키운다고 해서 중국의 50억 인구를 대적할 수 없고, 러시아와 같은 대국이 될 수 없으며, 일본과 같이 부국이 되기가 어렵다. 그 세월 동안 우리는 역사적 증거와 강한 국민적 의지력이 뒷받침된 이론적으로 무장된 주장이 필요하다. 끈기로서 이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영토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월간 아리랑

http://arirang21.com/bbyt/bukbang_read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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