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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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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방언은 어디로 가나

지난해 일본 오키나와에서 선진8개국(G8)회담이 개최된 것은 인상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마무리 단계에서 얄타회담은 전후 세계체제 재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한반도의 경우 그 회담이 민족분단을 가져온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던 것이다. 수도나 대도시가 아니라 좀 뜻밖이다싶은 외딴 곳에서 세계사 혹은 특정한 지역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정상회담을 통해서 그 회담 장소의 이름은 역사속에서 개념화된다. 전후 ‘얄타체제’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오키나와 회담에서 남북공동선언을 강력하게 지지한 것이 그뒤 유엔의 지지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오키나와 회담은 결코 우연히 그곳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곳이 국제자유도시가 되고자 하기까지 오랜 갈등의 공유와 그 발전 단계를 거친 것이다.

최근 제주도 역시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되어 기왕의 관광뿐 아니라 금융, 투자, 비즈니스, 무역 등의 종합적 기능을 가진 국제개방지대로 추진되고 있다. 이와함께 제주도 주민 전체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도록 하고 공문서도 영어를 공용화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제주도는 ‘영어의 섬’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천지개벽에 해당하는 이런 일들이 마스터플랜 용역자의 생각처럼 쉬운 노릇이겠는가. 많은 사람이 이같은 적극적 개방을 모험주의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당장 영어공용화의 문제는 오랜 식민지 시대의 인도나 조차지 홍콩의 경우를 잘 알아봐야 할 것이다.일제 식민지 시대 언어 강제정책과도 견주어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남미 순회 시낭독축제 15일간을 보내고 돌아와서 곧 이탈리아 베로나 세계 시 아카데미 창립대회 축제에 가야 하는 틈에 열린 국내 제주 평화포럼에 잠깐 참석했다. 마침 제주도 평화포럼에서는 그곳 국제자유도시 개발계획분야의 토론도 있어 제주도 영어공용화 문제와 관련해서 제주도 방언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지의 언어도 조선후기 언어나 1930년대 언어, 그리고 6·25 이후의 언어와 사뭇 달라진 인터넷 세대의 축약 언어에 이르면 그 변모의 간극이 심각하다.

하물며 제주도가 자기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하게 개방되어버린다면 첫째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제주 방언도 치명적으로 손상될 것이 틀림없다. ‘글로벌’이란 하나의 모습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여러 차원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세계화가 바로 미국화 또는 맥도널드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21세기 제주도가 영어의 섬이 된다고 할때 제주도 방언의 행로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우리는 언어, 인간, 그리고 정신의 문제로도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1개월전 독일 브레멘 국제시인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내 시의 번역자인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괴테가 임종에서 남긴 “보다 더 빛을”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괴테의 시 대부분이 그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 방언으로 쓴 사실과 걸맞게 오랜 병상생활에서 침대에 넌더리가 나 소파로 옮겨져 누워 있을때 죽음이 찾아오자 “자리를 잘못 잡았구나”라고 말한 것이 그 방언과 비슷한 “보다 더 빛을”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괴테 숭배자들이 그 마지막 말을 ‘좀 더’ 숭고한 ‘빛’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브레멘이나 함부르크 일대 방언은 바다건너 영어와 가깝고 프랑크푸르트 방언과 뮌헨 지방의 방언과도 아주 다르다. 이는 중국어가 베이징쪽과 상하이쪽, 광둥쪽, 쓰촨쪽이 서로 다른 것과 같다. 현재 독일 시인들은 제 고향사투리를 시로 쓰는 경우가 적지않다. 우리나라 남도 시인 김영랑, 조운의 시 세계와 평안도 백석의 시 세계가 각각 방언으로 빛나고 있는 점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말이란 뭔가. 그것은 언어학 내지 언어철학의 개념으로 말하면 도리어 말의 의미가 죽을지도 모를 때가 있다. 말이란 삶의 주체에 대한, 또는 주체 이후의 서술 주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은 도구가 아니라 생명으로서의 기호 지속이며 인간의 실존과 역사를 구성시키는 힘이다. 만약 우리에게 말이 없어진다면 바로 우리는 인간 이전의 곰으로밖에는 살 수 없다. 단군 신화 속의 쑥과 마늘이야말로 언어 탄생의 숙제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방언 지상주의를 싫어하지만 다양한 방언들의 보존 위에서만 표준어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 협죽도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제주도의 방언과 한국어가 함부로 모독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은 시인>  2001.6.23.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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