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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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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핏줄

오랑캐 핏줄 혈통의식에 사로잡힌 일부 일본 역사 학자들은 만주계 민족을 구분,분류해서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나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수력,유목민들은 늘 이동하는 집단이고 그 영역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이점에 관해서는 농경민들과 큰 차이가 있다.

그들 서로간의 혼합도 농경민에 비해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수렵민과 유목민을 다른 민족으로 구분하려고 하는 것도 역시 논리성을 가지지 않는다. 어느 한 집단이 가축을 읽게 되면 그 순간에 수렵생활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주계 민족들은 상당히 동일성이 강한 육체적 유전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 근거 중 하나가 함경도민과 제주도민과의 육체적 유전 특징 흡사성이다. 일제시대, 일제정부는 그들의 식민지가 된 한반도 주민들의 육체적 유전 특징, 즉 두시수나 지문분포,혈액형, 골격,신장, 기타 유전에 의해 나타나는 유체적 특징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 결과,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과 달리 한반도 주민들간의 계급별,지역별 큰차이는 없었으나 남,북 간 주민사이에 약간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아주 흥미러운 사실이 나타난다 제주도민에 관해서다.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도민은 당연히 전형적인 남한형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측되었으나 놀랍게도 그들의 유전적 특징은 전형적인 북한형을 나타냈고 특히 함경도민과 아주 흡사했다.

일제정부 관리들과 학자들은 제주도의 역사를 급히 연구하게 되었고 결국 이 수수께끼는 완전히 풀어졌다. 제주도가 약100년 동안 원제국의 직할 영토였었던 것이 그 원인이라고 판명되었던 것이다. (일제정부가 수집한 제주도에 관한 역사자료는 일본에 많이 존재한다. 일본의 외국어 대학교 몽고과를 졸업한 역사작가 司馬療太郞씨는 원나라의 흔적을 찾아서 제주도에서 조사.연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원나라황제 쿠빌라이는 금을 풍부하게 산출한다고 소문들은 일본을 정복하려고 해서 두 번이나 원정군을 일본에 보냈으나 두 번 다 태풍 때문에 실패했다. 안타까워 한 쿠빌라이는 세 번째 원정군을 보내려고 해서 인제는 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멀리 떨어진 중국에서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일본에 가까운 제주도에서 원정군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제주도는 말사육에 아주 적합한 자면 조건을 갖추었다. 쿠빌후비라이는 고려왕조부터 제주도를 빼앗아 자신들의 직할 영토로 해서 그 당시 남녀노소를 합친 총인구 7만명정도 제주도에 2만명의 몽고기병을 보냈다. 그들은 그 당시 온 세계를 석권한 몽고군의 최정예 기병부대였다고 추측된다. 제주도에 주둔한 몽고 기병들은 그 후 원나라의 내부등의 사정에 의해 원정기회를 못 가진 채 현지민과 혼합해서 새로운 제주도민을 구성해 간다.

몽고사람을 북방에 쫓아냈던 명나라 조정은 제주도를 무해하고 무난한 몽고인의 거주지로 생각해서 항복한 원나라 왕족들은 제주도에 보내기도 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그 수는 약 일천명 정도였었다. 고려조정이 제주도를 되찾을 때가지10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독자 여러분이 아시는 바이다.

이씨 조선 시대에서는 기근 기타 어떤 사정이 생겨서 살기 어렵게 된 제주도민이 고향을 버리고 유민화되면서 남한 일대에 옮겨갔던 기록이 있다. 우리민족은, 한반도 농경민의 핏줄에 북방 오랑캐 핏줄이 때로는 정복자인 왕족,귀족으로 때로는 일반서민 또는 천민으로 쏟아 부어져서 우리민족이 형성되었고, 그 오랑캐 핏줄은 주로 북쪽에서 흘러 들어 왔으나 남단의 제주도에서도 흘러 들어왔던 사실이 흥미롭다.

북방 오랑캐를 부여족, 말갈족, 숙신족 같이 구분해서 부르고 있으나 그 구분은 핏줄에 의거한 구분이 아니였을것이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칭기스칸 시대의 몽고인의 핏줄이 농후한 제주도민과 숙신족 핏줄이 농후한 함경도민과 의 흡사성이다.

다만 가설 또는 역사소설의 세계를 좋아하시는 독자가 계신다면 다음과 같은 공상도 중분히 가능하다. 칭기스칸을 낳은 어느 오랑캐 부족이 원제국을 세웠고, 후일에 그들은 명나라에 의해 구축 당해서 다시 몽고 땅에 돌아 왔으나 그 후 남하해서 한반도 함경도 지역에 이주해 갔고, 그 중 일부는 이씨조선 구성원이 되었으나 다른 일부는 또 다시 중국을 공략해서 청나라를 세웠다. 위와 같은 공상을 부정하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수렵.유목민은 자신들의 기록 즉 역사를 가지지않는다. 일제시대, 일제정부는 일본에서 나타난 세계적 역사 영웅이 한명도 없는 것을 안타까워 해서 일본의 옛시대 무사 원의경을 「사실은 그는 죽음을 모면해서 대륙으로 건너가 몽고인 사회에 들어가서 칭기스칸이 되었다.」라는  터무니 없는 설을 유포해서 이를 교과서에까지 올려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또한 이 설의 신비성을 높이기 위해 일제 군부는 간첩들을 만주 및 내몽고 지역에 보내서 조작.날조한 가짜 고문서나 비석을 이리저리 놓기도 했다. 그러나 칭기스칸과 원의경은 그 출생년이 수십년 차이가 있어서 그들의 의도는 자연 소멸되고 말았다. 세계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가설은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이다.

칭기스칸 일족이 남하해서 숙신족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또는 만주계 민족은 거의 다 비슷한 육체적 유전특징을 가지고 있었는가? 물론 필자는 후자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겠으나 전자를 택하더라도 일제 정부의「원나라=칭기스칸」보다 훨씬 진실성이 높다.

어쨋든 숙신족이 후일에 여진족이라고 불리게 되어서 중국을 공략해 청제국을 세웠던 것은 가설 또는 공상의 세계가 아니라 대부분 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청제국의 황제일쪽 愛新覺羅家는 분명히 여진족.숙신족이다.

이에 비하면 일본 천황가는 변경의 숫자에 불가했다. 모든 한국사람이 오랑캐 핏줄을 50%정도 가지고 있다고 필자는 보고있으나 부여.말갈.고구려.몽고등 오랑캐는 동일한 유전특징 즉 핏줄을 가진 집단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순수한 오랑캐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몽고의 할하족이 징기스칸 일쪽의 직계 자손들이 라고 말해지고 있으나 이도 역시 혼혈에 의해 징기스칸 시대 몽고인과 괴리가 있을 것이고 인구도 300만 미만이다. 그렇다면 알타이어계통 언어를 말하고 오랑캐 신화 즉 단군신화를 가진 7천만 우리 민족이 문화적으로도 핏줄로도 최대의 오랑캐 계승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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