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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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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예속관계에서 본 대마도

일본의 조선 예속관계에서 본 대마도   대마도는 조선의 부속도서로서 지정학적으로 한일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유구한 세월 동안 좋은 일, 궂은 일을 몸소 겪으며 오늘을 이어왔다. 때로는 정치, 경제 및 군사적 마찰의 시련장으로 또는 이것들이 원인이 되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초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양국의 각축장에서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생존권이 부여되었으니 그 아픔은 한이 없는 처지에 놓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있다면 일본의 내부 사정과 대륙팽창 정책으로 우리는 얼마나 그들의 무력에 당해만 왔던가. 본토인 조선마저 그들에게 유린당해 왔는데 대마도는 오죽했으랴.   

이제 모두가 국제질서 속에서 제 영토를 도로 찾아 생존의 번영을 이룩하는 마당에, 일본은 역사적 당위성과 인간의 양심상 그 섬을 옛 주인에게 돌려주어야만 하는 당위선상에 놓인 것을 자인해야 한다. 그 이유를 앞에서 노했고, 그 핵심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조선조에 영토적 속성을 비롯하여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대마도는 우리의 질서 속에 있었음을 논증하면서, 그 속성의 하나인 대마·대일관계의 통교체제를 들었다. 이것을 총괄해보면 아래와 같다.   

대마도인들이 조선의 적극적인 각종 통제책에 의하여 왜구로부터 통교자 내지는 조선의 신하로 그 의무를 다하여 조선중심의 정치질서와 외교질서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고려 중엽부터 진봉(進奉)관계에 의해 우리에게 종속되었던 대마도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과 일본 내부의 사정으로 인하여 왜구로 변질되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조선의 영토보호책에 의거하여 다시 조선중심의 정치 및 외교질서에 편제되었다.   

즉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조선국왕과 일본장군을 중국의 책봉체제를 전제로 하여 대등교린에 넣었으나, 그 과정은 우리 정부에 조공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한 선상에서 왜구를 금압하려 했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자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통교하는 무든 왜인으로 하여금 대마도주를 대변자로 조선이 서정한 각종 통제규정을 따르게 함으로써 그들을 조선중심의 질서 속으로 예속화시켜 나갔다.   

특히 이들이 수직제도를 통하여 조선의 관직을 제수 받았으며, 조선으로부터 하사 받은 조선관복을 입고 입조하여 국왕을 알현하고 신하로서의 충성을 다짐한 사실들은 바로 대마도인은 물론 일본 본토의 유력한 호족까지도 조선의 정치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었다는 분명한 사실들을 증명해 준다.   

결국 대마도인들은 조선이 설정한 질서 속에서 통교자와 신하로서의 특권을 보장받아 그들의 생존을 유지해 갔던 것이다. 이러한 대마도의 속성은 메이지 정부에 의해 조선통교권이 박탈되기 전까지는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를 특징 지워주는 고유한 속성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여기서 꼭 알아야 할 일은 대마도의 일본에 대한 속성은 일시적인 힘에 의한 강박으로 어쩔 수 없었던 과도적 현상이었다는 점과, 조선과 일본과의 교역에서 대마도인이 중계한 교역의 중심적 역할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마도와 조선, 일본과 대마도의 지정학적 여건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김화홍(대마도도 한국땅, 知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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