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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만강 녹둔도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가 우리 귀에 익은 것은 이순신 장군 때문이다. 이순신은 선조 20년(1587) 유성룡의 천거로 조산(造山)만호가 되면서 녹둔도 둔전관을 겸임했다. 그해 8월 여진족의 기습으로 둔전 감관 이경번(李景藩) 등이 전사했을 때 이순신은 추격전을 펼쳐 적 여러 명을 전사시키고 끌려가던 60여 명의 백성들을 탈환했다.

그러나 병사(兵使) 이일(李鎰)은 10여 명이 전사하고 106명이 잡혀간 책임을 이순신에게 돌려 죽이려 했다. 백사 이항복(李恒福)의 ‘고(故) 통제사 이공(李公)의 유사(遺事)’에서는 이때 “친구 선거이(宣居怡)가 이순신이 죄를 면치 못할까 두려워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권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자, 그는 정색하며,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린 것인데, 술은 무엇 하러 마신단 말인가’라고 거부했다”고 전한다. 이순신은 군사 증원을 여러 번 요청했지만 이일이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작되어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낮춰졌다.

녹둔도는 세종 때 이미 경흥부(慶興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성종 17년(1486) 이계동(李季仝)은 “조산 사람들이 봄에는 녹둔도에 들어가 농사짓고 수확 후 돌아오는데, 왕래가 고생스러워 섬에 남아서 방수(防戍)하려 한다”면서 “이 섬에는 진흙이 없어서 풀이나 지푸라기를 모래와 섞어서 벽에 바르는데, 비바람이 불면 무너져서 남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종 4년 유순정이 “비옥하여 경작할 만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농지는 비옥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분명히 조선 영토로 명기되어 있는 녹둔도에 대해 고종은 재위 20년(1883)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어윤중(魚允中)에게 감계귀정(勘界歸正·영토를 살펴서 바르게 하는 것)을 명했다.

북한은 1990년 옛 소련과 영토 조약을 체결하면서 녹둔도를 넘겨주었는데, 최근 러시아가 여기에 제방을 쌓는다는 소식이다. 백두산 반쪽을 중국에 넘겨준 데 이어 녹둔도까지 넘겨주었으니, 박지원이 ‘열하일기’의 ‘도강록(渡江錄)’에서, “조선의 옛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오그라들었다[朝鮮舊疆, 不戰自蹙矣]”라는 한탄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2006. 11. 29.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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