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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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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둔도의 지리적 상황

씨받이까지 해가며 아들 낳기를 염원했던 내륙의 사회풍조와는 달리 두만강변의 변경지역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오히려 목놓아 탄식하였다.
 
그 이유는 아들은 낳자마자 군적에 올라 군영에 소집되어 갈 때까지 군포라는 병역 유예세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중한 세를 면하기 위해 아들을 낳은 부모는 아들놈의 고추를 거세하는 비정의 습속이 있었음을 온성 지역에 유배당했던 유계(兪棨)의 시남집(市南集)에 묘사되어 있고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북한기략(北寒記略)에는 민속학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던 재가승(在家僧) 부락의 생활 실상을 적고 있는 등 이 일대는 변경지역의 특성을 오래 동안 이어오고 있어 그만큼 민족의 비애가 남달리 서려 온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역 주변에 자리하고 있던 녹둔도는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어 그 위치나 규모에 대한 개략적인 윤곽은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지도들이 현대지도와 같이 정밀도는 결여하고 있다 하더라도 고유의 영토의식을 확연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섬은 지리적으로 두만강 물줄기가 최하류로 흘러드는 두만강 입해처(入海處)에 있음으로서 홍수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게 되면 자연히 상류의 토사가 섬 주변으로 밀려들어 퇴적되면서 점차로 강바닥이 메워져 나갔다.
 
정조때 우리나라 북방 변경지대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이계(耳溪) 홍양호가 경흥부사로 있을 때 그가 작성 한 관북제읍록강식목계(關北諸邑錄江植木啓)가 있는데 부족한 병력으로 진보를 지켜 나가기 어려우니 그 방편으로 두만강변에 식수를 하고 또한 수해에 대비토록 하자고 건의해 온 바 있다.
 
즉 두만강변이 급한 물살로 강 연안이 깎이고 돌출하는 곳이 생기는 등 홍수가 날 때마다 江邊(강변)의 침식현상이 일어나, 강 연안 일대가 수세충결(水勢衝決)로 변화가 자심해지고 한쪽 땅 모퉁이가 잘려 나가는 등 국토의 감축을 가져오니 이를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연재해로 인한 국토의 감축과 외적의 침입에 따른 국토의 유린 등 변경지대의 재란을 매우 우려해 이 방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의 우려는 금기이입피지(今己移入彼地)라는 표현을 빌려 오늘의 이 땅이 내일 피안의 땅이 되면서 강 하류로 퇴적층이 심화돼 가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어 이미 녹둔도의 운명을 예언이나 한 듯한 감을 갖게 한다.
 
녹둔도의 연륙시기에 대해 일본 외교문서 가운데 수록되어 있는 1890년대의 녹둔도  관계잡철속에 당시 부산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영사 입전혁(立田革)이 블라디보스톡을 순회 중 경흥감리 김우현과의 대화 중 김이 말하기를 수십 년 전 강류가 변해 섬 서방으로 흘러 동쪽은 거의 수류가 없어짐에 따라 녹둔도는 연해주에 붙어 버렸다고 하였다.
 
일본 양속함에 승선 이 지역 정찰을 한 천상(川上)은 20-30년 전부터 강물이 서쪽으로 흘러 현재는 조선 연안 쪽으로 강류가 나있고 동쪽으로는 노령과 연접되어 노령화되었다 라고 하고 있다.
 
녹둔도가 노령화된 이후 이 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고종은 1884년 12월초 친군전영사 한규직(親軍前營使 韓圭稷)의 부하 전영령관(前營領官) 권동수(權東洙), 김용원(金鏞元)을 해삼위로 밀파할 즈음 오위장(五衛將) 김광훈(金光勳)과 신선욱(申先郁)을 수행케 하였다.  이들은 연해주 일대의 군사시설을 살피고 동시에 우리 교포들의 실상을 탐지하고 나아가 녹둔도의 지형을 함께 제도해 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들이 작성한 아국여지도는 11절 23면의 절첩장( 折帖帳) 형식에 천연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맨 첫 장에 지도의 목록이 들어 있는데 부청아형정(附淸俄形情), 관방병장((關防兵將)), 호다산아민(戶多山俄民), 교계상담(交界相談) 등 4개 항목과 지도 여백에 제도자가 답사한 지역의 형세, 민가, 호수 등이 부기되어 있는데 여기에 녹둔도를 위시한 한인들이 거주하는 29개 지역의 가호수와 인구수를 밝히고 있다.
 
이 지도 2면에는 나선동도(羅鮮洞圖)가 그려져 있는데 주기하기를 나선동은 우리나라와 청, 아 3국의 이해가 한곳에 얽혀 이곳이 무사하면 백년토록 오래 살만한 곳이 되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일세의 전장이 될 것이다| 라고 하고 있다.  나선동은 남북이 25리 동서 30리로 남으로 경흥 20리, 서북으로 경원 1백리, 북으로 훈춘 80리, 동으로 연추 70리, 목허우(木許隅)와 90리이다.  나선도에는 호수 153호 인구 1420명에 농토가 20여 리로 식량 산출이 넉넉하며 팔지(八池)에서 민물고기가 잡히며 행상이 번다하여 도회와 같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병력 1천명이 주둔 방위하고 있으며 전선을 가설 통신망을 갖추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녹둔도동에는 호구 113호에 인구 822명이며 이곳의 넓이는 남북이 70리, 동서 30리로 들은 넓고 농토는 비옥하다고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서수라와 30리, 조산보와는 15리, 북쪽은 경흥부와 1백리이며 서선택과는 70리로, 서쪽은 협착하고 동쪽은 대해와 접하고 있다.  여기에 사는 이들은 모두 한인으로 본국의 풍교(風敎)를 본 받으며 아라사의 습속은 따르지 않고 있으며 누백년간 열성조(列聖祖)가 함육해 온 곳으로 그 은택이 경흥지에 실린바와 같다고 하고 이순신이 조산만호시 둔전경략 사실과 혁파실상 등을 열거하고 있다.  위의 기록 하단에는 농산물 등으로 벼, 피, 옥수수, 보리, 밀 수산물로 연어, 붕어, 황어, 송어 그리고 청백염을 들고 있다.  동도(洞圖) 가운데는 녹둔도촌아민소거(鹿屯島村我民所居) 유방술위병(有防戌衛兵)이라 적고 있어 군영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서선택촌(瑞仙澤村)은 남복 10리 동서 2리의 넓이에 녹둔동과는 7리 서쪽인 경흥과 북쪽의 나선동과는 각기 40리이며, 연추와는 60리로 거민은 76호에 주민 478명으로 산물은 녹둔동과 같다고 하였다.

-한국의 영토관리 정책에 관한 연구- 양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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