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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8 문] 우용정의 조사단 일행이 실제로 조사한 1900년 당시의 울릉도의 실태는 어떠했는가? 일본인들이...

[제 68 문] 우용정의 조사단 일행이 실제로 조사한 1900년 당시의 울릉도의 실태는 어떠했는가? 일본인들이 밀입도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삼림을 벌채해가고 있었는가?

[답] 우용정 일행은 1900년 5월 31일 울릉도에 도착하여 6월 1일부터 5일간 울릉도 실태를 조사한 다음 귀경하여 귀경하여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요지만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울릉도는 길이가 70리, 폭이 40리, 둘레가 약 140∼150리의 섬인데, 규목(槻木)·자단(紫檀)·백자(栢子)·감탕(甘湯) 등 귀한 나무들과 각종의 수목이 울창하다. 도민들이 개간한 토양은 비옥하여 거름을 주지 않아도 곡식이 잘 자라서 대맥(大麥)·소맥(小麥)·황두(黃豆)·감저(甘藷) 등이 식량을 하고도 남아 판매하고 있다. 그간 개간된 농경지 면적은 7,700여 두락이며, 호수는 400여 호에 인구는 남녀 합하여 1,700여 명이다. 면화(綿花)·마포(麻布)·지속(紙屬)등과 같은 것도 외부에서 들여오지 않고 자급하고 있다. 흉년에는 학조(鶴鳥)라는 날짐승과 명이(茗夷)라는 식물이 있어 구황(救荒)에 쓰이므로 기아를 면할 수 있다. 삼림이 울창함에도 맹수의 해와 가시돋친 수목의 해가 없다. 오직 지세의 경사가 심하여 水田 농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2) 일본인 잡입 체류자는 57間에 남녀 합하여 144명이며, 정박하고 있는 일본 선박은 11척인데, 내왕하는 商船은 일정하지 않아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없다. 작년 이래 일본인들이 불법 도벌한 규목(槻木)은 71주이고, 그 밖의 향목(香木)과 잡목을 도벌한 것은 매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또한 지난 1년에 일본인들이 감탕목(甘湯木)의 껍질을 벗겨 생집을 내어 실어간 것이 1,000여 통이나 되니 그들이 수년만 더 살아도 산에 가득찬 수목이 반드시 메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의 폭동과 행패도 매우 심하다. 그러나 島監은 단신빈주목이므로 비록 이를 禁止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일본인이 울릉도에 1일 와서 머물면 1일 해가 있고 2일 머물면 2일의 해가 있다. 이번 조사 때 그들은 마지못해 퇴거하겠다고 응답했는데, 원래 일본인들의 잠입이 조약 위반이니 일본공사에게 요구하여 철거시킨 연후에야 도민을 보호할 수 있고 삼림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본 조사위원이 순시하는 중에도 일본상선 4척이 들어와서 이튿날 탐문해보니 도끼와 톱 등을 장비하고 벌목장인 40명과 그 밖의 공장 등 모두 70여 명이 하륙(下陸)했다고 하였다. 일본령사와 의논하여 일본인이 도벌을 못 하도록 엄명을 내렸으나, 우리 배가 회선한 후 어떠한 침략과 폭행을 자행할지 걱정이니 이제 모두 철귀(撤歸)시켜야 할 것이다.

(3) 울릉도민의 교통과 통신을 담당할 우리 선박이 없어서 도민이 개운환(開運丸)이라는 이름의 범선 1척을 구입코자 하는데 그 대금을 변통할 방법이 없다. 이에 본 조사위원이 각동의 조사 때에 발견한 도벌한 규목 106주의 대금과 도벌 벌금 400금을 합하여 도민이 공의(公議)해서 개운환(開運丸)을 구입토록 하고 개운회사(開運會社)를 설립하여 경영하도록 일이 급하여 먼저 조처를 해놓고 돌아왔으니 사후 허락을 청한다.

(4) 개국 504년 9월 내부(內部)에서 울릉도에 도감을 두어 전도(全島)의 사무를 관장케 했으나 도감의 수하에 서기 사용(使傭)이 1명도 없고 또한 월봉(月俸)도 없으니, 혹 도민의 불법행위가 있다 할지라도 어찌 지휘 명령실행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일본인과 우리 백성이 싸워 범법을 행하고도 관장(官長)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현재 鬱陵島官制請議書가 의정부에 제출되어 재결을 기다리고 있는바, 島監의 월봉과 서기·사용의 월급을 반드시 울릉도 내에서 조달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경비조달의 방책은 울릉도의 호수가 이미 400여 호이니 매호당 여름에 보리 2두, 겨울에 콩 2두씩을 받으면 합계 80석이 되니 이를 분정(分定)하여 월봉과 경비에 사용토록 규칙을 만드는 것이 어떠한지 처분을 바란다.

(5) 울릉도의 세금은 미역세를 주로 하여 100분의 5율로 징수하는데, 대체로 전남 출신 어민들로부터 500∼600원을 징수하고 있다. 본래 미역세는 100분의 10을 징수했던 것인데 근년에 島監이 전라민의 청원에 따라 100분의 5로 감해준 것이다. 그러나 울릉도민의 의론은 모두 100분의 5율은 너무 가볍고 100분의 10도 오히려 가벼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100분의 10율을 다시 정하면 1년의 세액이 1,000여 원이 되므로 이로써 울릉도의 경비를 마련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세(造船稅)는 매 1把에 5양씩을 징수하는데 매년 전라민의 造船은 10척 내외가 된다고 한다. 封山禁養의 땅을 다른 나라 사람에 맡기는 것이 불가하므로 이제부터는 다시 여기서 造船할 뜻을 갖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었으면 한다.

(6) 일본인의 납세에 대해서는 도감(島監)이 새로 부임했던 丙申(1896년), 丁酉(1897년) 두 해에는 혹 벌금을 징수하고 또한 화물의 100분의 2세를 징수했었으나, 수년 이래로 도감이 스스로 불개항장(不開港場)에서의 징세가 불가함을 알게 된 데다가 일본인들의 오만이 심하여 실제로 납세에 응하지 않고 있으므로 실제로는 세금을 징수하지 않고 있다.

(7) 작년 10월 1일 러시아군함 1척이 와서 정박해서 장교 1명, 통역 1명, 병사 7명 등이 하육하여 8일간 체류하면서 산천을 둘러보고 지도를 작성했으며, 槻木 1주를 일본인으로부터 75양에 구입하고, 명년 3월에 다시 오겠다는 뜻을 전하고 퇴거하였다.

그러나 울릉도의 사정은 우용정이 울릉도의 실태를 조사하고 회항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상선 5척을 대놓고 울릉도에 하륙한 일본인들과 이미 와 있던 일본인들이 다시 대규모로 불법 도벌을 자행하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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