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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0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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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4 문] 조선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가? 울릉도의 목재를 일본측에서 탐내었다면...

[제 64 문] 조선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가? 울릉도의 목재를 일본측에서 탐내었다면 큰 경제적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었을 터인데, 조선정부는 왜 이를 벌채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는가?

[답] 청·일전쟁 후 일본은 1895년 양력 10월 8일 경복궁을 야습하여 민비(명성황후)시해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국왕 고종은 일본의 독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1896년 2월 11일 국왕이 러시아공사관에 옮겨 들어가는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하였다.

국왕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 안에서 신정부를 조직하고 정사를 보자, 러시아측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신정부는 친러수구파 정부로 조직되고, 국왕 고종도 러시아를 비롯한 서강열간의 이권침탈요구를 많이 받게 되었다. 이 때 러시아는 고종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1896년 9월 "두만강·압록강 유역 대안 산림과 울릉도 삼림의 벌채권"을 러시아 회사(대표 J. I. Briner)에게 '이권'(利權)으로 25년간 양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울릉도·독도는 조선(대한제국)의 영토였지만, 울릉도의 재목은 1896년부터 25년간 제정 러시아가 '벌채권'을 갖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1896년 9월 이후에는 조선정부는 울릉도의 나무를 벌채하여 외국에 수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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