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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0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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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1 문] 동남제도개척사 겸 포경사 김옥균은 울릉도·독도 재개척에 성공했는가?

[제 61 문] 동남제도개척사 겸 포경사 김옥균은 울릉도·독도 재개척에 성공했는가?

[답] 김옥균 등 개화당은 '근대국가'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울릉도·죽서도·독도에 일본인들이 들이닥칠 것을 염려하여 재개척 사업에 열정적이었다. 그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ㄱ) 정부 주도하에 강원도·경상도·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이주민 지원자를 모집하여 울릉도에 이주시키고 적극 후원하였다. 그 결과 이주민 수가 1883∼1884년에는 급속히 증가하였다.

(ㄴ) 정부와 개척사가 일본측에 일본인들의 울릉도 불법침입에 강경하게 항의하고 요구하여 울릉도에 들어온 일본인들을 모두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일본 내무성은 1883년 9월 관리와 순경 등 31명을 태운 越後丸이란 배를 울릉도에 파견하여 그동안 울릉도에 불법 침입해서 거주하기 시작한 일본인 254명 모두를 태워 철수시켰다. 그 결과 울릉도에는 한 명의 일본인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개척사 김옥균의 울릉도·독도 재개척사업의 큰 성과였다.

(ㄷ) 개척사 김옥균은 정부의 허락도 없이 미곡을 받고 일본 天壽丸 선장에게 울릉도삼림 벌채에 대한 허가장을 발급한 울릉도 도장 金錫奎를 파면하고 처벌하였다. 김옥균은 울릉도삼림을 국가가 외화를 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간주하였다.

(ㄹ) 개척사 김옥균은 조선정부가 울릉도삼림을 벌채하여 일본이 수출하는 정책을 채택하여 개화당 白春培를 1884년 8월 일본에 파견해서 일본 萬里丸 선장과 판매계약을 체약하였다. 김옥균은 울릉도삼림 벌채와 임업·어업 개발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울릉도 삼림을 담보로 차관교섭을 하였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에 실패하여 김옥균 등이 일본에 망명하자 개화당의 울릉도·독도 재개척사업은 일단 장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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