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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 문] 울릉도 '재개척사업'은 정책 채택 직후 바로 실시되었는가? 언제 어떻게 울릉도 [재개척사업]이...

제 60 문] 울릉도 '재개척사업'은 정책 채택 직후 바로 실시되었는가? 언제 어떻게 울릉도 [재개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는가?

[답] 울릉도 [재개척정책]이 채택된 8월 20일은 이미 가을이어서 재개척 사업의 실시에는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었다. 그리하여 1883년 음력 3월부터 본격적으로 울릉도 '재개척' 사업이 실행되기 시작하였다.

국왕은 우선 1883년(고종 20년) 음력 3월 16일 통리기무아문 참의 김옥균(金玉均)을 [동남제도개척사 겸 관포경사(東南諸島開拓使 兼 管捕鯨事)에 임명하고, 임지로 떠날 때 일일이 웃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절차를 면제하니, 편리한 대로 왕래하면서 왕에게 직접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김옥균을 '울릉도개척사'에 임명하지 않고 '동남제도개척사'에 임명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국왕이 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을 파견할 때와 보고를 받을 때 울릉도(옛 우산국)가 ①울릉도 ②죽서도(죽도: 울릉도 바로 옆의 작은 바위섬) ③우산도(독도)의 3도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김옥균의 직책은 '울릉도' 재개척과 함께 '죽서도'와 '독도(우산도)' 재개척도 과업으로 되어 동남여러섬들(울릉도·죽서도·독도=우산도)의 재개척 사신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즉 김옥균의 직책은 ①울릉도를 재개척할 뿐 아니라 ②울릉도 바로 옆의 작은 바위섬 죽서도(죽도)와 ③우산도(독도)도 재개척하며, ④울릉도·독도 일대의 '고래잡이'도 관장하는 책임자가 된 것이었다. 당시 동해는 세계적인 고래잡이 어장이었다. 김옥균의 '동남제도개척사' 직책에 '독도=우산도' 재개척과 관리가 이미 1883년 3월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옥균은 즉각 울릉도 이주민 최초의 자원자를 모집하고, 최초의 이주민을 위한 물자 준비를 하였다. 현재 규장각(奎章閣) 도서에 1883년 4월자로 된 {울릉도개척시 선격량미잡물용입가량성책(鬱陵島開拓時 船格糧米雜物容入假量成冊)}이란 책이 있는데, 이것이 강원도관찰사를 시켜서 김옥균이 최초의 이주민을 울릉도에 보낼 때 준비한 물자이다. 그 내용을 보면, 선박 4척, 사공과 격군 40명, 종자로 쓸 벼 20석, 콩 5석, 조 2석, 팥 1석, 인솔 인구 30여명이 9월까지 식량으로 사용할 백미(쌀) 60석, 기계에 들어갈 철물 40근, 가마솥 2좌, 사기 6죽, 숟가락과 젓가락 30개, 돗자리 3죽, 고추 3통, 소금 5석, 간장 5석, 목수 2명, 대장장이 2명, 백목 5필, 마포 5필, 삼신발 5죽, 짚신 5죽, 소 암수 2마리, 사기옹기 5좌, 총 3자루, 총검 4자루, 탄환 300개, 화약 3근, 銅爐口 2좌 등이었다.

또한 김옥균은 최초의 이주민 자원자를 모집했는데, 모두 16호 54명이 응모하였다. 이에 1883년 음력 4월, 최초의 이주민 16호 54명이 수백년 비워두었던 울릉도에 도착하여 마을을 만들면서 농경지를 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 최초의 이주민 자원자와 그들이 만든 마을과 개간한 농경지는 3개월 후인 1883년 7월에 다음과 같았다고 규장각 도서 {강원도 울릉도 신입 민호·인구·성명·연세 및 전토기간 수효 성책(江原道鬱陵島 新入 民戶人口姓名年歲及田土起墾 數爻成冊)}은 기록하여 남기고 있다.  

大黃土浦(대황토포)

張德來(장덕래)-연세 72, 본 仁同, 처 김씨-연세 59, 본 安東, 아들 琦現(기현)-연세 33, 둘째아들 琦英(기영)-연세25, 셋째아들 琦良(기량)-연세 6. 경상도 安義에서 들어옴. 개간 2石지.

金 泰(김원태)-연세 65, 본 江陵, 아들 鐸鄕(탁향)-연세 37, 며느리 李氏-연세 35, 손자 辰燮(진섭)-연세 14, 둘째손자 在福-연세 2. 강원도 강릉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李回永(이회영)-연세 36, 본 平昌, 처 朴氏-연세 36, 본 密陽, 아들 仁甲(인갑)-연세 14, 둘째아들 義甲(의갑)-연세 11. 강원도 강릉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黃守萬(황수만)-연세 24, 본 增山, 처 李氏-연세 17, 본 平昌. 강원도 강릉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谷浦(곡포)

裵敬敏(배경민)-연세 33, 본 金海. 경기도에서 들어옴.

尹果烈(윤과열)-연세 40, 본 坡平. 경상도 善山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卞吉良(변길량)-연세 36. 경상도 廷日에서 들어옴. 개간 半石지.

宋景柱(송경주)-연세 67, 본 礪山. 경상도 慶州에서 들어옴. 개간 5두락지.

金成彦(김성언)-연세 56, 본 慶州. 경상도 慶州에서 들어옴. 개간 10두락지. 

錐峯(추봉)

田在桓(전재환)-연세 33, 본 潭陽, 처 朱씨-연세 34, 본 熊川, 아들 時龍(시룡)-연세 5, 둘째아들 越龍(월룡)-연세 3, 친족아저씨 旒(유)-연세 58, 친족아우 有桓(유환)-연세 31, 率人 裵尙三(배상삼)-연세 32, 거주지 대구. 강원도 울진에서 들어옴. 개간 3石지.

朱晉鉉(주진현)-연세 32, 본 綾城. 경상도 안동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玄浦洞(현포동)

鄭直源(정직원)-연세 70, 본 廷日, 아들 雲杓(운표)-연세 31, 며느리 및 딸 하 5명. 강원도 울진에서 들어옴. 개간 2石지.

趙鐘桓(조종환)-연세 39, 본 漢陽. 충청도 충주에서 들어옴. 개간 5두락지.

과부 李씨 母女. 충청도 충주에서 들어옴.

洪景燮(홍경섭)-연세 57, 본 南陽, 처 김씨-연세 55, 본 江陵, 아들 在翼(재익)-연세 34, 며느리 김씨-연세 36, 본 黃州, 손자 守曾(수증)-연세 5, 손녀-연세 11, 둘째손녀-연세 11, 둘째아들 在敬-연세 20. 강원도 강릉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崔在洽(최재흡)-연세 82, 본 江陵, 아들 亨坤(형곤)-연세 50, 며느리 김씨-연세 40, 손자 河龍-연세 13, 둘째손자 又龍-연세 7, 손녀-연세 22, 둘째아들 桂秀(계수)-연세 44. 강원도 강릉에서 들어옴. 개간 1石지. 

위의 최초의 이주민 자원자는 중남부 지방의 전국에서 응모했다. 이 최초의 아주민 16호는 이룩한 마을별로는 대황토포(大黃土浦)에 4호, 곡포(谷浦)에 5호, 추봉(錐峰)에 2호, 현포동(玄浦洞)에 5호가 정착하여 농경지를 개간하였다. 후일 '독도의용수비대(獨島義勇守備隊)'를 편성하여 1950년대에 백성들의 힘으로 독도를 지킨 홍순칠(洪淳七)은 위의 최초의 이민자로서 곡포(谷浦)에 자리잡은 홍경섭(洪景燮)의 손자였다.

그리하여 1883년 4월, 최초의 이주민 16호 54명과 그 이후 이주민들의 간고한 자연과의 투쟁 및 일제 침략자들과의 투쟁에 의하여 한국영토 주권의 동변인 울릉도·독도와 동해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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