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0년 04월 09일 목요일

내용검색  

자주 묻는 질문

한일어업협정문답

독도연표

독도의 자연환경

111문 111답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독도학습자료실 > 독도 111문 111답

 


[제 57 문] 조선 정부는 일본이 군함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실측 조사하고 '죽도'니, '송도'니...

[제 57 문] 조선 정부는 일본이 군함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실측 조사하고 '죽도'니, '송도'니 '리앙쿠르드岩'이니 하고 자의로 이름을 바꾸어 붙이며 해안과 영토를 넘보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잠만 자고 있었는가?

[답] 조선 정부도 서서히 각성하고 있었다. 울릉도에 대한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울릉도에의 국민 이주를 허가하여 울릉도 및 독도를 재개척하려는 움직임이 대두하였다.

일본에서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권이 붕괴되고 메이지 유신 정권이 수립됨과 동시에 '정한론'과 대외팽창이 적극 고취되자, 도쿠가와 막부 시대 말까지 국경을 넘어 울릉도·독도에 건너가지 못했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국경을 넘어 울릉도에 몰래 들어와서 목재를 베어가고 고지잡이를 하는 무리들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1881년 울릉도를 순시(巡視)·수토(搜討)하러 다녀온 조선 수토관들이 적발하여 강원도관찰사를 통해서 중앙정부에 보고하였다.

조선왕조의 개항 후에 설치된 새 행정기구인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①일본정부에 항의문서를 보내어 일본인들의 울릉도 불법 침입에 대한 금지령의 실시를 요구하고, ②울릉도 방위와 수호를 위해 부호군(副護軍) 이규원(李奎遠)을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에 임명해서 자세한 현지조사를 실시한 후 그 보고를 검토해서 울릉도 '공도정책'의 폐기 여부와 '재개척'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여, 이 대책안을 국왕에게 건의하였다.

국왕도 통리기무아문의 건의를 윤허하여, 이규원을 1881년 5월 23일 '울릉도검찰사'에 임명하였다.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은 발령 후 출발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면 벌목철이 지나서 일본인들이 철수해버린 다음이 될 것이므로, 출발 예정일을 다음해로 넘기었다. 그 결과 이규원이 울릉도 현지조사를 위하여 정작 서울을 출발한 것은 1882년 음력 4월 10일이었다.

이규원은 출발에 앞서 4월 7일 국왕을 알현하여 하직 인사를 올렸는데, 이 자리에서 국왕은 울릉도 동쪽 30리 정도의 거리에 '우산도(독도)'가 있고, 또 '송죽도(松竹島)'라는 섬이 있어서 3섬이 있다는 설도 있으니 이것도 조사해 오도록 하고, 울릉도 현지조사 때에는 사람을 이주시켜 읍(邑)을 설치할 만한 후보지를 조사해 오라고 명령하여, 울릉도 '재개척'의 의지를 강력하게 보이었다.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 기업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