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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 문] 그렇다면, 당시 일본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 총리대신부)은 울릉도와 독도를...

제 53 문] 그렇다면, 당시 일본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太政官, 총리대신부)은 울릉도와 독도를 어느 나라의 영토라고 판정하고 확인했는가?

[답] 태정관에서는 이를 당시 검토해보고 울릉도(竹島)와 그 밖의 1섬 독도(松島)는 내무성의 판단과 같이 역시 일본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곳이고 조선영토라고 판정하여 최종결정을 내렸다.

태정관(총리대신부, 右大臣 岩倉具視)에서는 먼저 내무성의 질품서를 접수하여 검토한 후, 조사국장의 기안으로 1877년 3월 20일 [품의한 취지의 竹島(죽도, 울릉도) 外 1島(松島, 독도)의 건에 대하여 본방(本邦, 일본-인용자)은 관계없다는 것을 심득(心得)할 것]이라는 지령문을 작성하여 이를 최종결정하였다.  

[별지 內務省 품의 日本海內竹島外一島地籍編纂之件.   

위는 元祿 5년 조선인이 入島한 이래 舊政府와 該國[조선]과의 왕복의 결과 마침내 本邦[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들어 상신한 품의의 취지를 듣고, 다음과 같이 指令을 작성함이 가한지 이에 품의합니다.

指令按

품의한 취지의 竹島 外 一島의 건에 대하여 本邦[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心得할 것.] 

위의 태정관의 지령문에서 [죽도(울릉도)와 그 외 1도(송도, 우산도, 독도)가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은 그 앞에 [위는 元祿(원록) 5년 조선인(안용복-인용자)이 입도한 이래 그 나라(조선-인용자)와 (문서) 왕복의 결과 일본과 관계없다]고 본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조선영토]이므로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명백히 밝혀 최종 결정한 것이었다.

태정관 용지에 작성된 이 귀중한 공문서의 지령문에는 태정관 우대신 岩倉具視(이와쿠라 도모미, 메이지 유신의 최고지도자의 하나)의 도장이 찍혀있다.

일본의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은 최종 결정한 이 지령문을 1877년 3월 29일 정식으로 내무성에 내려보내어 지령의 절차를 완료하였다.

일본 내무성은 태정관의 이 지령문을 1877년 4월 9일자로 시마네현에 내려 보내어 현지에서도 이 문제가 완전히 종결을 짓게 되었다.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은 1877년 3월 29일자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고 조선영토이다]라는 최종 결정의 지령문을 재확인하여 공문서로서 내무성과 시마네현에 내려 보낸 것이었다.

당시 일본 최고국가기관의 울릉도·독도가 조선영토이고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1877년 3월 29일자의 이 최종 결정은 그에 앞서 도쿠가와 막부 장군이 1696년 1월 28일 내린 결정과 같이 획기적인 것이었다.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 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이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이고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요지의 최종 결정을 내려서 내무성과 시마네현에 공문서를 지령한 것은 [독도는 한국영토이다]는 진실을 일본측 자료가 재확인하는 결정적 자료이며, 오늘날 일본정부가 억지를 쓰는,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잘 증명해주는 결정적 일본공문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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