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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문] 안용복(安龍福)은 두 차례나 일본에 건너가서 울릉도와 독도(우산도)를 지키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조정에서는 포상이나 제대로 했는가?

[답] 포상은 커녕 벌을 주려고 하여 간신히 구해 내었다.

안용복의 제1차 도일(渡日)은 일본의 오오다니(大谷) 가문 어부들에게 납치되어 간 것이니, 조선정부측으로서는 공도정책을 적용하여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울릉도에 들어간 가벼운 죄만 물으면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마도 도주가 안용복을 묶어서 동래부에 송환하면서 일본영토인 '죽도'에 침범한 죄인이라고 주장하자, 당시 집권한 온건대응파는 안용복을 동래부 감옥에 가두어 둔채 "귀국 영토 죽도" 운운의 굴욕적인 서한을 발송했었다. 그러나 곧 정권이 교체되어 강경대응파가 집권하자 안용복도 석방해 버리고, 온건대응파가 보낸 굴욕적 회답서한도 취소한 후 새로이 '울릉도가 곧 죽도'로서 조선영토라고 쓴 강경한 새 회답문서를 발송했었다.

그러나 안용복의 제2차 도일은 문제가 단순하지 않았다. 우선 대마도 도주가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반드시 대마도 도주의 창구와 조선측이 대마도 도주에게 새겨서 내려준 도장에 의거하도록 약정되어 있었는데, 안용복이 대마도 창구를 거치지 않고 무시한 채 직접 백기주 태수와 외교교섭을 한 사실에 처벌을 요구하는 강경한 항의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안용복의 제2차 도일은 납치되었거나 표류된 것이 아니라 안용복이 처음부터 목적을 갖고 준비 후에 정부 허가없이 일부로 국경을 넘어 일본에 건너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안용복이 귀국해서 강원도 양양에 정박하여 문서로 전후 사실을 보고하자, 조선 조정은 우선 안용복을 서울로 불러 올려 가두어 놓고, 대신들 사이에 논란이 자자하였다.

좌의정 윤지선(尹址善)은 온건대응파의 건의를 받고, 만일 안용복을 사형에 처하여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간사한 백성들 중에서 반드시 다른 나라에 들어가 일을 일으키는 자가 많아질 것이니 안용복을 극형에 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헌부가 이에 동조하여 극형을 주장하였다.

지사 신여철(申汝哲)은 안용복의 공이 죄를 능가하므로 그에게 죄를 주어서는 안되고, 즉시 석방하자고 주장하였다.

영중추지사 남구만(南九萬)과 영돈녕 윤지완(尹址完)은 강경대응파의 의견을 반영하여, 안용복이 비록 무단 월경죄를 범했지만 대마도 도주까지 울릉도가 조선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의 막부 관백이 울릉도·우산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하여 일본 어민의 월경 고기잡이를 금지시킨데에는 안용복의 공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사형을 감형하여 귀양보내는 정도로 처벌하자고 주장하였다. 특히 남구만은 안용복을 죽이면 대마도 도주만 기쁘게 할 뿐이지 나라의 약함을 보이어 일본과의 외교에도 없수임을 당할 것이라고 안용복의 극형을 극력 반대하였다.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은 남구만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리하여 쟁론 끝에 국왕이 남구만의 중간책을 채용해서 안용복을 사형에서 감형하여 귀양보냈다가, 후에 강경대응파가 석방해 주었다.

조선왕조 후기 실학파의 대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翼)은 안용복의 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나는 생각건대, 안용복은 곧 영웅호걸인 것이다. 미천한 일개 초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땅을 회복했으니, 부개자(傅介子)와 진탕(陳湯)에 비하여 그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며, 영특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상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먼저 형벌을 내리고 뒤에는 귀향을 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울릉도가 비록 척박하다고는 하나, 대마도도 또한 한 조각의 농토토 없는 곳으로서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내려오면서 우환거리가 되고 있다. 만일 울릉도를 한 번 빼앗긴다면 이는 또하나의 대마도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오는 재앙과 환란을 어찌 이루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로써 논하건대, 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 뿐이 아니었다. 고금에 장순왕(張循王)의 화원노졸(花園老卒)을 호걸이라고 칭송하나, 그가 이룩한 일은 큰 장사를 해서 큰 부자가 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가의 큰 계책에는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용복과 같은 이는 국가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항오(군대)에서 발탁하여 장수급으로 등용하고 그 뜻을 행하게 했다면, 그 이룩한 바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星湖僿說} 울릉도 조)

대실학자 이익은 안용복을 영웅호걸로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안용복의 업적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고을의 영토를 강적의 위험으로부터 회복했으니 용감할 뿐 아닐라 영특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울릉도·독도를 빼앗기어 동해 가운데 또 하나의 대마도가 생겼으면 조선에 매우 큰 재앙이 미칠뻔 했었다는 것이다. 안용복이 이를 막고 영토를 회복하여 지킨 큰 공적에 대해 조정은 상을 내리기는커녕 처음에는 사형선고를 내리고 다음에는 귀양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라고 한탄하였다. 이익은 안용복 같은 영웅호걸은 군인 장수로 발탁하여 나라의 인재로 써야 우리나라가 떨쳐 일어설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었다.

성호 이익 이후에는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을 비롯하여 모든 실학자들이 안용복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당시 조정 대신들의 단견과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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