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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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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 문] 안용복(安龍福)이 제2차로 일본을 다녀 온 후 조선정부와 일본정부 사이에 정식 외교교섭과 논쟁 종결의 문서 교환이 있었는가?

[답] 있었다. 도쿠가와 막부 장군(관백)이 1696년 1월 28일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재확인하고,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독도에의 고기잡이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이 재확인 결정을 대마도 도주가 대마도 형부대보를 조선에 보내어 조선정부에 알리고 외교교섭을 마친 후 그 결과를 막부 장군에게 보고하도록 명령하자, 대마도 도주는 돌아와 이 외교절차를 천천히 집행하기 시작하였다.

대마도 도주는 대마도에 돌아오자 곧바로 공식외교사절을 파견하지 않고 대마도에 들어와 있는 동래부 조선역관에게 1696년 연말 경에야 이 외교문서를 필사해 가도록 하면서, 막부 장군에게 조선정부가 보내는 감사의 서한을 먼저 대마도 도주를 경유하여 보내도록 권고하였다.

조선의 중앙정부가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재확인하고 일본인이 국경을 넘어 이섬으로 고기잡이 가는 것을 엄금하겠다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 장군의 외교문서(대마도 도주가 대리 작성)를 접수하여 읽은 것은 1년 후인 1697년 2월이었다. 조선정부에서는 일본측에 회답문서를 보낼 것인가 접수만 할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감사의 서한은 하지 않고 일본의 결정은 알았으니 우의를 돈독히 하자는 일반 외교서한 만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예조참의 이선부(李善溥)와 일본 대마주 형부대보(刑部大輔) 평의진(平義眞) 사이에 두 차례 외교서한 왕복이 있은 후에, 1699년 1월 일본측으로부터 조선측에 조선의 답서를 에도의 막부 장군에게 잘 전달했다는 최후의 확인 공한이 도착하여 외교 절차가 모두 종결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대마도 도주가 장기주 태수와 결탁하여 조선의 울릉도·우산도를 탈취하려고 시작한 울릉도·독도 영유권 논쟁은 1696년(숙종 22년, 일본   년) 1월 도쿠가와 막부 장군의 울릉도·독도가 조선영토이며 일본어부들의 월경 고기잡이를 금지한다는 재확인 결정에 의하여 완전히 논쟁 종결을 보았고, 이에 관한 외교문서의 교환도 1699년 1월 최종적으로 모두 끝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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