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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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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 문] 안용복(安龍福)은 1696년 1월과 12월 사이에 또 어떠한 활동을 했다는 것인가?

[제 43 문] 안용복(安龍福)은 1696년 1월과 12월 사이에 또 어떠한 활동을 했다는 것인가?

[답] 안용복은 1696년 봄에 조정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제2차로 일본에 건너가서 "울릉도와 독도(우산도)"가 조선영토임을 명확히 하고 울릉도·독도를 수호하려고 하였다.

이 때 안용복은 1696년 1월 일본 도쿠가와 막부 관백이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 독도가 조선영토이고, 울릉도·독도에의 일본 어민의 고기잡이 도해(渡海)를 금지한 사실을 알고 행동했는지 모르고 행동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안용복은 이전부터 대마도 일본인들과 통교가 있던 인물이고 일본어도 능숙했으므로, 도쿠가와 막부 관백의 결정을 마악 알고 출발했을 가능성도 높다.

안용복은 1696년(숙종 22년) 봄에 울산에 가서 울릉도에 가면 해산물이 많다고 하면서 순천 송광사의 장사꾼 중 뇌헌(雷憲), 글을 잘하는 이인성(李仁成), 사공 유일부(劉日夫), 유봉석(劉奉石), 김길성(金吉成), 김순립(金順立) 등 16명을 모아 울릉도에 들어갔다. 과연 울릉도에는 이미 다수의 일본 배들이 건너와 정박해 있으므로, 앞서 쓴 바와 같이 안용복은 [울릉도는 본래 우리 영토인데 어찌 감히 국경을 넘어 침범하는가. 너희들은 모두 묶어 마땅하다]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에 일본인들은 [우리들은 본래 松島(송도, 우산도, 독도)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를 나왔다가 이렇게 되었으니 마땅히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거짓말로 모면하려 하였다.

안용복은 앞서 쓴 바와 같이 다시 [송도(松島)는 곧 우산도(于山島)인데, 이 역시 우리나라의 땅이다. 너희들이 감히 여기에 산다고 하느냐(松島卽子(于)山島 此亦我國也 汝敢往此島)]고 꾸짖고 이들을 울릉도로부터 쫒아내었다.

안용복 등이 이튿날 새벽 배를 타고 우산도(于山島: 독도)에 들어가 보았더니 일본 어부들이 솥을 걸어 놓고 물고기를 조리고 있었다. 안용복 등이 막대기로 솥 걸어 놓은 것을 부수면서 큰 소리로 꾸짖으니 일본 어부들은 모두 배를 타고 돌아갔다고, {숙종실록}과 {증보문헌비고} 등에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 등은 그 길로 일본어부들을 쫒아 은기도(隱岐島: 玉岐島)로 들어갔다. 은기도 도주가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안용복은 큰 소리로, [몇년 전에 내가 이곳에 들아와 울릉도·우산도(독도) 등의 섬을 조선 땅으로 정하고 관백의 문서를 받아가기에 이르렀는데, 일본은 정해진 격식이 없이 또 우리 영토를 침범했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라고 말하였다. 이에 은기도 도주는 안용복의 항의를 백기주(伯耆州) 태수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래 기다려도 백기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에 안용복 등은 분격하여 배를 타고 백기주(지금의 시네마 현)로 진향하였다. 안용복 등은 스스로 [울릉·우산 양도 감세장(鬱陵·于山兩島監稅將)]이라고 가칭하고 백기주 태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통고하니, 백기주 태수가 인마를 보내 맞이하였다. 안용복은 위의를 갖추어 백기주 태수와 마루 위에 마주 앉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중간 계단에 앉았다. 백기주 태수가 일본에 들어온 이유를 물으니, 안용복은 [전날 두 섬(울릉도와 독도…인용자)의 일로 문서를 받았음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대마도 도주가 문서를 탈취하고 중간에서 위조하여 여러번 사절을 보내서 불법으로 횡침하니 내가 장차 관백에게 상소하여 (대마도 도주의) 죄상을 낱낱이 진술하겠다]고 따졌다. 백기주 태수가 이를 허락했으므로 안용복은 이인성에게 상소문을 지어 관백에게 정납케 하였다.

당시 대마도 신·구 도주는 안용복의 문제제기와 관련하여 두가지 죄를 감추고 있었다. 그 하나는 도쿠가와 막부 관백이 백기주 태수에게 명령하여 써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 조선땅이라는 문서를 빼앗아 없애고 도리어 일본 땅 죽도(울릉도)에 조선 어부들의 침범을 엄금해 달라고 문서를 위조한 죄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교역상 조선측이 막부에 보낸 물품의 도량형을 속여서 조선은 쌀 15두(斗: 말)를 1섬으로 한 것을 대마도 도주는 7두를 1섬으로 했고, 조선은 베(布) 30자(尺)를 1필로 보냈는데 대마도 도주는 20자를 1필로 했으며, 조선이 보낸 종이 1묶음(束)을 대마도 도주는 3묶음을 만들어 그 차액을 착복하였다.

이 때 마침 대마도 도주의 아버지가 백기주 관아에 머물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백기주 태수를 찾아가, [만약 이 상소가 올라가면 내 아들은 반드시 중죄를 얻어 죽을 것이므로 이 상소를 올리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였다.

백기주 태수는 이에 안용복에게 그 상소를 올리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백기주 태수는 우선 울릉도·독도를 침범했다가 안용복에게 쫓겨온 일본 어부 15명을 적발하여 처벌하였다. 또한 백기주 태수는 안용복에게 [2섬(울릉도와 우산도…인용자)이 이미 당신네 나라에 속한 이상, 만일 다시 침범하여 넘어가는 자가 있거나 도주(대마도 도주…인용자)가 혹시 횡침하는 일이 있으면, 국서를 작성하여 역관을 정하여 들여보내면 마땅히 무겁게 처벌할 것이다(兩島旣屬爾國之後 或有更爲犯越者 島主如或橫侵 竝作國書 定譯官入送 則當爲重處)]는 약속을 하였다.

백기주 태수는 안용복 등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고, 파견수행원을 정하여 호송해 주었으며, 화폐도 가지고 가도록 주었으나 안용복·뇌헌 등은 완강히 사양하고 귀국하였다.

안용복이 제2차로 일본에 건너가 이룬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안용복의 백기주 태수와의 담판에 의하여, 우선 ①울릉도(죽도)와 우산도(독도:송도)의 2섬을 조선영토라고 확인한 문서를 1693년에 도쿠가와 막부 관백이 백기주 태수를 시켜 안용복에게 써준 사실을 확인했으며, ②조선영토인 울릉도와 독도에 침범했다가 안용복 등에게 쫓겨난 일본어부 15명의 처벌을 눈으로 보아 확인했고, ③1696년 봄에 다시 [2섬(울릉도와 우산도)가 이미 당신네 나라에 속했다]는 백기주 태수의 재확인을 또 받았으며, ④백기주 태수는 앞으로 일본어부들은 물론이요 대마도 도주일지라도 울릉도·우산도 등 조선영토를 침범할 때에 조선에서 국서를 작성하여 통역을 붙여서 보내면 모두 무겁게 처벌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었다.

백기주 태수는 약 3개월 전에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 관백이 대마도 도주 등의 새해 인사를 받는 자리에 배석했다가, 막부 장군이 날카로운 질문을 한 끝에 1696년 1월 28일 울릉도·우산도(독도)는 조선영토이고 따라서 일본어부들이 울릉도와 우산도 등 조선영토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을 엄금한다는 결정을 함께 들은 인물이었으므로 안용복에게 이와같은 명쾌한 약속을 한 것이었다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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