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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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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문] 일본정부는 최근에 '역사적'으로도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제 35 문] 일본정부는 최근에 '역사적'으로도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1600년 전후부터 약 80여년간 일본이 면허장을 민간인에게 주어 '독도'(竹島)를 실효적으로 지배 점유했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본측의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

[답] 일본정부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라고 드는 것은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가 일본 어업가 오오다니(大谷甚吉)와 무라가와(村川市兵衛) 두 가문에게 1618년에 내어준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와 1661년에 내어준 [송도도해면허(松島渡海免許)]이다. 이 두 개의 '도해면허'(渡海免許)는 얼핏 보면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의 점유권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가 가졌었던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도리어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영토임을 더욱 명확하게 증명해 주는 자료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개의 '도해면허'는 '외국'에 건너갈 때 허가해 주는 '면허장'이었기 때문이다.

중대한 문제이므로 그 자초지종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1592∼98년) 전후에 울릉도에 살던 조선인들은 일본군(왜구)의 노략질을 당하여 폐허가 되어 버렸으므로, 조선조정은 울릉도 공도쇄환(空島·刷還) 정책을 강화하였다. 이 직후 일본 백기주(白耆州)의 미자(米子)에 거주하던 오오다니(大谷甚吉)라는 사람이 월후(越後)라는 곳을 다녀오다가 대풍을 만나 조난 당하여 '울릉도'에 표류해 닿았다. 오오다니가 울릉도(죽도)를 답사해 보니 사람은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이지만 수산 자원이 풍부한 보배로운 섬임을 알았다. 이에 오오다니는 이 섬 울릉도에 건너가서 고기잡이를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截さ뎬?당시 사람이 살고있지 않다 할지라도 조선영토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울릉도(죽도)에 건너가서 고기잡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막부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울릉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라 외국(外國)의 영토이므로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건너가 고기잡이를 해도 월경죄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막부의 공식 허가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오오다니는 도쿠가와 막부의 관리들과 친분이 두터운 무라가와(村川市兵衛)와 함께 1616년에 [죽도도해면허(竹島渡海免許)]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으려고 운동하였다. 그 결과 도쿠가와 막부의 관리로서 당시 백기주(白耆州) 태수(太守) 직을 맡고 있었던 송평신태랑광정(松平新太郞光政)이 1618년에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 가문에게 '죽도도해면허'를 내어 주었다.

도쿠가와 막부 관리가 '죽도(울릉도)도해면허'를 일본인 두 가문에게 내어 주었다고 할지라도 이 막부 관리가 울릉도(죽도)가 일본영토이고 조선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이 '도해면허'를 내어준 것은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로 울릉도(죽도)가 일본영토가 아니고 조선영토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이 '도해면허'를 내어준 것이었다. 일본영토 내에서 여행하거나 고기잡이하러 갈 때에는 '도해면허'가 필요하지 않았다. 울릉도(죽도)가 외국(外國)인 조선의 영토였기 때문에 외국에 월경하여 들어가는데 대한 막부의 허가장으로서 '도해면허'를 내어준 것이었다. 그 후에 막부도 이를 명확히 한정하였다.

당시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조선과 일본은 아직 우호관계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고, 조선 조정은 울릉도에 대하여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해서 조선인의 거주를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도쿠가와 막부의 관리는 울릉도(죽도)가 조선영토임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선정부와 사전 협의없이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 일본 가문에 외국영토인 울릉도에 월경하여 들어가서 고기잡이를 해와도 막부는 처벌하지 않고 허가해 주겠다는 '죽도도해면허'를 내어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두 일본인에게 1618년에 도쿠가와 막부 관리가 내어준 '죽도도해면허'는 울릉도(죽도)가 조선(외국) 영토임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자료이고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해주는 자료인 것이다.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 가문은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울릉도(죽도)에 건너가는 뱃길의 길목에 있는 독도(송도)에 대해서도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임을 들어 '송도(독도)도해면허'를 막부에서 신청해서 1661년경에 막부의 '도해면허'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 관리가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 일본인에게 '송도도해면허'를 허가해 주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죽도도해면허'와 마찬가지로 외국(조선) 영토인 송도(독도)에 건너가서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오는 월경(越境) 고기잡이의 허가장이었지, 송도(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주장해서 허가해 준 것은 전혀 아니었다.

즉 도쿠가와 막부가 오오다니와 무라가와 두 가문에게 '송도도해면허'를 허가해 준 것은, 조선영토인 죽도(울릉도)에 월경하여 고기잡이하러 건너감을 허가해 주는 '죽도도해면허'를 이미 허가해 주었는데, 죽도(울릉도)로 건너가는 도중에 있으며 죽도(울릉도)에 부속한 섬인 송도(독도)에 월경하여 건너가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은 동질적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죽도도해면허'와 완전히 동일한 성격의 동질적인 '송도도해면허'를 동일한 두 가문에게 허가해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쿠가와 막부가 내어준 1618년의 '죽도도해면허'나 1661년의 '송도도해면허'는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라고 주장할 증명이나 근거는 전혀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송도도해면허'가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면 '죽도도해면허'는 울릉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증명이 되어 일본정부는 울릉도가 일본 고유영토라고 먼저 주장해야 논리적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도리어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송도(독도)도해면허'는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일본영토가 전혀 아니었고 외국인 조선 영토임을 증명하는 명백한 자료이며, 17세기 당시에 도쿠가와 막부도 이 두 섬이 조선영토임을 잘 알고 독도와 울릉도의 두 섬을 조선영토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는 자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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