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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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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선장 부부-죽는 날까지 독도가 울집 앞마당 아잉교

“죽는 날까지 독도가 울집 앞마당 아잉교”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물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늙기도 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으니까 매일 씻을 필요도 없어. 비올 때는 홀랑 다벗고 돌아다니면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지.”

» 죽는 날까지 독도의 풍경을 앞마당에 거느리고 살겠다는 김성도씨 부부. “지금이야 전화도 되고, 티브이도 되고 아쉬울 게 뭐 있겠어요.” 유일하게 전화기로만 육지와 연결되던 이들에게 위성방송과 디지털 티브이가 생겼다.
유일한 ‘독도 주민’ 김성도·김신열씨 부부/

» 새벽 5시, 동도와 서도의 중간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양쪽 섬을 비춘다. 매일 평화로운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이 부부의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새벽 5시면 독도 주민 김성도(66)·김신열(68)씨는 숙소 뒤쪽의 거친 바위로 올라간다. 높이 157m, 서도 산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돌길이다. 앞 계단이 코에 닿을 정도의 가파른 길을 부부는 산책이라며 오른다. 여느 사람은 따라잡기도 버거운 빠르기다. 정상에는 번행초, 쇠비름, 섬장대, 큰두리꽃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빛깔을 드러내며 반가이 사람을 맞는다.

찾아오는 이들도 거의 없는 작고 외딴 섬이지만 두 부부는 큰 불편이 없다.

“안살아 본 사람은 모르지. 여기 살면서 자주 나던 배탈도 없어졌고 몸이 더 좋아졌어. 가끔 울릉도에라도 나가면 정신이 없어.”(김성도) “이 사람은 약 한번만 먹으면 바로 낫는데, 나는 하도 약을 먹어서 그런지 이젠 감기에도 약이 안들어요. 병원이 없으니까 약을 쌓아놓고 살지요.”(김신열) 김씨는 독도에 잠깐 들른 해양경비대원들을 위해 서둘러 문어를 삶아 내오며 말을 잇는다.

2.8km 섬 앞바다는 미역·해삼 넘쳐나는 ‘기름진 논’
비올땐 홀랑 벗고 목욕·빨래…“불편한 것 하나 없어”


“지금 미역을 따야 보드랍고 맛있는데, 딸 사람이 없어요. 따봤자 널 곳도 없고. 그냥 우리 먹을 만큼만 따지요.”

둘레 2.8㎞의 이 섬 앞바다는 돌김, 미역, 소라, 멍게, 해삼, 홍삼, 전복이 지천인 기름진 바다 논이다. 김성도씨는 3대째 바닷일을 해온 어부이고, 김신열씨는 그 나이에도 물질을 두려워 않는 해녀다.

부부는 30평 남짓한 어업인 숙소 3층에 산다. 1층에는 발전기와 창고가 있고, 2층은 비워두고 있다.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물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늙기도 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으니까 매일 씻을 필요도 없어. 비올 때는 홀랑 다벗고 돌아다니면서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지.”

전기와 난방에 들어가는 기름값이 만만치 않고 물도 언제나 부족한 독도에서 김성도·김신열씨 부부가 살 수 있는 이유는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물론 주방에서도 바닷물을 쓴다. 그릇도 바닷물로 한번 씻은 뒤 끓인 물로 헹군다.

» 독도의 서도에서 동도로 가려면 길이 약 330m, 폭 150m 해협을 건너가야 한다. 저수탱크와 발전시설이 있는 동도로 건너가기 위해 독도 경비대의 배편을 이용한다.
올해 2월 독도에 다시 들어오면서 국민 성금으로 1.3톤짜리 배 독도호를 얻었다. 날이 맑으면 배를 띄우려고 부지런히 고치고 늘 돌보지만 어른 둘이서 뭍으로 끌어올리기도 벅차 김성도씨 혼자 타고 나갈 수는 없다. 조업을 하지 못해 벌이가 없지만 사람들이 주고 가는 쌀과 앞바다에서 건져올리는 해산물로 식탁을 채운다.

저녁이 되면 두 부부는 한가로워진다. 낮이면 쉴새없이 울려대던 전화도 잠잠하다. 그럴때는 적적하기도 하다.

» ‘씩씩한 해녀’ 김신열씨와 ‘무뚝뚝한 뱃놈’ 김성도씨는 때로는 다투며, 때로는 사이좋게 독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귀하고 아쉬워. 자식들이 보고 싶을 때는 우리가 가. 여기 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 아들 하나 딸 둘. 자식들은 뭍에 내놓고 독도에서 살면서 3년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날이 궂으면 마음 쓰는 건 자식들이 아니라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바다에 갇혀 있는 배들이야. 눈앞에 보이니까. 걱정돼서 밥도 안넘어가.”

걱정은 그뿐 아니다. “요앞에 갈매기가 새끼 낳아서 둥지 틀어놓은 거 봤어? 며칠 있으면 날씨가 안좋아지는데 물이라도 치고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럴까?”

김성도씨는 나이 스물 일곱이던 1969년에 처음 독도에 왔다. 젊은 시절 독도를 들락날락했던 이력으로 부인 김신열씨에게 “뭍에서의 세상 시름 다 떨쳐버리고 독도에서 살자”고 했고, 부인은 아무말없이 따라 나섰다.

“그땐 우리만 있던 게 아니라 최초의 독도 주민 종덕이 아저씨도 있었고 해녀도 많았어. 다같이 물질을 하며 하루에 서너번씩 섬주변을 돌았어. 밤만되면 고생한 이야기부터 온갖 엄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어.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제 다 죽고 우리만 남았지.”

» 김성도씨 혼자서는 조업을 할 수 없는 탓에 부인과 거둔 해산물로 먹고 산다. 좁은 바위틈에 말린 미역이 요즘 몇 안 되는 반찬이다.
그때는 일본 배들도 자주 봤다고 한다. 태풍치는 날 해조류에 걸려 꼼짝 못하는 일본배들을 도와주고 밥도 줬다. 요즘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때 구해준 선원들이 일본 정부에 그런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미련은 남는다. 그저 죽는 날까지 동도와 서도의 풍경을 한마당에 거느리고 살겠다는 두 부부. 독도가 그저 평화로운 섬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글 강병진(자유기고가) fuggy@hanmal.net

2006-06-07 오후 04:18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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