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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사슴섬 녹둔도

녹둔도   지금은 러시아땅인 두만강 하구의 여의도 10배만한 녹둔도(鹿屯島).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여진족으로부터 수복한 이래 사슴섬, 즉 녹도(鹿島)라고 불려왔다. 그러다가 선조 16년(1583년) 조정에서 여기에 둔전(屯田)을 설치한 후 “백성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녹둔도(鹿屯島)로 불리기 시작했다.

선조 20년에 여진족이 침입해 11명의 군사를 살해하고 농민 160여명을 납치해간 ‘녹둔도 사건’이 발생했다. 지역해군사령관으로서 이 섬 방어책임을 지고 있던 당시 43살의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은 이 사건으로 장형(杖刑)과 함께 백의종군해야 했다. 조정은 즉각 두만강 건너까지 대군을 파견해 여진족에 타격을 가했다. 그만큼 녹둔도 사수(死守)에 대한 조선의 의지는 강했다. 이 반격 작전에서 이순신은 큰 공을 세워 재기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도 녹둔도에 이순신의 녹둔도 전승(戰勝)비각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녹둔도’는 섬이 아니라 러시아쪽 육지와 연결돼 있다. 1861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분명히 섬으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두만강 하구의 퇴적작용이 그같은 자연의 조화를 부린 듯하다. 이 녹둔도가 러시아손에 넘어간 것은 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베이징조약 체결 때다. 30년이 지난 1889년 고종 26년에야 이 사실을 알게된 조정이 청나라에도 항의하고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에게도 요구했으나 들어줄리 만무했다.

2년 전 이곳을 탐사한 국내조사팀(팀장 이기석 서울대 지리교육학과 교수)은 갈대숲과 늪지의 초목들로 우거진 원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곳은 시베리아 아무르 호랑이의 피난처 구실을 하면서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20여 차례에 걸쳐 “녹둔도는 비옥하여 경작할 만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조사팀이 이번에는 러시아측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20세기 초까지도 녹둔도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연자방아와 놋쇠밥솥 등을 확인했다고 한다. 1984년 11월 북한과 구(舊)소련은 국경문제 협상을 벌인 바 있다.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는 녹둔도에 관한 양자 합의내용이 궁금하지만 영토를 이렇게 싱겁게 방기한 우리의 역사도 안타깝다.

2002.07.22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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