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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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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당 한국대지도 (嵩山堂 韓國大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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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당 한국대지도 (嵩山堂 韓國大地圖)

대한제국(大韓爪)이 영원히 사라지기 얼마 전인 1908년, 일본 유학생 현공염(玄公廉)은 학생용 지리교과서와 지도책을 펴냈으며, 같은 해에 서울의 박문관(博文館)에서 대한제국지도(大韓爪地圖) 간행한 바 있다.

1914년에 강감찬전(姜邯贊傳)이라는 책을 발표하게 되는 현공렴이 일본에서 인쇄해 들여온 그 지도는 당시 조선의 지도제작 기술에 비추어 볼 때 파격적으로 우수한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우모(羽毛)와 음영(陰影)을 동시에 사용하여 지형의 높낮이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해안선(海岸線)과 도시의 위치를 정확하게 도시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축척에서 일백만분지일(一百萬分之一)로 적어야 할 것을 一千萬分之一로 오기한 점이 옥의 티로 지적되었다. 그 지도는 전지(全紙) 규격의 인쇄용지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수심을 기입한 동해와 서해를 수많은 삽도로 매립함으로써 지도가 주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어지럽히고 있다. 여기에 삽입된 것은 주로 개항장의 시가 지도여서 조선의 전통적 도시들, 예컨대 大邱·全州·公州 등의 지도는 실리지 않았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위해 만든 것이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은 그 지도를 이 청목 한국대지도〈靑木 韓國大地圖〉와 대조함으로써 풀리게 된다. 조선에 침투한 일본인이나 조선에 침투할 일본인을 위해 1905년 분도상밀 한국신지도《分道詳密 韓國新地圖》를 발간한 바 있는 청목항삼랑(靑木恒三郞)은 그 1년 뒤 같은 내용을 한 장의 全紙 규격 종이에 인쇄하여 이 〈韓國大地圖〉를 만들었다. 玄公廉의 지도보다 2년 앞서 간행된 이 지도는 그 지도의 원판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저자와 발행자 이름을 제외하면 제목이 우선 다르다.

대한제국 '大韓爪' 이라는 네 글자와 '韓國大'라는 세 글자의 차이인데 현공렴은 글자들을 다시 배열하여 '帝'자를 새로 넣고 일본 출판사 이름을 제거함으로써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였다. 일본해(日本海)를 대한해(大韓海)로 바꾸는 배려도 하였다. 자세히 보면 양자의 차이는 다른 데서도 보인다. 삽도 속의 시가도들에는 지도상의 중요 건물에 일본 문자 한 자씩을 부호로 표시하고 지도 밖에 그 부호가 가리키는 건물명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玄公廉은 이 부분들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긁어냄으로써 일본 글자를 지도에서 제거한 것이다.

여기에는 축적으로 중국·일본·조선의 리수(里數)를 표시하였다. 그러나 현공렴의 지도에 보이는 오자(誤字)는 없다. 그러면 현공렴의 실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일산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조선의 10리가 일본의 1리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관계 있는 착오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은 이 지도의 가장 큰 가치는 일본인 거류지가 있는 식민지 도시들의 모습을 한 장의 지도에 담았다는 것이다. 조약에 의해 상대국 국민의 거주를 허용하는 거류지는 강화도조약 후 釜山에 설치된 이후 仁川과 元山에 설치되었으며, 1897년에는 진남포(鎭南浦)·목포(木浦)에 설치되었다.

1899년에는 군산(群山)·마산(馬山)·성진(成津)에 거류지가 설정되고 러일전쟁 이후에는 용암포(龍岩浦)와 청진(淸津)이 추가되었다. 일본에 비하여 일본인 노동자의 임금은 몇 배나 되는데 물가는 3분의 1에 불과하고 토지는 공짜에 가까워 일본인의 물결은 암세포처럼 증식하여 1901년에 1만 7천여 명이던 일본인은 1903년에 2만 9천여 명, 1905년에 4만 2천여 명, 1906년에는 8만 3천여 명으로 늘었다. 아직 국토의 식민지적 재편성(植民地的 再編成)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 지도는 과도기에 처한 조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뒷날 충청남도의 중심도시로 성장하는 大田의 이름은 경부선상의 조그만 역으로 등장할 뿐이다. 경원선(京元線)과 호남선(湖南線) 철도는 1910년에야 착공되므로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철도로는 京仁線·경부선과 1904년 참모본부(參謀本部)가 군용 철도로 착공하여 1905년에 완공한 마산선(馬山線), 그 이듬해에 완공한 경의선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황주(黃州)와 겸이포(兼二浦)를 잇는 철도가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부호란(符號欄)에는 미성철도(未成鐵道)도 있지만 지도상에는 이 부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이 지도에는 경부선의 부강역(芙江驛)에서 공주(公州)·강경(江景)을 거쳐 군산(群山)에 이르는 철도가 표시되어 있다.

미상불(未嘗下)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선로가 계획되었고, 이를 미성(未成) 철도가 아닌 기성(旣成) 철도로 잘못 표시한 듯하다. 이 선로는 같은 편집자 청목항삼랑(靑木恒三郞)이 1년 전에 편집한 분도상밀 한국신지도《公道洋密 韓國新地圖》(圖 278)에도 나타난 바 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한반도로 몰려든 여려 계층의 일본인들은 갓 개설된 경부선철도와 경의선철도로 내륙지방 곳곳으로 침투하였지만 그들의 생활 거점이 된 것은 이 지도에 나타난 거류지들이었다. 일본인들의 조선 침투를 보여 주는 이 지도는 현공렴에 의해 조선판(朝鮮版)을 낳게 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자국의 지도를 제작할 힘을 상실한 식민지 상태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 준다 하겠다.

-영남대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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