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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 조선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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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 조선여지도

淸水光憲,1884년,105.1×77.1cm.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무렵 개화파 청년들의 행적을 보여 주는 이 지도는 당시 민간 지도로서는 가장 우수한 지도로 평가할 만하다. 이 지도의 포장에는 '韓客 朴泳孝 題字'라 써 있고, 본도의 우측 상단에는 소륙상보 '紹隆三寶' (왕권과 국토와 국민을 보전하자)라는 박영효의 제문이 있다. 발문에 의하면, 이 지도는 김옥균이 일본에 가져갔던 조선지도를 바탕으로 편집한 것이다.

개화파의 형님격인 김옥균이 세 번째로 일본에 간 것은 1893년 6월이었다. 국왕의 위임을 받아 국채를 모집하러 갔다가 냉담한 일본 당국의 반응으로 그냥 돌아온 것이다. 1884년에 간행된 이 지도의 발문에 의하면 전년에 김옥균은 평소에 아끼던 조선의 지도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는데 상해로 떠나기에 앞서 이를 일본의 어떤 인사에게 남겨 놓고 떠났다. 이를 얻은 편집자가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지도들을 참조해서 만든 지도가 <조선여지도>라 하였다.

김옥균은 1881년부터 해마다 일본에 다녀왔다. 발문에 나오는 '전년'이라는 것은 1883년이 아닐 수도 있으며, 그가 그 무렵에 상해에 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이는 편집자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옥균이 휴대했던 지도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는 없다. 이 지도는 여러 모로 보아 1876년에 일본 육군참모국에서 발간한 <조선전도>(圖264)와 비슷하다.

청수광헌의 이 지도는 축척이 1:110만이며 일본리척과 朝鮮里尺을 그려 놓았다. 경위선을 방안선으로 그리지는 않았지만 테두리의 수직선·수평선에 각각 위도와 경도를 알아볼 수 있는 점을 찍어 놓았다. 땅의 높낮이는 우모로써 나타내고 물의 깊이는 표시하지 않았다. 울릉도와 죽도가 각각 죽도와 송도로 기록되었다.

수록 범위는 산동반도 동부에서 독도까지다. 삽도로는 한강구·원산진·부산항(釜山港) 지도와 더불어 서울지도와 서울 부근 지도가 있으며, 이 밖에 서울로부터 각지에 이르는 이정표가 있다.

참모국의 지도가 이 지도와 다른 점을 찾아보자. <참모국 조선전도>는 축척이 1:100만이며 경위선이 있고, 우모식 표현에 명암을 가미하였고, 물의 깊이를 삽도뿐만 아니라 본도에도 기입하였다. 수록 범위는 이 지도보다 서쪽으로 넓어서 요동반도(요동반도)까지 포함한다. 삽도로는 이 지도에 나오는 서울지도와 서울 부근 지도가 없으며 그 대신에 대동강 지도가 들어 있다. 이정표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지도가 한자만으로 지명을 기록한 데 대하여 참모국의 지도에서는 한자 지명 옆에 현지 발음을 일본 문자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운양호 사건 과정에서 군대가 만든 군사지도를 이용하여 갑신정변 무렵에 민간용으로 만든 것이 <조선여지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남대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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