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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촌 조선전도(大村 朝鮮全圖)


대촌 조선전도(大村 朝鮮全圖)

大村恒七,1882年,47.2×33.6cm.

한반도를 그린 이 지도는 1874년 일본 육군 참모국의 木村信卿 소좌의 이름으로 간행된 <아세아동부여지도>의 한반도 부분을 축소하거나 확대함 없이 원래의 크기대로 밑그림 삼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기서는 산을 우모식으로 그리지 않고 그림지도에서 보듯이 인자 모양으로 묘사하였고 경도는 동경을 기준으로 하였다.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참모국의 지도를 간행된 지 8년 만에 베낀 것은 그 지도가 가지는 신뢰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1874년의 참모국 지도의 한반도 부분에 있어서 결정적인 오류는 조남 서해안 부분의 묘사에 나타난다. 그 지도에서는 금강 하구 장항 부근에서 해안선이 수직으로 내려가지 않고 '?'字를 그리며 목포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막부시대 이후 명치 초기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조선지도는 대개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에 의존하여 적어도 이러한 오류를 보이지 않는다. 명치시대에 들어와서도 조선의 지도에 의존한 지도들에서는 이러한 착오가 보이지 않는다. 1874년판 참모국 지도에 매달린 지도들에서만 이런 착오가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적어도 해안선에 관한한 조선의 지도나 이것을 베낀 일본의 지도보다 오히려 잘못된 영국의 해도를 신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1800년부터 伊能忠敬은 일본 전국을 누비며 실측하여 정확하고 우수한 지도를 완성하였다. 이 지도는 영국에 전해져 영국인들의 해안 측량 결과와 결합되어 <일본 및 조선 근방 沿海圖>(1863)로 간행된 바 있다. 한반도 서해안 표현에 중대한 오류를 저지른 이 지도는 일본을 역수입되어 이를 原圖로 한 지도들이 나온 것이다. 1876년 참모국의 <조선전도>(圖264)에서 이 부분에 관한 수정이 이루어진 것은 운양호의 해안측량 결과가 즉각적으로 이용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지도에 부분적으로 의존한 이 지도와 조선조 초기의 지도에서 발원하는 <조선국세도>(圖 260)는 간행일이 같은 달 같은 날이다. 이란성 쌍생아(二卵性 雙生兒) 地圖의 출현은 이른바 문명개화를 추구하던 당시의 일본 문화가 지니고 있던 이중구조(二重構造)를 노출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의미 깊은 것은 하루에도 조선지도가 두 가지나 나왔다는 사실이다. 1882년에 들어서 일본 정부는 조선 정부로 하여금 일본 장교를 채용하여 군대를 개편토록 하였다. 이미 잠입한 일본 상인들은 조선에서 치외법권을 누리며 온갖 비리를 저질러 민중들의 깊은 원한을 사고 있었다. 이러한 판국에 군대 개혁이라니 구식 군대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7월 23일 병사들과 서울 시민들은 掘本禮造 소위 등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다.

공사 花房義質은 인천으로 도망쳐 영국배를 얻어타고 7월 30일 장기에 도착하였다. 이 임년군란 소식은 즉시 일본에 전해져 신문사들은 앞다투어 號外를 배포하였다. 일본정부가 결정한 바에 따라 부산과 인천에서 일본 함대가 무력시위를 하는 동안에 花房 공사가 군대를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온 것은 8월 16일이었다. 위에 언급한 두 지도의 간기를 보면 발간 일자가 바로 이 날이다.

-영남대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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