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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8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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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도지도<朝鮮世表 幷 全圖>



 
 
 
영남대박물관 소장
 
 
  - 제목 : 조선팔도지도<朝鮮世表 幷 全圖>의 부분  
 
19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조선지도는 문자에 의한 지지적 기록과 지도가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산들과 하천, 섬들을 바탕으로 고을을 행정적 지위에 따라 표현하고 8도의 경계를 나타냈지만 도로는 무시하였다. 다만 주요 고을에는 서울로부터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날 수를 기록한 경우도 보인다. 한반도의 윤곽을 보면 압록강구에서 두만강구까지가 거의 직선으로 연결되어, 한국에서 작성된 많은 옛 지도, 예컨대 梁誠之와 鄭陟의 지도에서처럼 한반도 북방지역에 대한 지식의 부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지리적 지식이 적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는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려 넣을 내용, 특히 인문적 요소가 적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주로 남쪽 사람들이 그리다보니 지리인식에 있어서의 원근법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전근대적 지도는 객관적 지형 자체의 표현이라기보다 작성자에게 인지된 지형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인이 그린 조선지도에서 오른쪽이 북쪽, 왼쪽이 남쪽으로 그려진 것이 흔히 보이는 것은 일본에서 보는 시각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도를 가로로 그리기 위한 편집상의 방법이었다. 본 도록의 <증보개정 조선국전도>는 이러한 배치 방식이 19세기 후반에도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지도가 보이는 특징 중에는 위도선이 기입되었다는 점이 있다. 한반도가 대체로 북위34도에서 44도 사이에 위치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실제와 부합한다. 그러나 위도선을 지도상에 斜線으로 그려, 이에 따르면 한반도의 서남단과 동북단은 동일한 경도선상에 자리잡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지도에는 위도선만 기입하였을 뿐, 경도선을 기입하지 않아 이러한 착오가 덜 드러나게 되었다.

제주도는 빠뜨린 채 울릉도를 파격적으로 크게 그려넣은 이 지도는 큰 한자로 동·서·남·북을 표시하고 각 글자 옆에 서툰 한글로 동·서·남·북을 쓰려했으나, 남은 '담'이 되고 북은 '븍'이 되고 말았다. 또 한글 옆에는 그 발음을 일본 片假名 문자로 표기하려 하였으나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했다. 한반도의 남북이 좌우로 놓인 점, 위도선이 빗금으로 처리된 점, 한글로 동서남북을 표현하려한 점 등을 보건대, 이 지도는 막부 시대의 난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임자평의 지도를 거의 그래도 모사한 것이다. 그의 『삼국통람도설』(1786)에 실려 있는 다섯 장의 지도 중 하나인 <조선도>는 <증보개정 조선국전도>의 모본이 되기도 하였다. 지도에서 동서남북을 표현하는 데 쓰인 글은 지도와 연결된 <조선세표>에서 그 구성원리가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한글은 잘못 그려 놓았다. 아마도 이는 이른바 일본의 신대문자의 영향인 듯 하다. 일찍이 일본인들 중에는 그들에게도 고유한 문자, 예컨대 日文·천명지진·아비유문자(阿比留文字)라는 神代文字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보기까지 제시되어 왔다. 평전독윤(平田篤胤) 등의 학자는 이의 존재를 역설했으나 伴信友 등은 이것이 날조임을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은 한글을 약간 손질한 것일 뿐이었다. 단언하기 어렵지만 이 <朝鮮世表 竝 全圖>도 간행연대를 보건대, 통신사와 관련되어 제작된 듯하다. 田仲? 校, 長田愚候 ?, 浪華書? 森本太助·中川松之助 合刊이라는 기록이 있는 이 지도의 간기에 의하면 발간 연도가 1806년이다.

<三韓世表>가 나온 지 1년뒤 홍계희(洪啓禧) 일행이 德川家重의 장군 세습을 축하하러 다녀오고 조암(趙 )일행이 1763 년 德川家治의 세습을 축하하러 세습 3년 만에 다녀왔다. 家治의 뒤를 家齊가 세습한 것은 1786년이지만 이를 축하하는 통신사가 다녀온 것은 1811년이다.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던 당시의 사행은 국제 간의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이미 관례에 비추어 예정된 것이었다. 이 지도의 간행은 조선 왕조가 막부간의 마지막 교린행사가 된 이 사행에 앞서기 5년이나 되지만 그것은 세습으로부터 사행이 이루지기까지의 기간이 25년이었음에 비추어 볼 때 결코 긴 기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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