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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들이 떼 지어 날아와 폭격'

독도폭격사건 생존자의 증언들

1948년 6월 독도에서 조업 중이던 어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미 공군기의 폭격에 당시 조업 중이던 배들과 승선 어민들은 바다에 수장됐다. 미군정 하에서 아직 한국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에도 미군기에 의한 독도폭격사건이 일어났다. 독도가 미공군의 폭격연습장에서 제외될 때까지 어민들은 이처럼 정부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학살’의 위험에 노출돼있었다. 독도폭격사건은 전민특위(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의 미군양민학살 사례로도 들어간다.

“서도 쪽에서 조업을 하던 배들은 모조리 가라앉았다. 어부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폭격을 중지시키려 하면서 도주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48년 독도폭격사건의 생존자 공두업 옹은 지난 1995년(당시 83세) 독도문제연구회와의 면담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6월 초 어느 날 독도에서 미역채취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폭격기가 날아와 바다위로 기관총을 난사했다 한다.

갈매기들이 총에 맞아 무수하게 널려있는 상태에서 공옹은 급히 배를 돌려 울릉도로 돌아왔다. 그는 경찰총무 이종오씨에게 이를 보고했지만 며칠 뒤 안심하고 조업을 하라는 통보를 받고 2차로 미역채취를 위해 독도에 배를 띄웠다. 그러나 오전 11시경 미공군의 폭격은 또다시 벌어졌고 그날 바다 위에 떠있던 30여척의 배 중 생존한 배는 강원도 소속의 배 1척과 공옹의 배뿐이 되고 말았다. 공옹은 귀환 후 경찰서를 찾아가 이씨에게 격렬히 항의했지만 아무런 변명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공옹과 함께 살아남은 배의 선주 장학상 옹의 증언에 따르면 폭격은 서도 물골근처에서 시작되어 동도로 융단폭격이 이어졌는데 비행기 소음이 울릉도 쪽에서 들린 후 12대의 폭격기가 2개의 편대로 나뉘어서 폭격을 했다고 한다.

폭격당시 사망한 김태현씨의 아들 김찬수씨가 어릴 적 주위 어른들에게 들은 것이라고 전제한 뒤 증언한 내용도 이와 일치한다. 오전 11시경 비행기들이 독도 쪽으로 떼 지어 날아간 후 독도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을 울릉도 주민들이 목격하고 공포에 떨었다는 것. 김씨는 독도문제연구회와의 면담에서 당시 미군 측에서 보상금과 물건이 나왔는데 이것들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 경비로 다 쓰이고 희생자 가족 측에서는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동네어른들에게 들은 사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장학상 옹도 울릉도로 복귀한 후 한 달가량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미국인들이 찾아와 병세를 묻던 기억이 있다고 증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수립 후인 1950년 4월 25일 미공군에 이를 조회해 5월 4일자로 “독도와 그 근방에 출어가 금지된 사실이 없었다는 것과 독도는 극동 공군의 연습목표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공식 회답을 받았다. 1951년 6월에는 경상북도지사의 참석 하에 독도 조난어민위령비를 건립하고 위령제를 거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미군기에 의한 독도폭격사건이 또다시 벌어졌다.

정부수립 뒤 벌어진 1952년 9월의 독도폭격사건은 국가기록원에 보존된 정부의 오래된 문서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폭격은 9월 15일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22일, 24일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월 15일에는 미군기 1대가 독도 주변을 선회하다 폭탄을 여러 발 투하, 폭격연습을 한 뒤 일본 방향으로 돌아갔고 이어 22일 오전 3시경엔 미군기 4대가 2시간 이상 독도를 연속 폭격했다. 24일에도 오전 4시반경 미군기가 독도 주위를 십 수회 빙빙 돌다가 폭탄 14발을 투하, 연습한 뒤 일본방향으로 날아간 사실이 있다고 한다.

1948년 아직 정부가 세워지기 전에 일어난 독도폭격사건은 차치하더라도 정부수립 후인 1952년의 독도폭격을 과연 한국정부는 알지 못했을까. 최근 미 국립문서보관청(NARA)에서 기밀 해제된 관련 문서들은 독도폭격사건의 내막을 추측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조은성 기자 missing@ngotimes.net 2006/12/26 시민의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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