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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4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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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폭격 관련 서울신문 보도자료

서울신문 보도자료

1950년 6월 8일

오늘 독도사건 2주년
기억도 새로운 독도사건 2주년 위령제

돌이켜 생각하건대 48년 6월 8일 낮 열한시 반 울릉도 동방 29해리 독도 상공에 미군연습기 1편대가 돌연 나타나서 때마침 고기잡이와 미역따기 뱃노래 소리로 흥겨운 30여 척의 우리 어선과 미역을 말리고 있는 여인네들에게 청천벽력 같이 “폭탄을 투하하고 또다시 기관총 소사까지 감행하여 그 일대는 삽시간에 폭풍과 화약냄새와 피비린내의 수라장을 이루어 이 나라 민족으로서는 이 사실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원한의 날이 되고 말았다. 동해바다 한복판에 검은 점으로 불쑥 솟은 무인고도일망정 지형적으로나 수산업상으로나 잊을 수 없는 우리 국토요, 대대손손 받들어 치켜오던 그날의 씩씩한 어부 김중선 이하 14위의 영령을 조의하는 한편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라는 증거를 길이 남기기 위하여 조난한 당 8일을 기리어 경북도 당국에서는 본 도지사 조재천(曺在千)씨 친필로써 조난 어민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제와 제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이날 위령제에는 경북도지사 이하 본도 관민 유지 그리고 중앙에서 외무부 직원 공보처 영화촬영반 기자들이 참석하고 그외 조난 어민들 가족과 울릉도 도민도 다수 참석하였다.

식은 11시 정각 경북도청 이(李) 서무과장 사회 하에 개회되어 애국가 봉창 국기예배가 있은 다음 조(曺)지사의 조문낭독에 이어 내빈에 조사와 분향이 있었다. 이리하여 이날 제사는 목메어우는 갈매기 소리와 파도소리도 구슬픈 가운데 하오 한 시 반 엄숙히 끝났다.


善良한 漁民에 銃爆擊
想起하자 이 慘事
피어린 回顧에 敬虔한 慰靈祭

돌이켜 생각하건대 4261년 6월 8일 즉 이태 전 오늘 울릉도 동쪽(?) 해상에 있는 무인도 옆 독도에서 우리의 선량한 도민들이 혹은 어선에서 혹은 미역건조 중에서 미군연습 편대의 억울한 횡액으로 일대 순사자 발생한 세칭 ‘독도사건’ 2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억센 파도를  ***** 조국 재건에 씩씩히 싸우고 있던 해양 용사들의 억울한 명복을 빌며 그 유가족을 위무하는 한편 독도영유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이 자기나라 영토라고 주장하던 기억도 아직 새로운 이 때 이 섬이 우리나라 영토임을 다시 밝힌다는 경지에서 여기에 독도조난민위령비(獨島遭難民慰靈碑)를 세우고 이 제막식을 정부각계 요로와 사회인사 다수 참석 아래 거행하게 되매 3면이 바다로 싸인 우리나라의 어부들이 평화스러운 바다의 노래를 힘차게 부를 수 있는 날들이 길이길이 계속되도록 경상북도(慶北)지사 조재천(曺在千)씨는 다음과 같은 비문을 비장하게 아로새겼다.

***비문: 안보임


1952년 9월 21일

독도학술조사단
18일 현지에 도착

한국산악회의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단 일행 36명은 지난 17일 부산을 출발하여 현지로 향하였는데 18일 상오 7시 울릉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전문이 공보청장에게 도달하였다 한다.
 

1952년 9월 22일

獨島爆擊事件再演
爆彈 四個를 投下
住民은 恐怖에 싸여 戰戰兢兢

1948년 6월 30여명의 어민들이 미군용기에 의하여 이유불명의 사격을 받아 억울한 죽엄을 당한 소위 독도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 바 있거니와 최근 동지대 시찰을 목적으로 당지를 떠난 獨島學術調査團으로부터 중앙에 보고해 온 바에 의하면 지난 15일 상오 11시경 서독도 근방에 출어 중이던 광영호(光永號) 선의 일동은 모국기로 추측되는 단발 비행기 한 대가 동지대로 비래하여 폭탄 4개를 투하하고, 일본방면으로 달아남을 확인하였다하며 이로 인하여 부근 주변과 어선들은 목하 전전긍긍 공포에 싸여 있다 한다.
그런데 동 사건에 대하여 지난 11일 독도학술조사단 단장인 홍종인 씨로부터 이(李) 상공부장관에 보고된 지급 전문 내용전문은 다음과 같다. <사진은 독도의 서해안> 

獨島學術調査團 報告

한국산악회의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단 일행 36명은 교통부 소속 선으로 11일 상오 무사히 울릉도 동항구(東港口)에 도착하여 19일 곧 독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독도에는 최근에는 미군 비행기 1대가 폭탄을 던져서 출어 중의 어민이 황급히 퇴피치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본조사단에서는 곧 해군본부 총참모장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는 동시에 본 조사단은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기 위하여 공군 관계 당국에 연락하기를 청탁하고 19일의 행동 유예하고 있음.

(1)독도의 폭격사건인즉 지난 9월 15일 상오 11시경 울릉도 통조림 공장 소속선 광영호(光永號)가 해녀 14명과 선원 등 도합 23명이 소라 전복 등을 따고 있던 중 1대의 단발비행기가 날라와 서독도의 주변을 돌면서 4개의 폭탄을 던졌는데 이 때문에 어민들이 곧 퇴피하자 비행기는 일본방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2)이에 대해서는 울릉도 어민들이 간단히 원하는 바 있어서 지난 봄 4월 25일 경 한국공군고문관을 통하여 미 제 5공군에 조회했던 바 5월 4일부로 독도와 그 근방에 출어가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없고 또 극동 공군의 연습폭격 목표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회답이 있어서 한국공군총참모장으로부터 경북도를 통하여 울릉도에도 기별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하등의 경고 없이 폭탄투하가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 도민은 1948년 6월 30명의 사망자를 낸 기억을 더듬어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미군 당국이나 우리 정부 기관의 조회나 통보를 믿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3)독도의 어획상황을 듣건대 금년 봄에도 미역만도 2억원 이상을 뜯고 지금도 소라와 전복이 많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가난한 도민들은 채취를 위하여 정부 고위층에다 조속히 그 안전책을 보장해 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관계관으로서는 절해고도의 국민으로 하여금 통첩을 믿게 하여 생활근거를 유리하게 해결시켜 주도록 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4)본 조사단은 해군 총참모장으로부터 우리 공군 당국과 미 해군당국과의 만전의 연락 결과의 통지가 있기를 기다려 불일 중 독도로 출발하여 3일 간 독도에 머물러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1952년 9월 28일(일요일)

戰慄 下에 놓인 獨島
24日 정체 불명의 비행기 또 폭격

동해안의 고도인 독도는 지난 15일 정체 불명의 비행기에 의해 폭격사건에 뒤이어 22일 제2차 폭격사건이 발생하여 도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데 24일 또다시 正體不明機에 의한 제3차 폭격으로 완전히 戰慄의 孤島로 변하게 되었다.
즉 東島로 파견된 학술조사단장 洪鍾仁씨로부터 공보처장에게 보내온 전보에 의하면 24일 열시 30분 2대 내지 4대의 정체불명기가 또다시 동도 상공에 나타나 약 3천 미터 상공으로부터 연속적인 폭격을 가하고 남방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오후에는 약 2시간에 걸쳐 동도 주변에서 폭격실험을 행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1953년 3월 1일(일요일) 3면

독도는 우리 영토
어로작업의 안전보장 확약
UN 군비국과 합의

지난해 9월 15일 국적 불명의 비행기 폭격사건으로 공포에 떨고 있던 독도는 그간 우리나라 정부와 유엔군 당국간에 완전한 합의를 보아 독도는 한국 영토의 일부임을 유엔군으로 하여금 인정케 하여 금*는 독도 부근에서 이러한 폭격 연습이 없도록 보장되었다. 이로써 폭격으로 인하여 그동안 대태격을 받아오던 어민들은 이후는 안심하고 어로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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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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