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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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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도 폭격 사건

이보고서는 독도본부 회보인 탑골인 밝은이 2001년 6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등을 이용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미국의 독도 폭격 사건

1948년 6월 8일에 일어난 미국의 독도 폭격 사건은 우리 나라의 독도 주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십여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던 이 사건은 53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독도찾기 운동 본부는 사건 당시의 일간지 보도를 중심으로 사건의 대강을 재조명하고, 그 진신을 추적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조선 일보 1948년 6월 17일
사건 진상(事件眞相) 조사중(調査中)
미군(美軍)관련(關聯)이면 부책(負責) 당연(當然)
독도 사건(獨島事件)에 하지 중장(中將) 성명(聲名)

16일 『하지』중장은 공보부를 통하여 독도사건에 관한 다음과 같은 특별 발표를 하였다. 본관은 독도폭격사건의 보도에 접하여 여러분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본 사령부는 조선 신문을 통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금번 사건의 발생을 알았습니다. 조선주미군사령부에서는 즉시로 철저한 조사를 명하였는데 아직 조사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본 사령부에서는 조선에 기지를 둔 또는 조선 부대에 배속된 비행기는 동지역에 없었고, 또 폭격한 사실도 없고, 따라서 본 사건에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미 인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가능한 구호를 하기 위하여 군의를 포함한 조사 및 구호반이 즉시 현지에 파견되었습니다. 그 일행은 아직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기지를 둔 미국 비행기의 본 사건 관련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극동 공군 사령부와 극동총사령부에서 조사중에 있으므로 동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즉시 사건의 전모가 발표될 것입니다. 만약 미군 비행기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면 미군당국으로서는 사망자의 유가족 및 피해자를 위하여 만반의 대책을 강구할 것을 조선 국민에게 보장하는 바입니다. 또 미국이 그 책임을 지어야한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그 책임은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 국민은 본사건의 진상이 판명되어 그 전모가 발표될 때까지는 각자가 마음대로 판단 할 것을 삼가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적절(適切)조치(措置) 요망(要望)
독도(獨島)건(件)에 김구씨(氏) 담화(談話)

김구(金九)씨는 독도(獨島)사건에 관하여 十六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제까지의 경과로 보아 미군 비행기의 소위같은데 과실이라 할지라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양 민족 간의 감정을 악화시킬 염려가 있으니 책임 당국은 하루바삐 사건의 진상을 발표하는 동시에 당사자에 대한 엄정한 처단이 있기를 바란다.

책임(責任)규명(糾明)하라
민련서도 담화(談話)

민련(民聯)에서도 독도 사건에 대하여 十六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독도 사건에 관하여 앞으로 진상이 규명되겠지만 아무리 약소민족일지라도 연달아 닥쳐오는 민족적 모욕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엄숙한 사건이다. 관계 당국은 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여 민심수습에 만전을 기하기를 바란다.

동해(東海)의 내 국토(國土)
슬프다 유혈(流血)의 기록(記錄)
답사(踏査)회고(回顧)…홍종인 기(記)

내 민족을 사랑한다는 정신은 국토(國土)를 사랑한다는 정신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망망한 동해의 검푸른 물 위에 불쑥 솟아있는 한 점(點)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다시 삼십팔마일 해상의 독도(獨島). 사람도 살지 못하는 두 덩어리의 산으로 된 보잘 것 없는 땅이지만 해안 경비대 쾌속선으로 네다섯 시간만에 이 땅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여기 또한 내 국토이던가! 하는 감격이 가슴에 북받쳐 오르던 작은 그 여름 그 날의 그림 같은 청신한 기억 위에 평화로이 작업하던 수십 명 동포의 어선이 무자비한 외국비행기의 폭격으로 파괴된 어선과 시체는 낭자하고 동포의 피로 물들었을 광경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가슴에 억제하기 어려운 비분을 느끼게 된다.

 - ◇ -
바로 작년 팔월 하순 조선산악회 (朝鮮山岳會) 주최로 울릉도 학술 조사대를 조직하여 우리 학계 각 부문의 중진 등 팔십 명의 대강촉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지답사 하였을 그 대 나는 확실히 내 눈으로 본 것이 있다. 첫째, 울릉도와 독도는 서울에서 일본 동경 방면으로 통하는 항공로(航空路)의 해상 표식지(標識地)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울릉도와 조선 쪽에서 동남으로 가는 미국 비행기를 보았거니와 독도에 갔던 날도 오후 세시 반 경 우리배가 독도를 떠날 때 한 대의 비행기가 바로 약 삼백미돌 상공으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났다. 우리는 아무 뜻 없이 손을 외쳐도 보았던 것이다.

- ◇ -
독도를 소개하자면 울릉도를 약간 소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던 날 팔월이십일 새벽 다섯시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 바다는 비교적 안온한 편이나 바람은 차가웠다. 오리 내지 십리 밖 먼 바닷가에는 어제 해질 무렵에 바다로 나간 오징어 잡이 배가 『카바이트』등불을 밝히고 조용히 울릉도를 에워싸고 있다. 이것이 울릉도민 생활의 모든 수단이요, 이것이 동해 한 복판의 우리 국토를 밤새 지켜주는 바다의 용사인 것을 알아야 한다. 농사라고는 일만 오천명 도민 양식의 절반 밖에 안 나는 이곳에서 여름 넉달 오징어잡이로 식량과 일용품을 사들인다. 농사 개량이니 산업 진흥이니 본토의 중앙청이나 경상북도 도청이 타근이 돌보아 주는 바 없는 이곳 울릉도를 지켜나가는 가장 거룩한 사명이었던 것이다. 아직 어두운 가운데 해안 경비대 대전환(大田丸) 갑판에는 정장 이하 병사들이 정렬하여 새벽 바다에 우렁찬 『차렷』하는 호령을 붙이고 돛대에 국기를 올리는 것이다. 우리도 경건히 국기에 주목하고 옳지! 우리는 국기를 받들고 우리 민족 처음으로 대부대로 무인절도의 내 국토를 찾으러 가는 것이구나! 하여 더욱 엄숙했다. 이윽고 동편 하늘이 허옇게 트여오고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올 때 동해의 전모를 살피며 멀리 동남쪽으로 까맣게 보이는 한 점을 발견했으니 이것이 곧 독도였다. 여기에서 보는 바다의 장엄은 또 우리가 동해의 보배를 간직한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울릉도와 독도 중간 바다 위에는 여울물 같이 물결 지은 긴 띠(帶)와 같은 폭넓은 물줄기를 볼 수 있었으니 이것이 곧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강원도 죽변(竹邊) 근해에서 마주쳐서 울릉도 북쪽을 돌아 독도 서편으로 빠져나가는 그것이다. 이 물줄이 본토에서 울릉도를 찾아가는 길이 되고 또 이 한류와 난류가 섞이는 여기에 동해 어업(漁業)의 큰 생명선이 되어 있는 것이다.

- ◇ -
독도의 옛이름은 삼봉도(三峰島)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사백칠십여 년 전 성종(成宗) 이년에 울릉도 방면에 관원을 파견하였을 때 여기에도 사람을 보내어 삼봉도의 세 섬의 봉우리를 보고 왔다는 기록이 실록(實錄)에 있다. 실제로 우리가 답사하고 두 섬 사이에 돌부리가 돌올하게 서있는 것이 그럴 듯 했다. 섬은 화산이 터진 이래 수천 년 혹은 몇 만 년래에 비바람과 파도에 씻긴 석벽으로 된 산이다. 서편 섬이 약간 높은데 높이가 일백 오십 미터 가량이고 동편이 백여 미터 되는데 동편섬은 위로 오를 수 있었다. 화산이 터져 나온 분화구(噴火口)가 무섭게 입을 벌리고 있고 그 밑으로 뚫린 동굴 사이로는 바닷물이 들고나고 있었다. 산 위에는 모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흔히 여기서도 볼 수 있는 주황색 백합(百合)꽃이 소복이 피어있는 것을 비롯하여 오십여 종 채집된 식물은 모두 울릉도와 동일한 계통이었다. 태고적에 동해의 대륙이 무너져 바다 밑으로 내려앉았다면 독도는 울릉도에 붙었던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은기도(隱岐島)와의 거리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거리보다 칠 마일이 더 멀다. 물줄기와 어선의 왕래 그리고 성종 이후 숙종(肅宗)이래의 관계가 물론 울릉도에 속한 조선땅임은 더 말할 것 없다.

- ◇ -
우리 일행에는 남조선과도정부로부터 파겨뇐 독도 현지 조사대로 국사관(國史 ) 부관장 신석호(申碩鎬)씨와 이봉수(李鳳秀)씨 일행도 있어서 조사대에는 동물, 식물, 광물, 지질, 지리반 등 자연과학 각 부분의 학자 전문가들이 있어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지도에 나타난 지면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독도가 오늘에 있는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으로 조사 기록을 함으로써 우리 국토의 실태를 확인했던 것이다. 혹은 독도의 귀속(歸屬)이 일본측과 문제되는 듯이 도전하는 이가 있으나 이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특히 이번 불의의 참변으로 동포의 피가 이 땅을 물들였다는 그 사실은 더욱 우리 국토임을 다시 피로 기록한 것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독도 동편 섬에는 우리 산악회와 과도정부 조사대가 세운 푯말이 서 있을 것이다.

조선 일보 1948년 6월 18일
미(美)극동(極東)공군(空軍)사령부(司令部)서 독도(獨島)폭격(爆擊)을 확인(確認)
기총소사(機銃掃射)여부(與否)는 아직도 조사(調査)중

동경발 「AP」통신에 의하면 미국극동 공군 사령부에서는 독도 폭격사건에 관하여 세번째 조사 발표를 하였는데, 이십구(B29)폭격기가 폭격연습을 하는 바람에 독도 어선이 폭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다만 고공을 날았기 때문에 어선은 보지 못했다고 우연한 불상사임을 말하고 기관총소사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데 정식조사가 끝나는 대로 완전한 보고를 상사에 제출할 예정이라니까 그 진상 전모는 좀더 기다려서 판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사령부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군측 발표
현장 촬영 사진을 심사한 결과 독도 근해에 있던 조그마한 어선들은 「29」폭격기의 고도폭격 연습을 할 때 바위로 간주되었던 것이 판명되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충승(沖繩)기지를 출발한 「29」폭격기대가 폭격을 가하기 30분전에 정찰기가 六희나 독도부근(北緯三十七度十五分東緯 一百三十度四十五分地點)을 시찰하고 연습에 무방하다는 것을 보고하였던 것이다. 현지 부근에는 폭격 대상이 될 다수의 소 도서(島嶼)로 잘못 간주된 것 같다. 「29」폭격대는 2만 3천「피트」상공에서 연습탄을  투탄한 것이며 이들은 해상에 하등의 선박도 보지 못하였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폭격 30분 후에 정찰기가 촬영한 사진에 의하여 이 위험지구내에 다수의 소선박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정식 조사가 끝나는 대로 완전한 보고를 상급 사령부에 절충할 터이다.

조선일보 1948년 6월20일
배상(賠償)지불(支拂)에 대처(對處)
특별소청위원회 (特別所請委員會) 설치(設置)
독도 사건에 공보부(公報部)발표(發表)

독도(獨島)어선 폭격 사건에 관하여 十九일 공보부에서는 조선주둔 미군 사령관이 소청위원회를 조직하였다는 특별 발표를 하였는데, 이미 극등 공군 사령부에서는 동폭격을 시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극동 항공대가 동사건에 관련되었으리라는 추측 하에』라는 애매한 문구를 사용하고 있어 동사건 최초부터 사용해 온 애매한 문자와 함께 일반의 감정을 손상시키고 있다. 동발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 및 극동 사령부에서는 독도 폭격사건에 관하여 이제까지 계속 조사중인 바 극동항공대의 비행기가 동사건에 관련되었으리라는 추측하에 조선주둔 미국사령관은 소청(訴請)위원회를 조직하여 피해의 정도와 동피해에 대한 적당한 배상액을 결정하고자 동위원을 조선 동해안 및 울릉도에 파견하였다. 동위원회는 현지에서 최후적으로 판정할 권한이 있으며 또한 조사가 완료된 후 배상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명되면 곧 청구액을 지불할 권한이 있다.

조선일보 1948년 6월 ●일
독도(獨島)부근(附近)폭격(爆擊)연습(演習)중지(中止)

지난 주일 독도 조선 어선 폭격 사건의 불상사에 비추어 동지대 일대의 폭격 연습은 이후 중지하였다고 26일 현지 미군 당국에서 발표하였다.

조선일보 1948년 6월 30일
독도(獨島)사건(事件)발표(發表)없는 배상(賠償)
현지(現地)행(行)에 민족적(民族的) 의혹(疑惑)은 재연(再燃)
진상(眞相)발표(發表)·배상(賠償)에는 격의(隔意)없는 성의(誠意)요망(要望)

독도(獨島) 폭격 사건의 진상조사에 대한 미국 소청 위원회의 발표는 일반의 관심을 집중한 가운데 고대되고 있던 바 드디어 十九일 중앙청 공보부를 통하여 별항과 같은 발표를 하여 동사건 당초부터의 미국 발표에 대한 의아심을 더욱 크게 갖도록 하였다.
독도사건으로 말하자면 우리 겨레에 일대 충격을 준 것만큼 또 자기 국토의 영해에서 자기 인권이 보호되지 못했다는 민족의 격분으로 보아 고의로 되었느냐? 실수로 되었느냐? 를 명백히 밝혀야 하고, 도 목격자와 조난자가 증명하는 폭탄 투하와 아울러 저공에서 기관총 소사를 받았다는 피해자의 주장과 미군 당국의 기총 소사 부인에 대한 진부도 밝혀서 우리 민족 전체의 의아심을 풀어주는 데서만 동사건의 진상 조사에 본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조사 완료가 되었으니 배상을 하러 간다는 식의 간단한 발표로써 이 문제를 결말지을 수 있을까? 좀더 그 진상을 발표하여 민족 전체의 의구심을 풀어주는 동시에 배상문제에 있어서도 조선측과 격의없는 상의와 이해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일반의 비난은 대단한 바 있다.

공보부 발표
미기 독도 폭격 사건 발생으로 인한 배상을 조사중이던 소청위원회에서는 판명된 피해건수 三十三건의 조사를 완료하였다고 서울 미당국에 보고하였는데 동위원회 위원「위나지크」대위는 三十三건에 대한 배상을 해결차 금일 독도로 출발하였다. 미결 중에 있는 나머지 三건도 피해자의 주소가 판명되는대로 즉시 해결할 것이다.

조선일보 1948년 ●월 ●일
독도사건(獨島事件) 배상책(賠償策) 강구(講究)
책임(責任)비행사(飛行士), 군법회의(軍法會議)회부(廻附)

지난 六월六일 獨島 근해에서 해초를 채집하고 있던 동포들의 어선을 무참하게 폭격하여 사상자 十四명, 중경상 九명, 어선 十척을 침몰케 한 세칭 「독도사건」의 일대불상사에 관하여는 그후 美軍機의 실수였다는 것이 거의 판명되었는데, 제 二十七차 국회본회의에서 보고된 바에 의하면 「맥아더」사령부에서는 이 사건에 관한 신중한 조사와 아울러 인명 기타의 손해 배상을 원만한 방법으로 후(厚)히 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 중에 있어 근일 중으로 명확한 진상도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바는 동사건의 「책임비행사」들은 이미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는 바 그 귀추는 주목되고 있다.

조선일보 1948년 9월 3일
독도(獨島)사건(事件)미군(美軍)배상금(賠償金)
피해(被害)액(額)의 절반(折半)도 부족(不足)
묵호(墨湖)어조(漁組)에 삼백이십오만원
죽변오씨 등은 추가배상 요구

독도(獨島)사건으로 피해를 본 죽변(竹邊) 어민들이 미군당국으로부터 그 배상금을 받았다함은 이미 보도한 바이거니와 최근 묵호(墨湖) 어업 조합으로부터 강원도 당국에 전달된 보고에 의하면 동어업조합 관계어민들에게 배상된 금액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墨湖 尹永默二, ○八八, 二五○圓(●帆船) △同金寧基  九九. 七四○圓(帆船) △同金甲成 七五, 四○○圓(帆船) △盈德 李光述 四○, ○○○圓(帆船) △蔚珍 李成月  九三四, 二○, ○○圓, (●帆船) △平海金正澤 二人, ○○○원(帆船)

이상의 배상액을 합계하면 三백 二十五만 五千六百九十워닌데 어민들의 피해 총애은 八백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한편 확신할 만한 소식에 의하면 앞서 배상금을 받은 죽변 지방의 피해자 오종석(吳鐘碩)씨의 주명은 방금 서울미군 당국에 대하여 배상액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추가배상을 요구중이라 한다.(春用朝通)

조선일보 1952년 ●월 ●일
독도(獨島)에 또 폭격(爆擊) 연습(演習)
二十二日 雙發機四臺가

[釜田方室電話] 방금 울릉도(鬱陵島)에 머무르고 있는 산악회 학술조사단(山岳會學術調査團)은 지난 十五이 소속 불명의 비행기가 해상을 폭격하
기 때문에 독도(獨島) 상륙을 중지하고 二十二일 제 二차로 독도를 향해서 출발하여 상오 十二시경 독도 二『키로』해상에 접근하였으나 돌연
四 대의 비행기가 나타나 해상에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 연습을 하기 때문에 이날도 독도에 상륙을 못하고 ●시 四十五분경 울릉도에 귀한하였다고 한다. 동조사단장 홍종인(洪鐘仁)씨가 정부에 타전한 보고에 의하면 당일 확인된 비행기의 정체는 연녹색의 쌍발기로서 우익에 두 개의 흰줄이 그어져 있었으며 날개 끝에는 백색의 표식이 붙어있는데 처음에는 약 천 『야드』고도에서 폭탄을 투하하였으나 점점 고도를 높이고 나중에는 두 대가 울릉도 방향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산악회 학술 조사단은 독도 상륙을 연기하여 二十四일 상륙키로 하였다 한다.

조선일보 1953년 3월1일
보장(保障)된 독도(獨島) 근역(近域)의 어로(漁撈)
미군당국(美軍當局)서 불폭격통고(不爆擊通告)

[釜山 ●●] 연습으로 어민들의 어로 작업에 적지 않은 불안을 준 바 있는데 二十七일 국방부 당국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독도(獨島)는 앞서 우리 정부가 「유엔」 군사령관과 그 귀속 문제에 있어 합의를 보았으므로 앞으로는 독도 부근에서의 폭격 연습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어●드」미국동공군사령관의 정식 통고에 의하여 보장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오랫동안 커다란 타격을 받아오던 어민들이 앞으로는 안심하고 어로작업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동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이 밝혀진 것이다.

조선일보 6월15일
고도(孤島)는 인영(人影)절무(絶無)
행방불명자 (行方不明者) 즉사(卽死)로 확인(確認)
울릉도(鬱陵島)도 비통(悲痛) 일색(一色)

울릉도(鬱陵島)에서 본사 특파원 윤두종 제4신 /동해의 절해고도 독도에 대한 폭격기관총소사사건은 사건 자체가 전시않인 평화시대에 우리 국토에서 버러진 일인만큼 그 파문은 바야흐로 각계 각방면으로 퍼지고 있는데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9일 저녁에 울릉도를 떠나 현지에 향하였든 구조선 2척은 10일 저녁 여섯시에 희생자의 가족이 눈물속에 기다리는 울릉 도동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 구조선이 전한 소식은 폭격당시 독도부근에 흣터젓는 사체는 하로밤 사이에 모친과 모진 파도 물결에 흘러갔는데 깨어진 파편과 함께 자쇠를 감추고 오직 바우우와 기우러진 경양환에서 사체 두 개를 수용하였을 뿐이라는 창자를 끊는 사실 뿐이였다.
때마침 울릉도 일대는 동해의 첫여름을 말하는 안개가 자욱이 끼고 있었는데 구조선 타고 현장에 갓든 사람의 말에 의하면 사망으로 판명된 9명의 시체수용에 힘쓰는 한편 행방불명인 5명의 행방을 찾어 독도해변에 있는 동굴까지 낫낫치 조사하였으나 한사람 또 발견하지 못하야 결국 9일 오전 11시 폭격당시 그들도 즉사한 사실이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뿐않이라 독도에 잔류하고 있는 사람이나 없나하고 재삼찻었으나 사정모르는 물새만 우지즈고 있을 뿐 물새 한마리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야 겨우 경양환선원 김준선씨와 울릉도 남면저동 최태식의 시체만 수용하고 새로히 사망으로 확인된 5명까지 합친 다음 20명의 사체 수사은 곤난한 것이 판명되었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군 묵호읍 후포리 김동술, 변권천, 김응화, 박춘식, 조성용, 오재옥, 이천식 을릉도 남면 도동 고원오(19) 채일수(28) 김해술(19) 우동 김해도(21) 김태현 (30)등 20명의 사체는 이민 바다에 흘려간 것이 확실한데 부상자 장학상 리상유 두명은 도동에서 치료중이고 강원도 출신 어부중 4명은 10일 오후 8시 울릉도를 떠나는 연락선 충주호로 고향으로 귀향한 것을 위시하야 속속 울릉도를 떠나고 있다고 그런데 이번 사건이 버러지자 울릉도 1만 5천도민은 조난가족은 물론하고 전부가 깊은 슬픔 속에 잠기고 도청당국은 9일 이래 일제가 무음곡과 유흥을 금지하야 그야말로 비장한 공기가 전도를 덥고 있는 형편이다.

미군(美軍) 조사(調査)대(隊) 파견(派遣)
독도의 어선 폭격 사건에 대한 일반의 여론은 점차 높아가고 있는데 미군 특별 조사대에서는 동사건을 조사할 특별조사대는 지난 30일 현재에 파견하였다고 한다.
이 조사단은 부상자를 구할 각종 구호물자와 의료품도 휴대하고 경비선으로 사건 현장에 향하였는바 일행의 조사결과가 일만의 주목을 끌고 있다.

미기(美機)인지도 모르겠다.
미(美)극동(極東)사령부(司令部)서 발표(發表)
미극동공군사령부에서는 지난 8일 독도 근해에서 조선어선대가 폭격을 바든 사건에 미국 비행기가 관련되어 있을는지 모른다고 20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조선어선이 폭격을 당하였다는 수역을 포함한 해역일대에서 실탄 훈련을 할 계획이 서잇엇엇고 동훈련은 8일부터 시작하기로 되엇섯다. 조선어선 조난 사건이 미국 비행기가 관련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하야 방금 조난형장 사건을 심사중이다. 그런데 조선 경찰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래습비행기는 4발동 비행기로 날개에 원과 별의 표장이 있었다 한다.

조선일보 6월16일
독도는 공군(空軍)연습(演習)구역(區域)
어선(漁船) 폭격(爆擊)은 미확(未確)
미국(美國)극동(極東)항공대(航空隊) 사령부(司令部)서 발표(發表)

미국 극동 항공대 사령부에서는 일본해중의 조선어선 폭격사건에 미국 비행기가 관관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의관하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미국 항공대가 일본해에서 한 폭격연습에 관한 사건급보고를 조사한 결과는 상금 미국 비행기가 지난 6월 8일의 11척 조선어선 침몰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었다. 그러나 설혹 미국기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하드라도 이 폭격은 전연 우발적일것을 확신한다.
조선경찰은 어선이 총폭격을 받고 침몰하여 14명의 어부가 사망하였다고 말한 구역은 소정의 폭격 연습장이다. 표적(標的)은 일본해대의 대암적부근에 있는 1련의 오암석이며 이는 얼마전부터 폭격연습의 목표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8일 이 구역을 비행한 부대는 고공(高空)에서 비행하였다. 이로서 암석 가운데 또는 구븐에 있는 폭격장 범위내외에 있는 작은 어선을 발견하기는 불가능하지는 않다하드래도 곤란케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극동 항공대는 이날 총격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다.
사건 현장은 남조선 미국 점령지대 해안 동방 약 백 『마일』에 있다.

肉眼에도 機標
총소사(銃掃射)는 피해자(被害者) 확인(確認)

독도 근해에서 이러나 우리어선 총폭격사건 진상에 관하여 미국극동군사령부에서는 별항과 같이 두번째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두번 발표를 통해서 보건대 사건 현장이 극동군폭격연습 구역이고 사건이 발생한 그날 동비행대가 현장상공을 나렀고 또한 폭격을 연습한 사실이 있었다는 세 가지 조건만은 확인되여있으나 이 조건과 어선 총폭격사건과의 직접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가설적으로 만약 관련이 있드라도 동비행대의 기총소는 전엽 없었고 또 고공(高空)비행이라 어선을 인정키 곤난했으리라고 그본의안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어째든 결국 미국의 책임은 없다는 것을 결론하였다.
이로서 조선경찰이 말한 『원에별』표식을 봤다는 사실과 어울러 보드래도 극동항공대 비행기의 이날 연습폭격이 바로 어선 폭격이란 결과를 내였다고 거이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과연 고의냐 『우발적』이냐가 문제인데 우발적이리라는 리유로 『고공이여서 어선을 인정키곤난했다』고하지만 『원에별』표식을 아래서 인식할 정도라면 고작 높아야 천메터 가량이라는 것이 상식이요 그러타면 고공이여서 표식보다 몃 10배나 커다란 어선을 ...

爆擊責任者는 公開處斷하라
대동청년담 談

대동청년단 본부에서도 15일 독도 폭격 사건에 관하여 비행기의 국적여 외고의 여하를 불문하고 엄중조사하야 책임자를 공개처단하는 동시에 손해보충과 유가족생활보장을 군정당국에 요망한다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할 바 였다.

어민(漁民)의 시험물시(試驗物視)는 만행(蠻行)
漁船爆擊에 朝民黨 談話

조선민주당에서는 작 15일 독도폭격 사건에 대하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독도의 괴비행기 사건은 철저한 진상발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선량한 한국어민을 미물과 같이 시험물로 사용한다는 만행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眞相調査와 責任을 밝히라
민독당(民獨黨) 담화(談話)

민주독립당에서는 독도(獨島)폭격사건에 대하야 작 15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독도참사에 대하야 미군정당국은 성의있는 진상조사와 준렬한 책임구명이 있기를 강력히 요청한다. 우리 판도(版圖)내에서 우리동포를 대상이 이러한 폭거(暴擧)가 있었음은 외군 주둔하에 아직 통일주건을 갖지 못한 우리 민족으로써 더욱 분노를 금치 못하는 바다.

조선일보 1948년 6월 11일 2면

국적불명(國籍不明)의 비기(飛機)가 투탄(投彈) 기총소사(機銃掃射)
독도(獨島)서 어선(漁船) 파괴(破壞) 16명이 즉사(卽死)

울릉도(鬱陵島)에서 본사(本社)특파원(特派員) 윤두종 특전(特電)/ 팔일 오전 11시반경 울릉도 동방 39해리 (獨島)에 국적불명 비행기 수기가 출현하야 폭탄을 투하한 후 기관총 소사까지 행하고 사라졌는데 그곳에 고기잡이와 미역을 따러갔던 울릉도와 강원도의 20여척 어선이 파괴되고 어부 16명이 즉사 10명이 중상되었다. 이 급보를 받은 울릉도당국에서는 구조선 2척이 9일 저녁 현장에 급행하였다.

조선일보 1948년 6월 12일 2면
구기편대(九機編隊)로 어선(漁船)을 맹폭(盲爆) 무고(無辜)한 죽엄의 책임추궁(責任追窮) 요망(要望)

어제 본사 특파원이 울릉도에서 보도해온바 독도(獨島)근해에서 일어난 정체모를 비행기의 폭행으로 우리어선어부들의 참담한 피해사건은 별항과 같은 속보에 의하여 우리 동포의 격분을 사는 동시에 그 불상사의 전무가 들어나기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동보도에는 다만 『모국 비행기의 연습 행위인 듯 하다』고 했으나 아직 진상은 모호하나 어떠한 각도로 따져 보드라도 그 불법만행임에 철저한 규명이 있어야 될것임은 다시 말할것도 없다. 가사 군사연습이었다면 실전에 있어서도 비전투원에 포화를 가함은 공법상 불법이어든 하물며 개인적 작란이라면에서 더한 야만행위가 있으랴! 너그럽게 실수라 보기에는 목격자가 전하는 그때의 참경이 너무나 눈에 아프다. 언 듯 생각되는 것이 이독도가 문헌상으로 보나 기타 지리적 조건으로 보나 우리 영토에 속함이 분명한데도 해방후 한때 일본정부가 자기들것이라고 억지를 부려 말성이 되었든 것이다. 어쨌든 과연 무었인지 비행기의 정체가 규명됨에 따라 진상도 드러나려니와 전시도 안인 이 때 동포의 이 어굴한 죽엄앞에 겨레들은 오직 이 사건의 철저한 규명과 책임 추궁을 바라는 소리가 자못 높은 바이다.

민심(民心)에 큰 충격(衝擊)
어선(漁船) 침몰(沈沒)만 23척(隻), 사상(死傷)24명

독도(獨島)폭격(爆擊) 현지(現地)속보(續報)
울릉도(鬱陵島)에서 본사특파원 윤두종 제(第)2신(信) / 기보한바 독도(獨島)에서의 비행기(飛行機)폭격 기관총 소사 사건은 울릉도와 강원도 일대에 크다란 충격을 주고 있는데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어부의 말에 의하면 지난 8일 오전 11시부터 20분간 『독도』상공에 비행기 9대가 낳다가 폭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소사하여 고기잡이와 미역을 따든 어선 20여척과 발동기선 3척이 침몰되고 3척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동현장에서 어부로서 사망자 9명 행방불명 5명 중상 2명 경상 8명을 내었다. 사망한 사람은 강원도 묵호에 1명 강원도 울진군 호월리에 2명 동 죽변리 6명 울릉도 남면 도동 3명 동 남면 저동동 3명이다. 침몰된 어선은 소형어선이 20척 대형선이 3척 파괴 3척 손해는 오백만원 정도라 한다. 일반 도민은 9일 저녁에 급행한 구조선의 하회을 고대하는 중이며 폭격한 비행기의 정체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으나 작년 4월에도 이러할 일이 있었던 것으로 비추어 당지당국자의 추측으로는 모국비행기의 연습행위가 않인가한다.

독도(獨島)폭격(爆擊)진상(眞相)
미(美)당국(當局)서 조사(調査)

지난 8일 오전 11시경 울릉도 동방 39해리 독도(獨島)에서 이러난 어선 폭격사건에 대하야 군정당국에서는 아즉 정식정보에 접하지 못하였음으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말하였다. 한편 미(美) 24군 당국에서도 조사를 진행중임으로 금명간 전모가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기영(機影)일거(一去)에 참시(慘屍)낭자(浪藉)
폭풍(爆風)탄우(彈雨)로 독도(獨島)는 생지옥(生地獄)화(化)
이(李)선장(船長) 조난(遭難)담(談)

독도(獨島)폭격(爆擊) 제(第)3특신(特信)
울릉도에서 본사특파원 윤두종 제3신
아슬아슬한 당시의 광경을 목도하고 돌아온 강원도 묵도 궁장환 선장 이완식(李完植, 34)씨는 10일 울릉도 도동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울릉도의 미역 채취가 끝낫음으로 4일경 독도로 가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 열두시경 비행기 소리가 들렸으나 파도소리로 알고 있었드니 맨 처음에 독도우에 있는 샘멸우에 폭탄이 떠러졌다. 천지를 진동하는 이 소리에 나는 배에서 물속에 뛰어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3대의 비행기가 섬 동편 백메타 부근에서 미역을 따고 있는 어선 20여척에 돌맹이 같은 폭탄을 여러개 투하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뒤를 이여 나머지 배를 향하야 폭탄을 던지고 다시 반대편으로부터 다른 편대가 날러와 폭탄을 뿌리엇다. 섬부근은 삽시간에 폭풍과 화약내음새에 지옥과 같은 정경을 이루었다. 그때 다시 비오는 듯한 기관총 소리가 들렸고 바위와 배 우에 총알이 비오듯 하였다. 나는 황급히 물속에 몸을 잠것다. 이통에 우리 배의 밥을 짓는 김중순(金仲順, 19)운 등에 총알을 받어 즉사하였다. 얼마동안 있드니 마즈막으로 부근을

조선일보 6월 16일 1면
독도(獨島)사건(事件)에 분격(憤激)
진상(眞相) 규명(糾明)키로 결정(決定)
국회 제11차 회의

국회 제11차 본회의는 15일 오전 신익회 부의장 사회(司會)하(下)에 개최되었다. 먼저 상임위원(常任委員) 전형(銓衡)위원(委員)을 대표(代表)한 김도연(金度演)의원(議員)으로부터 상임위원(常任委員)을 선정(選定)하는 5원칙으로서 1. 본인(本人)이 희망(希望)을 참착(參錯)할 것, 2. 지방(地方)별(別)을 고려(考慮) 할 것, 3. 기능(機能)과 이력(履歷)을 참고(參考)할 것, 5. 전형(銓衡)위원(委員)의 의견(意見)참고(參考)를 채택(採擇)하기로 되어 차기(次期)회의(會議)(16일)에나 보고(報告)될 것이라는 중간보고(中間報告)가 있자 김상돈(金相敦)의원(議員)으로부터 전형(銓衡)위원(委員)으로 하여금 상오(上午)에 담당(擔當)임무(任務)를 보도록하자는 동의(動議)가 있어 이를 가결(可決)하였다.
다음으로 울릉도(鬱陵島)피격(被擊)사건(事件)에 대하여 진상(眞相)을 규명(糾明)하자는 긴급동의(緊急動議)가 나와 그 진상(眞相)을 조사(調査)하는 위원(委員)5명을 선정(選定)하자는 정준(定準)의원(議員)의 동의(動議)와 외무(外務)국방위원회(國防委員會)에 일임(一任)하기로 하고 토론(討論)을 종결(終結)하자는 윤재욱(尹在旭)의원(議員)의 개의(改議)가 있어 개의(改議)가 채택(採擇)되었다.

공동(共同)대책(對策)협의(協議)
작일(昨日) 10여 정당(政堂)이 회합(會合)

기보(旣報)한 바와 같이 한독민독당(韓獨民獨黨)을 비롯한 10여 정당(政黨)에서는 15일 오후 2시 민독당(民獨黨)회의실(會議室)에서 각(各)대표(代表) 연석회의(連席會議)을 개최(開催)하고 당면(當面) 국내정세(國內情勢)에 감(鑑)하여 항일(抗日)대책(對策)독도(獨島)사건(事件)등 기타(其他)문제에 관(關)하여 협의(協議)한바 있는데 금명간(今明間) 이에 대(對)한 공동성명서(共同聲明書)를 발표(發表)할 것이라 한다.

조선일보 6월17일 사설(社說)
독도(獨島)폭격(爆擊)사건(事件)

일(一)
독도(獨島)폭격(爆擊)사건(事件)에 대(對)해서는 미군(美軍)측 극동(極東)항공(航空)대(隊)의 발표(發表)가 아직 미심(未審)하다. 사실(事實)을 은폐(隱閉)하련다던가. 또 책임(責任)을 회피(回避)하려는 듯한 무엇은 있을 수 없을 것으로 믿는다. 약간 시일(時日)을 경과(經過)한다 하더래도 상세(詳細)한 증거(證據)에 의거(依據)한 책임(責任)있는 발표(發表)를 하고저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동(同)항공대(航空隊)가 인정(認定)한바로는 동(同)지점(地點)이 폭격(爆擊)연습(演習)지역(地域)이었다는 것. 폭격(爆擊)이 있었다고해도 우발적(偶發的)이었을 것이라는 것. 단(但) 총격의 사실(事實)을 인정(認定)치 못하겠다는 것 등(等)인데 대개(大槪)는 미군(美軍)폭격(爆擊)연습(演習)에서 발생(發生)된 것이아인가 생각도 된다는 태도(態度)만은 엿볼 수 있으며 따라서 책임(責任)있는 명쾌(明快)한 조사(調査)가 우리에게 오점(汚點)을 남기지 않도록 하리라고 미들 수 있다. 즉(卽) 만일(萬一)미군(美軍)측(側)의 소위(所爲)가 아니었다면 누구의 소위(所爲)일 것이냐 하는 것을 명백(明白)히 할 것도 미(美)점령군(占領軍)의 책임(責任)일 것이다.

이(二)
우리가 지금 이 사건(事件)에 깊은 주의(主義)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영토(領土)내(內)나 영해(領海) 또는 근해(近海)에서 실탄(實彈)에 의(依)한 점령군(占領軍)의 연습(演習)이 무(無)경고(警告)로써 시행(施行)되고 있다는 사실(事實)에서부터 점령군(占領軍)당국(當局)의 불찰(不察)을 지적(指摘)코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나라의 공군(空軍)이었다 하건 오늘의 ??히 과학적(科學的)인 정밀(精密)기기(器機)로 장치(裝置)된 폭격기(爆擊機)가 비록5,6천 내지 7,8천 미돌(米突) 상공에서 부감(俯瞰)한다 할지라도 특(特)히 해상(海上)의 명(明)청한 공간(空間)에서 투시(透視)될 수 있다는 점(點)과 은폐(隱閉)물(物) 하나없는 독도(獨島)에서 무심(無心)코 작업(作業)중(中)인 어선(漁船)군(群)을 발견(發見)치 못할 리(理)가 없을 것이다. 아재층(亞哉層)권(權)비행(飛行)에서 능(能)히 오만부지일 급의 정밀(精密)한 지도(地圖)를 제작(製作)할 수 있는, 혹(或)은 그 이상의 정교(精巧)한 작전(作戰)용(用) 촬영이 가능(可能)한 사실(事實)을 생각한다면 그 어느나라의 폭격기의 소행(所行)이었건 그 부주의(不注意)는 극심(極甚)한 자(者)이다. 우리에게는 총격(銃擊)이건 폭격(爆擊) 간에 우리 영토(領土)내(內)에서 평화적(平和的) 생업(生業)에 종사(從事)를 국민(國民)이 처참(悽慘)한 시체로써 돌아왔다는 증거(證據)가 우리로 하여금 사건(事件)의 진상(眞相)을 추궁(追窮)케 하는 것뿐이다. 다만 그 부주의(不注意)를 범(犯)한 폭격기(爆擊機)군(群)의 탑승(搭乘)자(者)의 심리(心理)에는 과연(果然) 무엇이었든가 긴절(緊切)히 알고싶은 바이다.

삼(三)
하-지 사령관(司令官)은 미 점령군(美占領軍)당국(當局)으로서 본(本)사건(事件)에 신중(愼重)함을 성명(聲名)하는 동시(同時)에 사건(事件)의 전모(全貌)가 조사(調査)발표(發表)되기까지 자의(恣意)의 판단(判斷)을 삼갈 것????였다.
사건(事件)은 ??히 ??통(痛)스러운 면(面)을 가진 불상사(不祥事)이다. 사태(事態)는 진상(眞相)구명(究明)에 따라서 ??없이 수습(收拾)되고 금(今)??의 안전(安全)이 보장(保障)되었으면 될것이고 그 이상(以上) 혹시(或是)감정적(感情的)인 어떤 경향(傾向)이 나타난다면 이는 필요(必要) 이상(以上)의 것일 것이므로 삼가야 할 것이다. 오직 이때에 독도(獨島)의 ???이 세속(世俗)에 전(傳)하는대로 일본(日本)에서 문제시(問題視)한다하더라도 오랜 역사적(歷史的)지리적(地理的) 관계(關係)가 있는 그우에 이번에 못하지 않은 가운데 동포(同胞)의 피로써 지은 본(本)사건(事件)기록(記錄)이 동(同)도(島)로 하여금 우리에게 ??될 새 기록(記錄)임을 확인(確認)하고 이 점(點)을 명기(銘記)하므로써 피해(被害)동포(同胞)의 ??????할 것을 잊지않도록 할 것이다.

조선일보 7월 10일 사설(社說)
독도(獨島)사건(事件)처리(處理)에 대(對)하야

일(一)
독도(獨島)폭격(爆擊)사건(事件)은 6월말 내로 진상발표(眞相發表)가 있을 듯 하더니 아직 하등(何等) 책임(責任)있는 곡절(曲折)을 전(傳)하는 바 없??????는 딘 군정(軍政)장관(長官)으로?? 하지 사령관(司令官)이 임명(任命)한 소청(所請)위원(委員)이 현지(現地)에 가서 피습(被襲)가족(家族)에게 배상(賠償)을 하여 그들은 만족(滿足)하고 있다는 것을 발표(發表)했다. 사건(事件)처리(處理)의 신속(迅速)을 위(爲)하야 피해(被害)자(者)의 소청(所請)을 받기 위하여 관료(官僚)을 현지(現地)에 파견(派遣)하고 피해(被害)조사결과(調査結果)로써 배상(賠償)을 하였다는 친절(親切)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본(本)사건(事件)이 한번 전(傳)해지자 조선(朝鮮)사람이 저마다 민족감정(民族感情)에서 분노(憤怒)를 느꼈든 것이 무엇때문이엇던가를 생각할 때 본(本)사건(事件)이 해결(解決)은 후(厚)하고 친절(親切)한 물질(物質)에 의(依)한 배상(賠償) 그것만으로 고칠 것은 못된다. 즉(卽) 조선(朝鮮)사람의 흉중(胸中)에서 아직 풀리지않고 있는 것은 사건(事件)의 솔직(率直)한 전말(顚末)과 책임(責任)의 소재(所在)를 밝히지 않고 있고 그 책임(責任)을 어떤 절차(節次)의 어떤 방법(方法)에서 처리(處理)하느냐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혹(惑) 소심(小心)자(者)류(類)의 논법(論法)으로 하면 반미(反美)감정(感情)의 도발(挑發)을 위(爲)한 것이라고 할런지도 모르나 우리는 그러하므로써 대(大)미국(美國)의 공명정대(公明正大)를 더 이해(理解)할 수 있고 따라서 민족감정(民族感情)을 더 친미(親美)적(的)으로 우호(友好)정신(精神)을 돈독(敦篤)히 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二)
미군(美軍)극동(極東)항공(航空)사령부(司令部)나 또는 미(美)점령군(占領軍)사령부(司令部), 또는 미국(美國)당국(當局)은 모름직이 독도(獨島)폭격(爆擊)사건(事件)의 전말(顚末)을 솔직(率直)히 밝힐 것이다. 사건(事件)이 조선(朝鮮)에서 전(傳)해지자, 미군(美軍)태도(態度)는 어떤 것이었던가,그 태도(態度)는 불철저(不徹底)하고 애매(曖昧)했다. 최초(最初)는 그런 사실(事實)의 인증(認證)조차 하지않고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음이 조사(調査)케 한다고하고 만일(萬一) 미군(美軍)의 소위(所爲)였다면 우발적(偶發的)이었으리라 했고, 그 다음이 고공(高空)에서 어선(漁船)군(群)을 암석(岩石)으로 오인(誤認)했었다하고 단(但) 기총소사(機銃掃射)의 사실(事實)은 없었다고 부인(否認)하면서 더 조사(調査)할 것이라 한 다음 그 이상(以上)사건(事件)으 진상(眞相)은 발표(發表)되지 않고 있다. B29라는 최(最)성능(性能)의 폭격기(爆擊機)가 오인(誤認)했다면 어떠케 되어서 오인(誤認)했을까  기총소사(機銃掃射)의 사실(事實)이 없다면 피해(被害)자(者)들은 무엇을 가지고 기총소사(機銃掃射)라고 했을까. 좀 더 기술적(技術的)인 구체적(具體的) 해명(解明)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책임(責任)당국(當局) 혹(惑)은 그 대변자(代辯者)로부터 책임(責任)있는 설명(說明)을 듯지 못하고 있는 것을 ??으로 역인다. 우리가 정부(政府)가 있다면 의례(依例)히 우리 정부(政府)가 여론(與論)에 앞서서 우리 편(便)에서 진상(眞相)을 조사(調査)하고 그 결과(結果)를 가지고 미국(美國)측(側)과 교섭(交涉)하야 모든 문제(問題)의 우호적(友好的) 해결(解決)을 기(期)할 것이었으나 지금 국민(國民)의 정부(政府)가 없고보니 군정(軍政)의 기관(機關)(???)인 과도정부(過渡政府)도 이 사건(事件)에 흥분(興奮)하야 비분(悲憤)한 공기만 보이고 그 이상(以上) 아무런 조처(措處)도 없었다. 마침내 하지 사령관(司令官)이 임명(任命)한 소청(所請)위원(委員)이 현재(現在)에 이르러 배상(賠償)하므로써 일차적(一次的)해결(解決)을 지은 듯 전(傳)하고 있을 뿐이다.

삼(三)
물론(勿論) 원만(圓滿) 해결(解決)을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조선(朝鮮)사람은 지금 물질(物質)배상(賠償)과 별개(別個)로 사건(事件)의 진상(眞相)과 책임(責任)의 귀속(歸屬)이 명확(明確)해지지않는 이상(以上) 돈이나 받았으면 그만이지하고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진정(眞正)한 심정(心情)이요. 이런 것이 민족(民族) 심리적(心理的)으로 흐러내려오는 일종(一種)의 전통(傳統)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해방(解放)에 이르기까지 또 이후(以後) 미국(美國)에 대(對)한 감사(感謝)도 잘알고 있다. 그러나 ???? 풍속(風俗)이 판이(判異)한 이(異)민족(民族)과의 많은 접촉 가운데는 감사(感謝)한다는 그것만으로 서로 감정(感情)의 융화(融和)가 있기 힘든 것은 누구나 짐작 할 수 있는 바로 뜻하지 않은 오해(誤解)도 있기 쉬운바이다. 개인(個人)간(間)에도 그러키쉽거든 문제(問題)가 독도(獨島)사건(事件)에 이르러서는 최초(最初)의 보도(報道)가 『모국(某國)비행기(飛行機)』로 전(傳)했고 또 미군(美軍)측(側)이 인정(認定)치 않았던데서 모국(某國)은 누구냐의 민족감정(民族感情)도 커졌다. 그뿐아니고 사건(事件)이 이런 범위(範圍)의 것은 본래(本來)가 국제(國制)성(性)을 가지는 것이어서 비록 점령(占領)지역(地域)내(內)의 점령군(占領軍)에 의(依)하야 발생(發生)된 사건(事件)이라고 하지만 국민적(國民的)국가적(國家的) 감정(感情) 이해(利害)에서 자기(自己)국토(國土)와 동포(同胞)에 대(對)한 권리(權利)를 주장(主張)키에 이르렀을 때 가해(加害)측(側)은 응당(應當) 배상(賠償), 진사(陳謝), 등등(等等) ????한 절차(節次)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1948년 6월 12일
소속(所屬) 불명(不明)의 비기(飛機)
어선(漁船)mf 폭격(爆擊) 소사(掃射)
사상(死傷) 20여 11척(隻) 침몰

울릉도(鬱陵島)에서
동해의 고도 독도(獨島)에서 어선(漁船)이 폭격을 받아 20여 명이 사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8일 울릉도로부터 39마일 떨어진 무인도 독도에는 「미역」다는 어선 15척이 본토(本土)와 울릉도로부터 모여들어 작업 중 정오에 이르러 상공에 나타난 비행기로부터 폭탄과 기관총의 세례를 받아 11척이 침몰하고 9명이 사망, 5명이 행방불명, 중상 2명, 경상 8명이란 큰 희생을 내었다 한다. 이 급보를 접한 도청(淘淸)과 경찰서에서는 재차의 참사를 피하여 9일밤 구조선을 보내고 그들의 구조에 노력 중에 있다 한다.

동아일보 1948년 6월 15일
미(美)연습기(練習機)투탄(投彈)
독도사건(讀圖事件)방금(方今)조사중(調査中)
동경 14일 발(發) UP

13일은 일요일이므로 미군(美軍)극동(極東)항공대로서 조선 동해안 원방(遠方) 일본해중에서 조선어선 폭격에 대한 책임을 결정하는 ??이 있었다. 조선결찰측에서 9개의 미국 쌍발비행기가 11척의 조선어선을 총폭격하여 14명의 사자를 내었다고 전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지난 8일에 미국항공부대가 고공(高空)에서 폭격연습을 행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폭격기승무원이 연습 중에 촬영한 사진이 동경에 도착하였으며 최고항공당국은 조선인 어부를 고의적으로 공격하였는지 불연(不然)인지 판단하기 위하여 이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연습부대가 일본 어느 기지에서 출동하였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14일에 내릴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48년 6월16일 1면
독도(獨島)사건(事件)대책(對策)
외무(外務)국방위회(國防委會)

국회(國會) 제11차 회의는 15일 오전 10시부터 신익회 부의장 사회(司會)로 개최(開催) 전(前)회의록(會議錄)를 낭독(朗讀)한 다음 그대로 채택(採擇) 이어서 보고(報告)사항(事項)으로 들어가 사무총장(事務總長) 전규홍씨의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 총본부(總本部)를 경출하야 북조선(北朝鮮)XX국(國)으로부터 과?? 국회(國會)에서 북한(北韓)동포(同胞)에 고(告)한 결의문(決議文)을 통과(通過)시킨데 대한 사의(謝意)와 현(現) 북조선(北朝鮮)사정(事情)을 소개(紹介)하는 내용을 포함(包含)한 서한(書翰)보고(報告)가 있은 다음 구(九)분과(分科)위원(委員)선출(選出)에 대(對)한 중간보고(中間報告)가 있었다. 이어서 김상돈의원이 구분위 전형(銓衡)위원(委員)은 15일내로 전형(銓衡)을 완료(完了)시키기 위하야 전형(銓衡)위원(委員)은 본회의(本會議)에 출석(出席)을 중지(中止)하자는 동의(動議)를 154대 0으로 가결하였다.
그리고 김장열 의원 외 10의원의 울릉도(鬱陵島)어선(漁船)폭격(爆擊)사건(事件)에 대(對)하야 대책(對策)위원회(委員會)를 구성(構成)하자는 동의와 이진수의원의 외무(外務)국방(國防)위원회(委員會)에 일임(一任)하자는 개의가 있어 표결(票決)한 결과(結果) 외무(外務)국방(國防)위원회(委員會)에 일임(一任)하자는 개의(改議)가 115대 14로 통과되었다.

동아일보 948년 6월 16일 2면
우발적(偶發的) 폭격(爆擊)인 듯
미기(美機)관련(關聯)여부(與否)미확인(未確認)

독도(獨島)사건(事件)[동경 15일발 UP조통]
미국(美國)극동(極東)항공대 사령부에서는 동해(東海)중의 조선어선 폭격사건에 미국 비행기가 관련이 잇는지를 조사한 결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미국항공대가 동해바다에서 거행한 폭격연습에 관한 사진과 보고를 조사한 결과 아직 미국비행기가 지난 8일에 11척의 조선어선 침몰에 대하여 책임이 잇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설혹 미국기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판정되었다 하더라도 이 폭격은 전연 우발적인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 지점은 소정의 폭격연습장으로 얼마전부터 폭격연습의 목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8일에 이 구역을 비행한 부대는 고공(高空)에서 비행하였으므로 암석가운데 또는 부근에 있는 폭격장 바위내외에 있는 어선을 발견하기에는 곤란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미군극동항공대에서는 이날 총격(銃擊)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동아일보 1948년 6월 17일 1면
미기(美機)투탄(投彈)이면 미군(美軍)당국(當局)책임(責任)
하지 중장(中將) 독도사건(獨島事件)에 성명(聖明)

과연(過緣) 독도(獨島)에서 조선어선에 대한 폭격사전이 발생한 이래 동사건의 ???부터 항간(巷間)에 물의(物議)가 분분(紛紛)하고 작금(昨今) 남조선(南朝鮮)미(美)주둔군(駐屯軍)사령관(司令官) 하지 중장(中將)은 16일 만약(萬若) 동사건에 미기가 관련되었다는 것이 판명되면 미군(美軍)정(政) 당국(當局)은 사망자(死亡者)유가족(遺家族)alt 피해(被害)자(者)에 대하야 만반(萬般) ??을 강구(講究)할 것을 보장(保障)한다는 요지(要旨) 다음과 같은 특별성명(特別聲明)서(書)를 발표하였다.
본관(本官)은 독도(獨島)폭격(爆擊)사건(事件)의 보도(報道)를 접(接)하여 여러분과 함께 큰 충격(衝擊)을 받았습니다. 조선(朝鮮)주재(駐在)로 철저(徹底)한 조사(調査)를 명(命)하였는바 지금(至今) 조사(調査)중(中)에 잇습니다. 그러나 본(本)사령부(司令部)에서는 조선(朝鮮)에 기지(基地)를 둔 또는 조선(朝鮮)부대(部隊)에 배속(配屬)된 비행기(飛行機)는 전(全)지역(地域)에 없었고 또 폭격한 사실(事實)도 업고 따라서 본(本)사건(事件)에 하등(下等)의 관계(關係)가 없다는 것을 이미 인정(認定)하였습니다. 일본(日本)에 기지(基地)를 둔 미기(美機)의 본(本)사건(事件)관련(關聯)여부(與否)d 대(對)여서는 방금(方今) 극동(極東)공군(空軍)사령부(司令部)와 극동(極東)총(總)사령부(司令部)에서 조사(調査)중(中)에 있음으로 동(同)조사(調査)가 완료(完了) 되는대로 즉시(卽時)사건(事件)의 전모(全貌)가 발표(發表)될 것입니다. 만약(萬若) 미기(美機)가 관련되었다는 사실(事實)이 판명되면 미군(美軍)당국(當局)으로서는 사망자(死亡者)의 유가족(遺家族)급(及)피해(被害)자(者)를 위(爲)하야 만반(萬般)의 대책(對策)을 강구(講究)할 것을 조선(朝鮮)국민(國民)에 보장(保障)하는 바이다. 또 미군(美軍)이 기(其)책임(責任)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 판명(判明)되면 그 책임(責任)은 도저(到底)히 피(避)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아일보 1948년 6월18일 2면
어선(漁船)폭격(爆擊)사건(事件)
고공폭격연습대(高空爆擊練習隊)로 인정(認定)
미(美)극동(極東)항공(航空)대(隊)공식(公式)성명(聲名)

동경 17일발 UP조통
미국 극동 항공대 사령부는 조선어선 폭격사건에 미국 비행기가 관련했다는 사건에 관하여 조사한 결과 고공(高空)폭격연습대의 폭탄이 조선연안 원방(遠方)에서 조선어선을 손상하였을런지도 모른다고 인정하였다. 동항공대사령부의 공식성명서는 14명의 조선인을 살해하고 기타를 부상시켰다고 전하여진 이 사건을 가장 불행한 유감스러운 사고라고 말하였다. 8일 조선동해안 원방에서 폭격연습을 행한 후 촬영한 사진은 위험구역 내에 소형의 수상 주정(舟艇)이 있음을 지시하였다. 사진을 확대한 결과 연습폭격구역으로 공시되고 상시(常時)는 암석(巖石)이 위험한 관계로 대소(大小)선(船)이 항해치 않는 구역내의 암석ㅇ 접근하여 암석에서 약 30척의 근거리에 잇는 것이 판명되었다. 동보발표에 의하면 어선이 연습폭격중 고공(高空)을 비행한 폭격수(爆擊手)로서는 해면에 돌출한 회색바위로 잘못 인정하였을런지도 모른다. 이 구역내에 있었던 약 30척의 어선중에서 생환한 어부들은 4발 폭격기 나래에서 미국 표식이 있었던 것을 보았다고 한다. 동발표에 의하면 이 폭격연습은 「오키나와」에서 출동한 ″B29″가 2천 3백 피트의 높은데서 행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동″B29″가 지난 8일에 연습폭탄을 던졌을 때에는 표적구역 내에 아무런 수상 선박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폭격 30분 후에 촬영한 정밀사진을 조사한 결과 폭탄이 떨어진 구역에서 세척의 조그만 배가 있음을 인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남조선 경찰은 비행기가 조선 울릉도 부근에서 폭탄과 총격으로 11척의 선박을 침몰케 하고 14명을 살해하였다고 말하였지만 항공대는 총사격은 한일이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동아일보 1948년 6월19일 1면 사설
독도(獨島)사건(事件)유감(遺憾)
유가족(遺家族)구제(救濟)하라
한민당담(韓民黨談)

한민당 선전부에서는 지난 18일 독도사건에 관하여 금반(今般)사전으로 한미(韓美)양(兩)민족(民族)간(間)의 우호(友好)관계(關係)에 영향(影響)이 있을 것을 우려(憂慮)한다는 다음과 가튼 담화를 발표하였다.
미국의 B29폭격기(爆擊機)가 독도 부근에서 어선을 소(小)도(島)?? 로 오인(誤認)하여 폭격한 결과 다수의 사상자를 내게 되었음은 실로 유감천만(遺憾千萬)이다. 우리는 B29의 폭격연습으로 인하여 발생된 금반(今般)의 독도(獨島) 사건(事件)이 한미(韓美)양(兩)민족(民族)간(間)의 우호(友好)관계(關係)을 저해(沮害)시키는 소인(素因)이 되지 않을까 염려(念慮)하는 바이다. 미(美)당국(當局)으로서는 ???에 마땅히 해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규명하여 책임의 소재를 준엄히 밝혀 금후(今後) 여(如)사(斯)의 재발(再發)을 방지(防止)할.....

동아일보 49년 6월 26일
今月未眞相判明
조사끝나면 배상건의

독도사건/ 지난 8일 독도 부근에서 미군소속 B29의 폭격을 바더 십수명의 거대한 객산의 피새를 바든 조선 등 정확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울릉도에 파견된 소청위임회로부터는 아직 하등의 보고가 없으나 이달말 경에는 피해정도 전제가 판명될 것이라 한다.
동위원회에서는 독도폭격피해총액을 조사결정하여 곳터상을 건의하게 될거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48년 6월 30일
독도폭격사건
불일진상발표

「위」8위원/ 미국비행기 B29의 잔인한 폭격으로 말미암아 독도부근에서 작업중이든 조선선박과 어부들에게 대하피해를 입게된 사건에 대하여는미국당국의 성의 이쓴 조치 강요청되어 오는 바이거니와 폭격당한 현지로 파견된 서총 위원회에서는 그동안 판명된 36건의 피해중 33건의 조사를 완료하였고 나머지 3건도 피해자의 주소가 판명되는 대로 조사하여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 소처위원회위원 A.W 위나지크 대위는 33건의 피해에 대한 배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독도방면으로 다시 출발하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48년 7월 2일
식량증배불능
독도진상불원발표

하-지 군정장관과 중앙청출입기자단은 1일 정례회견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에 응답을 하였다.
독도 사건에 대한 미군당국의 태도는 너무도 냉정하다. 공분을 느끼고 있는 조선민족의 앞에 적절한 사ㅘ와 피해자에 대한 배상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아는데 귀관의 견해는 어떠한다
이 문제는 군정단국에서 조처할 성갈의 것이 아니고 조선주둔 미군사령관의 군한과 처리에 속하는 사건이다.
이미 「하1지」중 장도이에 대한 사과를 하였다고 믿는다. 소청위원회에서 사건책임과 피해상태의 조사를 완료하고 돌아오면 다시 상세한 발표가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48년 7월 10일
민족의 여론참작
적절한 배상을 요망

독도사건/ 미군 폭격기의 폭탄에 수많은 피해를 받은 독도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자 그동안 현지에서 활동중이던 미군특별소청위원회에서는 35건이 피해에 대하여 엄밀한 조사를 마치고 지난 5일 귀임하는 동시 피해자들에게 각각 소정의 배상을 완료하고 만한건으로 피해자의 유가족 주소를 알지 못하여 배상을 지불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독도폭격사건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므로 한국 민족의 공정한 여론과 의견을 청취하여 적절한 배상을 지불하지 않고 미군의 독단적 견해와 피해조사로서 배상을 지불하고 그 진상을 밝히지 않는대 대한 민족의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금후 「하1지」중장이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정도의 사과와 진상발표가 있을런지 자못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 48년 7월 6일
독도사건 배상지불
주변관내에 248만원

울진군 죽변어업조합으로부터 강원도 수산파에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미군 당국에서는 독도사건에 관하여 7월1일부터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지불되었는데 배상액은 유가족 보조료 밋어선침을 파손 등 2백 4십 8만 2백원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변리 오종석 684,1100원

동아일보 52년 9월 21일
독도에 또 폭격 준동
불안과 공포에 싸인 도민들
동해벽해에 멀리 외떨어진 섬 독도에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불안과 공포가 전도민을 휘덮고 있다. 1948년 6월 3십여명의 어민들이 미군기에 의한 이유없는 사격으로 말미암아 억울한 죽임을 당한 비참한 울릉도 독도사격사건이 아직도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지지도 않은 오늘 또다시 독도에서 사격사건이 발생하였다한다. 즉 지난 9월 15일 오전 11시경 울릉도 통조림 공장 소속선 광영호를 탄 해녀 14명의 선원 등 합 23명이 출어 중에 있든바 틀림없이 미군 비행기라고 추측되는 비행기 1대가 날아와 서독도 주변을 선회하면서 4개의 폭탄을 던졌다한다. 이에따라 울릉도의 어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마음놓고 출어를 못하는 상태에 있으며 지난 17일 부산을 출발한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단 일행도 행동을 제지당하고 있다한다 그럼으로 울릉도 도민과 동도조사단 일행은 동폭격사건의 진상조사를 정부 당국과 군당국에 의회하는 한편 앞으로 이와같은 경고없는 폭격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요망하고 있다.

미군 비행기로 추정
독도학술조사단이 보고

그런데 울릉도 독도학술조사단 단장 홍종인씨는 20일 상오 11시 20분 동 폭격사건에 관한 상세한 전말을 지급전신으로 상공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여왔다 미군비행기가 틀림없으리라고 추정되는 비행기 1대가 폭탄을 던져 서출어중의 어민이 다급히 대피치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본 조사단에서 곧 해군본부 총참모장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는 동시에 본 조사단은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기 위하여 공군관계당국에 연락기를 청탁하고 19일에 행동을 유예하고 있음
독도의 폭격사건인 즉 지난 9월 15일 오전 11시경 울릉 통조림공장 소속선 광영호가 해녀 14명과 선원 등 합 23명이 소라전복등을 따고있든중 1대의 단발 비행기가 날아나서 독도의 주변을 돌면서 4개의 폭탄을 던졌는데 이때문에 어민들이 곧 대피에 착수하자 비행기는 일본방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독도를 이에 대해서는 울릉도어민들이 간절히 원하는바 이어서 지난 봄 4월 25일 무렵 한국 공군고문관을 통하여 미제 5공군에 조회했든바 5월 4일부로 독도와 그 근방에 출어가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없고 또 극동공군의 연습폭격목표로 사용되있지 않다는 회답이 있어서 한국공군 총참모장으로부터 경북도를 통하여 울릉도에도 기별되였던것임에 불구하고 금번에 하등의 경고없이 폭탄을 투하였기때문에 울릉도 도민은 1948년 6월 30명의 사망자를 낸 미공군폭격자가 참여한 기억을 다시 명기하고 불안공포를 느끼며 미군당국이나 우리 정부기관에 조회나 통보를 믿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폭격연습지가 안님은 오공군도 확인하고 있다.
독도무경고폭격에 상공장관담

지난 15일 발생한 독도폭격사건에 대하여 이상공부 장관은 21일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1948년 독도폭격사건으로 무고한 어민다수가 희생되어 국민의 우울한 감정이 아직사라지기도 전에 9월 15일 또다시 폭격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울릉도 독도학술조사단의 보고에 접하여 경악하여 마지않는다. 독도가 폭격연습지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제 공군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으며 정착성 수산물의 풍산지로서 울릉도는 중요한 어장이다.
다행히 인적 피해는 없었으나 여사한 사건이 금후 계속 한다면 어민의 활동에 영향이 미치는바 지대할 것이며 생업유지상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으로 지급관계당국과 절충하여 그 진상을 규명하는 동시에 여차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52년 9월 26일
울릉도 우복폭격
학술조사단이 보고

독도 및 울릉도 학술 조사단을 태운 지남호는 지난 22일 독도조사를 진행코 임비로 향하였으나 22일 역시 항공대의 폭격 연습으로 말미암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울릉도로 일단 몰아가게 되었다고 하여 작 25일 현지조사단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 3신이 정부에 보내졌다고 한다.
22일 드디어 독도행을 결행했던 본 조사단은 오전 11시경 독도까지 약 20킬로 접근하였으나 1시간 이상 계속되는 폭격연습으로 상륙치못하고 부득이 일단 울릉도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음.
이날 천기는 극히 청명하여 비행기의 폭격관경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수종의 촬영기에도 완전히 수록할 수 있었음. 본신남호선상에서 비행기의 폭격을 확인하기는 10시 15분부터인데 비행기는 암록생의 쌍발기로 우편날개에 수개의 백색선과 날개끝에 역시 백색의 표식을 그렸으나 확인키 어려웠음. 처음 발견했을때는 3기 내지 4기로 약 1천미의 고도에서 독도에 향하여 연속 폭격하면서 점차로 고도를 높여 내종에는 3전미 이상의 고도에서 폭격하고 있었는데 그때 본신남호는 독도까지 약 2키로 접근하였으나 이때의 폭격이 본선과 쌍방향으로 독도에서 약 2킬로되는 행상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보고 더욱 위험을 느끼고 12시 40분 귀항하였는데 비행기는 계속 폭격하다가 미구에 본선과 같은 방향은 울릉도로 최종의 2대가 자체를 감추었음.

동아일보 52년 9월 28일
독도폭격상금계속
학술 조사단 4차 보고

독도학술 조사단이 독도주변에 대해 폭격으로 동도에 상륙하지 못하고 해군당국의 노력으로 재체 동고로 향하였으나 역시 폭격이 계속되고 있는 관계로 24일 오전 9시 30분 독도 1킬로 지점까지 접근하였으나 상륙하지 못하고 다시 울릉도에 돌아왔다고 다음과 같은 학술 조사단 제4신이 도착하였다.

1. 24일 재차의 독도행을 결행했는 본단이 24일 상오 9시 30분경 독도 동방 약 4킬로로 지점에 접근하자 2대 내지 4대의 쌍발기가 약 3천미 고도에서 여전히 폭격 연습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본선은 독도 1킬로까지 접근하여 섬을 일주하여 상륙할 기회를 엿보았으나 폭격기는 본선을 본체만체 섬 주변에 연속 폭탄을 투하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음 극히 염려되였든것은 본선보다 2시간 전에 독도에 도착한 해녀 21명이 편승한 광영호 였는데 1시 10분경 폭탄 투하지점 약 3미근해에서 해선을 발견하고 안심하였다.

2. 본선이 2시간반에 걸쳐 섬을 일주하는 동안 약 10여발의 투탄광경을 볼수 잇었다. 대개는 섬 주변에서 폭발하였고 몽몽한 폭염과 소란한 폭음에 우리를 가슴이 조여오은 것을 느끼였고 섬을 일주한 결과 동도와서도는 폭격으로 인하여 많이 분모되였으며 동도의 분화구의 1각은 완전히 파괴되였음을 확인하였다.

3. 해공군각참모장의 명의로 미재5공군이나 유엠한대기등 모처럼 긴밀 연락과 교섭을 다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를 보지 못하고 도라가게 된 것은 유감천만이다. 그런데 독도를 우리의 발길손길이 버터나갈 여지없이 버려두어야 할 것인가.
4. 진남호과 광영호는 각각 울릉도에 귀항귀로에는 파탕이 상당히 높았다.

동아일보 53년 2월28일
독도어민공포일소
공폭연습중지를 미군서 보장

한동안 『독도』주민을 공포속에 떨게하던 『독도』 주변 공폭연습은 한국 및 UN군 당국과의 합의로 이웃 주민들의 불안을 일소케 하였다고한다. 작 27일 군당국측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난 9월 15일 국적불명의 비행기의 폭격사건이 문제중이던 독도는 그관아 정부와 UN당국과에 완전 합의를 보았으며 미국 정부로서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의1부임을 인정하고 금후 독도 부근에는 폭격이 없을 것이 미극동 총사령관에 의하여 보장되었다하며 폭격으로 인하여 대타격을 받아오던 어민들도 차후로는 안심하고 어로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2001.6. 독도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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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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