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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두려워한 `독도 지키기'

일본이 두려워한 `독도 지키기'

50년대 의용대장 고 홍순칠씨 육필수기 공개
"3년여 철통경비 평생의 즐거움" 
미군 양공주 통해 무기구입 
접안시설 설치 줄곧 주장 
한때 중정서 모진 고초...5등훈장 하나뿐

『53년 6월25일. 경비정 1척이 가재바위옆에 멈췄다. 이 배는 확성기로 「가이조쿠카, 나가레테 기타카?(해적이냐, 표류해 왔느냐?)」 라고 물었다. 대답 대신 선미를 향해 기관총 20여발을 쐈다. 경비정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의용군」을 모아 53년 4월20일부터 56년 12월30일까지의 만 3년 8개월간 를 지켰던 「독도의용수비대」 대장 고 홍순칠씨(86년작고) 의 육필수기가 공개됐다. 홍씨가 지난 85년 투병하기 직전에 쓴 이 글은 2백자원고지 1천5백 여장 분량이다.

홍씨가 울릉도 주민 32명을 모아 수비대를 조직한 것은 23세 때인 52년. 홍씨는 당시로는 큰 돈인 3백 만원을 들고 부산 미군부대 근처 양공주들을 찾았다. 양공주들은 미군들로부터 재주껏 무기를 빼냈고, 홍씨도 「독도산 물개」를 한 마리 잡아주기로 하고 소총과 실탄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80㎜ 박격포 1문과 포탄 2백발, 소총 30여 자루와 실탄 2만5천 여발 등이 모였다. 홍씨는 『그 양공주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회고했다.

『53년 4월21일. 에서의 첫 아침. 태극기를 게양하고 거수경례를 붙였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홍씨는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썼다.

이후 수비대는 경찰에 임무를 인계할 때까지 수 차례에 걸쳐 순시함을 「무력으로」 물리쳤다. 53년6월에는 오키(은기)수산고 실습선 한 척이 얼씬거리다 붙잡혀, 실습생 전원이 정상에 무릎을 꿇고 홍씨를 따라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화장실 문에 「폭풍주의」라고 써놓을 만큼 궂은 독도 생활이었지만, 홍씨 평생의 「가장 즐거웠던 기간」으로 수기에 기록됐다.

홍씨의 「독도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0년대 대통령에게 『독도를 지키려면 최소 20세대를 정착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푸른 독도 가꾸기 운동」을 주도했다. 독도 정상의 태극기를 새긴 석판도 홍씨가 83년 설치한 것. 최근 추진중인 접안시설은 홍씨 가 50년대부터 줄곧 에 요청해왔다. 한때 중앙정보부의 의심을 받아 모진 고초를 겪기도 한홍씨는 85년 11월 병으로 쓰러진 뒤 이듬 해 2월7일 눈을 감았다. 그러나 홍씨의 공로가 인정된 것은 66년 받은 「5등 근무공로훈장」 한 개 뿐. 84년 말부터 매월 5만원의 연금을 받 았으나, 이것조차 홍씨가 숨지면서 끊겼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미망인 박영희씨(62)는 『매년 3.1절이 되면 그토록 독도에 매달린 남편기억이 새롭다』면서 『숨을 거두면서도 「대원들이 아무 보상을 못 받아 마음에 걸린다」는 말을 남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현우기자> 1996.02.29 20:07 0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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