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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영웅’ 안용복, 일본에 살아 있다-3

조선 조정은 옥살이 시키고 유배 보내
영유권 확인 위한 발자취 日 문서와 구전으로 남아 … 공로 무시하고 기록 없는 조선과 대비

1695년 가을쯤 안용복은 감옥을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직후 그는 또다시 일본행을 구상한다. 이듬해 5월 안용복은 상선을 소유한 승려 뇌헌을 비롯한 동래 사람 등 십수명을 규합해 선단을 이끌고 울릉도를 찾아갔다. 그리고 조업 중인 왜인들을 만나 이들을 나포한 뒤 이들을 앞세워 오키섬으로 갔다. 

안용복의 1·2차 행로도 

오키섬에 도착하기 전 그는 일행 모두에게 관복을 입게 했다. 1차 도항 때 신분이 적절치 않아 곤란했던 것을 감안해 위장한 것이다. 안용복은 해양을 관장하는 정3품 당상관을 칭했고, 다른 일행은 조선의 관리로 행동하도록 했다. 오키섬에 도착한 안용복은 다이칸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돗토리성으로 배를 몰았다.

그런데 본토 해안 근처인 나가오바나(長尾鼻)라는 곳에서 배가 좌초하면서 육지에 올라, 돗토리성 관원의 안내를 받아 지금은 동선사(東善寺)로 불리는 칸논도(觀音堂)란 사찰에 머물게 되었다. 이 동선사에서 만난 한 승려는 이렇게 전했다.

“이 절이 500여년 됐는데 그분(안용복) 얘기는 대대로 듣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주와의 면담을 기다리며 근처에 있는 아오지마의 온천을 즐겨 찾았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귀한 손님을 맞았던 거지요.”

안용복은 한 달여 만에 성주와 재회했다. 이때 그는 대마도주의 무역 비리를 폭로하며 이를 막부에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궁지에 몰린 돗토리 성주는 대마도주의 비리는 대마도 스스로 해결토록 현지에 통보하고, 막부에 대해서는 국서를 재발부해달라고 품신했다.

이에 막부는 3년 전 약속을 재확인하고 조선 조정에 국서가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대마도까지 직접 관리를 파견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 약속은 안용복이 귀국한 1697년 2월 일본 국서가 조선 조정에 도착함으로써 이행됐는데, 이때 안용복은 대마도를 피해 동해를 가로질러 돌아오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선 조정은 그를 또다시 무단월경죄로 체포해 옥살이 시키다 유배를 보냈다. 그 후 조선 기록에 더는 안용복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안용복의 쾌거에도, 조선은 오히려 그를 ‘잊어야 할 영웅’으로 방기해버린 것이다.

 
안용복이 없었다면 한국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지금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이 고시를 통해 독도를 편입한 것을 독도 영유권의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1936년 일본 육군이 만든 ‘지역구도일람표’와 1933년 해군이 제작한 ‘조선연안수로지’는 독도를 조선 영역으로 표기해놓고 있다. 안용복의 노고가 없었다면, 조선을 침탈한 일본군은 이러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안용복은 일본에서 엄연히 역사로 살아 있건만, 우리는 안용복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시마네현에 펄럭이는 ‘돌아오라 다케시마여’라는 현수막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에서 안용복을 복권시키는 절실한 이유가 되고 있다
 

 

2005 년 03 월 01 일 (474 호)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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