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내용검색  

독도위기자료

한일어업협정

영유권문답

독도위기칼럼

독도영유권위기 논문

세계가 보는 독도

일본의 독도정책

동영상강좌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독도영유권위기 > 일본의 독도정책 > 정부

 


교과성  |  동영상  |  정부  |  민간  |  일본공작문서  |  일본의 독도역사왜곡

일본 정부, 1947년에 울릉도도 일본땅 로비

제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정부가 이미 1946-47년에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까지 자국영토라고 주장하는 각종 팸플릿을 제작해 미국을 비롯한 전승 연합국들을 상대로 집요한 로비를 벌였던 것으로 27일 밝혀졌다.  

이는 일본정부가 독도를 비롯한 인근 다른 나라 도서지역에 대한 영토 야욕을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은 1949년 이후라는 학계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데다 해방직후 한국의 혼란한 정국을 틈타 울릉도까지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사실은 정병준(鄭秉埈. 40)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지난달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자료를 발굴해 공개함으로써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패전 이듬해인 1946년에 벌써 일본이 확보해야 할도서(島嶼.island)와 소도(小島.islet)ㆍ암초(rocks)에 대한 각종 팸플릿을 '일본본토에 인접한 소도서(Minor Islands Adjacent Japan Proper)'라는 제목으로 발간해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배포했다.  

이 팸플릿은 ▲ 제1부 '쿠릴(千島)열도, 하보마이스, 시코탄'(The Kurile Islands, the Habomais, and Shikotan. 1946년 11월 간행) ▲제2부 '류큐와 기타 난세이도서'(Ryukyu and Other Nansei Islands. 1947년 3월 간행) ▲제3부 '보닌제도, 볼캐노제도'(The Bonin Island Group, the Volcano Island Group. 1947년 3월 간행)▲제4부 '태평양 소도서, 일본해 소도서'(Minor Islands in the Pacific, Minor Islands in the Japan Sea. 1947년 6월 간행)로 구성돼 있다.  

정 교수는 "일본 외무성은 일본의 이익과 관련되는 섬들에 대해 그 중요도에 따라서 차례대로 설명 책자를 간행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독도는 물론 울릉도까지 자국 영토가 돼야 한다는 내용은 제4부에 들어 있다.  

이중 흔히 서양에는 '리앙쿠르암'이라고 알려진 독도는 물론이고 '다줄렛섬'(Dagelet Island)으로 알려진 울릉도에 대해서는 허위정보까지 곁들여 일본영토임을 주장하고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예컨대 울릉도에 대해 팸플릿은 " 한국정부(조선왕조)는 1400년대 이래로 오랫동안 이 섬에 대한 공도(空島) 정책을 고집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 섬이 한국정부에 의해 실질적으로 포기되자, 일본인 상당수가 이 섬에 무상출입을 계속했으며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국 원정은 이 지역에서 일본인 활동을 급증케 했고, 그후 약 1세기 동안 이 섬은 모든 면에서 일본 어업기지로 남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울릉도의 '산업'이라는 항목에서는 "주민 대부분은 기껏해야 수십 년 전에 입도한 사람들"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나아가 이 자료는 "다줄렛(Dagelet.울릉도)은 한국명칭이 있으나 리앙쿠르암(독도)는 한국이름이 없으며, 한국에서 제작된 지도에서 (독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패전 뒤 일본정부가 인근 도서지역에 대해 영토 야욕을 노골화한 것은 주일미정치고문이었던 윌리엄 시볼드(William J. Sebald)를 통해 미국정부를 향해 다방면에 걸친 로비를 펼치기 시작한 1949년 11월 이후라고 알려져 있다.  

시볼드는 이 무렵 독도가 1905년 일본정부에 의해 시네마켄(島根縣) 오키시마관할 다케시마로 명명된 이래 일본영토라는 주장을 줄기차게 펼쳤으며, 이런 논리가미국정부나 맥아더사령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병준 교수는 "1949년 이후에 전개된 양상을 볼 때 연합국, 특히 미국이 샌프란시스코회담을 준비하면서 일본영토를 확정하는 데 일본 외무성 자료를 기본적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면서 "특히 독도논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이들 팸플릿에 제시된 허위정부와 오도된 진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2005.2.27. 동아일보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 기업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