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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일본해'가 아니라 '조선해(Sea of Corea)'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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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일본해'가 아니라 '조선해(Sea of Corea)'다.

 조  창  용(칼럼니스트/21세기국가정책연구원장)


Ⅰ. 들어가는 말

 2002년말 제기된 '동해/일본해'의 병기(倂記)문제는 해상주권과 독도영유권 주장과도 무관하지 않는 탓에 한일간의 중요한 외교적 관심사였다. 이 문제는 하나의 해역을 두고 한국측이 '동해(東海, East Sea)'라 부르는 바다명칭을 일본측에서는 '일본해(日本海, Sea of Japan)'라 지칭하는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절충적인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한국정부는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일본해’ 명칭에 대해 이의를 신청한 바 있다. 이후 한국정부는 1994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북서태평양 환경보존회의(NOWPAP)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국제회의에서 줄곧 ‘일본해’ 명칭 부당성을 지적해 왔다. 그럴 때마다 한․일간은 첨예한  대립상을 보여왔다.

Ⅱ. 동해는 100여년간 '일본해'로 강점되었다.

 동해명칭문제가 본격적으로 한일간 현안문제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대략 지난해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하는『해양과 바다의 경계』제4판의 발간을 앞둔 시점이다. 이 책자는 1929년에 초판을 내고, 1937년, 1953년 각각 개정판을 낸 이래 줄곧 '동해'명칭을 '일본해'로 표기해 왔다. 문제는 이 책자가 해도(海圖) 제작의 기준이 되어, 세계 각국이 이를 근거로 바다명칭을 정한다는 점이다.
 그런 탓에 공식적으로는 80여년간 발행된 각국의 지도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를 해 왔다. 그러나 적어도 일제 강점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100여년간 동해는 일본에 의해 강점된 상태인 셈이다. 이와같은 현상이 빚은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에 근거한다. 다시말해 IHO가 창립된 1919년은 한국이 일본에 의한 식민지하였기 때문에 창립총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한국은 1957년에야 비로소 IHO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지만 이때는 이미 『해양과 바다의 경계』책자가 3판까지 발간된 뒤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본은 강제적인 개항을 하면서 ‘일본해’ 강점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 통상과 자유롭게 해안 측량을 하면서 '조선해'에서 합법적인 어로작업을 하게되고 1890년 최초의 어업협정인 조일통어장정(朝日通漁章程)을 맺어 '조선해'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1894년 청일전쟁을 전후해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본격적으로 개칭해 가는 데, 다음 두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미 일본해란 공칭을 가진 이상 그 해상주권은 우리가 점유한게 아니겠는가. 국권상 결코 겸연쩍어할 필요가 없으며 그 해상주권은 먼저 습관상 현재 어로를 하고 있는지 유무에 따라 실적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어선을 이 해상에서 종횡무진케하고 어업에 힘써 이익을 챙기는 것을 습관화하려고 그 실적을 천하공중에 인식시켜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훗날 이 해상의 주권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논쟁을 벌였을때 실적을 표명하는 논거가 약해지므로 국권상 불리하게 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이들 또한 깊이 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수산잡지, 세키자와, 일본의 어업은 어떠한가, 1893년)
 
"대만 및 팽호열도(澎湖列島)가 일본의 판도로 편입되자 세계 지도상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까지는 류쿠만(琉球灣)이 일본해의 끝이었으나 다시 지나해(支那海)를 빼앗아 그 영역을 넓혀 무려 1,000 방리(方里)에 이르는 팽호열도 주변까지 모두 일본해라 칭할 수 있게 됐다"『산음(山陰)신문』(1895년 4월 3일자)

 이와함께 일본은 1905년 원래 주인이 없는 땅이라는 억지논리로 독도를 강점했고 1910년 마침내 한국전역을 강점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해는 ‘일본해’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조선해협은 ‘쓰시마해협’으로 완전히 일본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Ⅲ. ‘동해’는 옛날부터 사용한 바다명칭이었다.

 한국정부는 2002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개정판 발간을 앞두고 IHO에 '동해' 단독표기가 아닌 '동해/일본해'의 병기를 요청했다. 동해가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 등 4개국이 인접한 해역이므로 관련국 중 어느 일방의 국호를 따라 바다명칭을 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IHO 이사회는 이를 수용하고, 회원국의 투표로 표기확정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은 막강한 로비와 외교력으로 병기를 저지시키고 '일본해' 단독표기로 회귀시키고 말았다.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낳은 결과였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상 동해명칭문제는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할 시점이다. 지명은 한번 확정하고 나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다. 차제에 동해명칭찾기는  'East Sea(동해)'냐 아니면 'Sea of Corea(조선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   로 접근해야한다. 이번 『해양과 바다의 경계』개정판이 50년 만에 내는 것으로 볼 때, 제5판은 앞으로 또 몇 십년이 흘러야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역사적인 본래 우리 명칭을 되찾기에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주장해온 '동해'는 아무리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해도 방위개념에 의한 바다명칭일 따름이다. 세계관이 전무한 시기 안방에 앉아서 동쪽 바다는 동해, 서쪽바다는 서해로 지칭한 방위개념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동해' 명칭을 가지고 세계를 상대로 설득하기도 궁색하고 논리도 부족하다. 일례로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Sea of Corea'를 의미하는 고지도를 잔뜩 소개하고서는 ‘동해’표기로 홍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에서 이를 말해준다. 담당 부처의 인식이 이 정도니 일본의 논리를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일본해호칭문제' 홍보란은 왜곡과 오류투성이 정보로 가득 채워져도 세계는 이를 믿고 신뢰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그 만큼 동해는 엄연한 우리 해역임에도 이에 따른 논리개발은 물론 홍보 소홀로 '일본해'의 강점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해'에 관한 역사적인 근거는 동해가 우리 명칭으로 오랜 시기부터 지배하였음을 확인시켜주는 자료로 그 의미는 충분하다. 
 역사적인 문헌기록으로 볼 때, '동해' 명칭은 『광개토왕릉비』(411년)를 비롯하여 『삼국사기』(1145년)와 『삼국유사』(1284년), 『고려사』(1452년), 『조선실록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과 같은 사료집에서 명칭이 수없이 나타난다. 그리고 현존하는 고지도에서도 동해표기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고지도에서 동해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1530년(중종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팔도총도(八道總圖)」이다.
 또「영남지도(嶺南地圖)」는 국가 군무를 총괄하는 비변사에서  1740년대 말에 편찬한 것으로, 이 지도에 포함된 경주지도에는 동해창(東海倉)을 기록하고 동쪽 바다를 ‘동해’라 표기했으며 울산지도에서도 동쪽 바다를 '동해'로 표기하였다. 그리고 18세기말 정조때 제작한 「아국총도(我國總圖)」는 바다 한가운데에 동해, 서해, 남해로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표기는 「팔도총도」가 육지면 끝자락에 동해, 서해, 남해로 표기한 것에 비해서는 진전된 모습이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 편찬한 고지도에는 ‘동해’라는 표기를 부지기수로 찾아 볼 수 있다.
 결국 동해는 방위 개념적인 바다명칭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기 이전부터 우리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Ⅳ. ‘동해’는 우리나라만 사용한 바다명칭이 아니다.

 그러나 ‘동해’가 우리의 바다 명칭으로 독자적인 지위를 누렸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많다. 방위개념의 명칭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바다명칭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대만 주변해역인 중국대륙의 동쪽바다를 ‘동해’로 표기했음을 여러 고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동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우리의 ‘동해’ 표기 사례로 자주 제시하고 있는「사해화이총도(四海華夷總圖)」에서 확인된다. 이지도는 1613년에 창황이 편찬한 것으로 ‘동해’ 명칭을 중국의 절강성 앞바다에 표기하고 있다. 또 1790년에 발간한 로버츠(Siear Robert's)의 한중지도에서 우리 동해를 'Sea of Corea'로, 중국 상해 앞바다, 즉 동지나해를 ‘동해(Eastern Ocean)'로, 서해를 ’황해(Yellow Sea)‘로 표기하여 바다명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1796년에 발간된 조지 니콜(George Nicol)의 세계지도는 동해를  'Sea of Corea'로, 역시 상해 앞바다를 ‘동해(Tung Hai)'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서해를 ’황해(Whang Hai, Yellow Sea)‘로 표기하여 각기의 바다명칭으로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다.
 이밖에 1837년 모냉(C.V.Monin)의 「중국 및 일본지도」는 상해 앞 바다를 ‘동해(Toung Hai)'로, 서해를  ’황해(Houang Hai)'로 표기하고 있고, 1896년 캠벨(Rev.W.Campbell)이 제작한「대만지도」 역시 상해 앞바다를 ‘Eastern Sea’로 서해를 ‘Yellow Sea’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대륙의 동쪽바다, 즉 상해 앞바다는 東海, Eastern Sea, Tung Hai(Toung Hai), Eastern Ocean등의 표기로 불렀다.
 그러나 많은 수의 서양 고지도가 Eastern Ocean로 표기했지만,대부분는 이 해역을 Mer Chine, Sea of China 등의 '중국해'로 인식하였다. 우리나라의 Sea of Corea와 같은 이치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보면, ‘동해’는 우리나라의 동쪽 바다만 지칭했던 것이 아니라 중국대륙의 동쪽 바다도 지칭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화된 인식이 전무한 시기에 자국의 인식기반위에서 방위개념의 바다명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동해는 서양 고지도에서 ‘East Sea’로 표기된 지도가 간혹 발견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지도에서 ‘동해’ 표기를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동해’인식은 우리가 고래(古來)로부터 우리의 바다로 인식했었다는 데 의미를 둘 일이지, 이 명칭이 국제적으로 통용됐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우리의 명칭으로 고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Ⅴ. 서양은 'Sea of Corea(조선해)' 인식이 주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동․서양고지도에서 동해는 Mer de Coree, Gulf of Corea, Chosun Sea, Zee van Korea, Sea of Corea, 朝鮮海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다. 이 시기는 신대륙 발견을 전후하여 지도제작이 활발했던 때였다. 자연 동해는 서양인의 주류적인 인식으로 'Sea of Corea'로 공인을 받고 있었다.
 [표1]에서 보는바와 같이 2003년에 공개한 미국 남가주대 소장 동아시아 지도 컬렉션 중 동해관련 표기가 있는 것은 모두 168점이다. 그중 '조선해'나 '한국만(Gulf of Korea)'이 129점이고, ‘일본해(Sea of Japan)‘는 11점이었다. ‘일본해’ 로 표기된 지도는 19세기부터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또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양 고지도에서도 동해  관련 표기지도가 압도적으로 많다[표2].
 영국 국립도서관 소장지도 총377점 가운데 1997년 조사한 케임브리지대학 소장지도와 중복되지 않은 새 자료 90점 중 ‘조선해’가 62점이고, 동해 관련 표기가 10점이다. 72점이 조선해나 동해관련 표기지도다.
이들 모두 18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조선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아 이시기 서양인식은 ‘조선해’가 주류였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캠브리지대학 도서관 소장 고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표3]. 총 59점의 지도 가운데 43점이      ‘조선해’표기이고, 3점이 병기하고 있음     을 볼 수 있다. 순수 ‘일본해’ 표기지도     는 6점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18~19세기 러시아에서 만들     어진 지도와 도서 19종 가운데 10종이     동해를 ‘동해’ 또는 ‘조선해’로 표기했      다.
   ‘일본해’로 쓴 것은 3종에 불과하고, 나     머지 6종은 바다 이름을 적지 않았거나    
‘조선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하고 있다. 이들 중 동해를 ‘조선해’나 ‘동해’로 표기한 지도는「한․중․일지도」(1737년)「아시아전도」(1793년)「지구평면도」(1793년)「한반도전도」(1818년)등이며,「세계전도」(1812년)와「동아시아해도」(19세기후반)등 3종은 특히 동해를 ‘조선만’으로 표시했다. 러시아 지도에서 일본해 명칭은 19세기 초 러시아 탐험가 이반 크루젠슈테른(Adam J. von Krusenstern)이 일본을 여행한 후 표기되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 지도와 문서에는 모두 ‘조선해’와 ‘동해’로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Ⅵ. 일본은 청일전쟁(1894) 이전까지는 ‘조선해' 였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는 한국관련 고지도가 약 4,000 종 소장되어 있다. 일본은 운요오호 사건을 일으킨 1875년과 1882년 임오군란, 1894년 동학혁명, 그리고 러일 전쟁기간인 1903부터 1906년 사이, 매년 6종에서 31종까지 집중적으로 한국 지도를 만들었다. 특히 1894년 청일전쟁 이후에는 한국 단독지도보다 한국일본청나라 3국을 한 장의 지도에 그린 고지도가 많다. 이는 일본이 한반도 강점과 대륙 진출을 위한 욕망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동해명칭은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거의 모두가 '조선해'로 표기되었으나, 청일전쟁을 거치면서 일제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본해’로 바꿔 나갔다. 일례로 지구만국방도(地球萬國方圖)는 일본의 저명한 지도 제작자인 무라카미(湯津香木金)가 만들 것으로, 1852년판과 1871년판이 현존하는 데, 이 두 지도는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일본열도 우측바다를 ‘대일본해(大日本海)’로 표기하였다. 후일 일본은 대일본해로 표기된 해역을 ‘태평양’으로 명명되면서 슬며시 조선해로 옮겨와 ‘일본서해’로 조선해와 병기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일본해’로 강점해 간다. 1882년에 제작된 다께다의 대일본조선팔도지나삼국전도(大日本朝鮮八道支那三國全圖)는 이 과정을 설명해 주는 지도라 하겠다.
다음의 [표4] 지도목록은 청일전쟁 전 시기에 편찬된 일본 지도로 동해 명칭이 ‘조선해’로 표기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목록에서 보듯,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보하

  [▼표4]

기 전인 1894년 이전에 편찬된 지도는 거의 모두가 동해바다명칭을 ‘조선해’로 표기했다. 특히 1883년에 체결된 한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 조약문 41조에는 일본 연안 항구 도시를 표기하면서 「'조선해'에 접한 곳(對朝鮮海面處)」이라고 했다. 이는 당시 양국의 조약문에서도 '조선해'를 공식적인 바다 이름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참고로 [그림12]와 [그림13]에서 보듯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중에서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한 대표적인 지도가 무라카미(湯津香木金)가 지구만국방도(地球萬國方圖)와 다께다가 제작한 대일본조선팔도지나삼국전도(大日本朝鮮八道支那三國全圖)이다.
 
 Ⅶ. 동해의 명칭은 ‘Sea of Corea(조선해)'다.

 지도는 제작할 당시 제작자의 세계관과 제작 당시의 사회적 인식이 반영되는 하나의 역사물이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지도는 조선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본 입장이다 보니까 자연 우리 땅의 동쪽 바다개념으로 '동해'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사료에서도 확인되듯, 오랜 시기 이전부터 우리의 바다 ‘동해’로 통용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발간한 지도에서도 ‘동해’로 표기한 지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한반도 인근의 국가들도 이를 인정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신대륙 개척이 활발하던 17~18세기는 세계인의 관점에서 제작된 지도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지도의 국제화를 의미하며 세계 각 국의 공인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모든 세계인의 지도에는 동해가 'Sea of Corea'로 표기하고 있다. 서양인의 주류적인 인식으로 ‘동해’보다는 ‘조선해’로 공인을 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남가주대에 소장된 지도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당시 조선 반도가 결코 소홀하게 취급되    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인공위성이나 비행기를 타고 조망한다면 한반도는 세계전체의 비해  작은 정도의 나라로 표기할 수 밖에 없지만, 당시는 한반도를 상당히 비중있는 규모로 취급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가 서양인의 세계관으로는 비중있는 나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결과다. 일본에 비해 결코 적지 않는 평가를 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인이 제작한 지도의 동해의 명칭은 'Sea of Corea(조선해)'로 인식되고 표기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성이 가미된 동해의 명칭은 단연 'Sea of Corea(조선해)'다. 
 지금까지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주장해 왔던 바다명칭을 ‘동해’로 하고 일본측에 ‘동해/일본해’ 병기를 제안했던 것은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한 궁여지책이었다. 일본이 지난 100여년 동안 한반도 강점과 대륙진출을 위해 집요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동해명칭을 ‘일본해’로 강점하고 있는 이상,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병기문제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우리의 최소한의 요구였던 병기문제마저도 원점으로 돌아간 이상, 우리는 본래의 역사적인 명칭찾기운동에 나서면서 국제사회에 새로운 이해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일제가 식민지하에서 자행된 ‘일본해’ 강점은 원인무효임을 선언해야하며, 동시에 동해의 명칭은 'Sea of Corea(조선해)'임을 천명해야한다. 더불어 'Sea of Corea'의 국내명칭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선해’로 하느냐, 아니면 현대적인 의미로 ‘한국해’로 하느냐의 문제는 좀더 논의를 거쳐야할 내부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일관되게 'Sea of Corea'다.
 일본이 동해 명칭문제를 ‘일본해’로 고집하면서 억지주장을 하는 이면에는 독도영유권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림1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인 실학자 임자평의 ‘삼국접양지도’(1785년경)에 독도를 우리나라의 영토로 명백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발행한 고지도에서 독도가 우리 땅임을 나타낸 많은 수의 지도가 발견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최근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도영유권문제는 동해명칭문제와 더불어 한일양국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외교현안문제다. 그런 만큼 일제에 의해 ‘일본해’로 강탈당한 동해명칭은 ‘동해/일본해’라는 병기차원의 명칭구걸이나 ‘동해’이름찾기 정도의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자국의 영토수호의지만 약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동해명칭문제는 'Sea of Corea(조선해)'로 일관되게 나서야 함은 물론, 이에 대한 체계적인 학문적 연구와 국제 홍보를 병행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상의 작업이야말로 여러 가지 이유로 훼손되어온 해상주권을 회복하는 길이고, 일본측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독도영유권 시비를 조기에 차단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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