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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둘러싼 바다 명칭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

                                          이종학(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소장)

서 론


  독도와 이를 둘러싼 바다에 대해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그동안 상반된 시각을 보여왔다. 1945년 이후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은 일본의 분쟁의도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걸어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하는 반면 일본은 장차 국제사회에서 독도문제가 거론될 상황에 대비하고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는 실효적 지배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이고 다양하며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마네현(島根縣) 고시 제40호」, 독도에 대한 어업면허와 광업권 허가 및 과세, 재판판례, 그리고 일본인의 독도로의 호적이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본고는 이들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과연 한국의 무대응 전략에 타당성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Ⅰ. 빼앗긴 우리의 바다 '朝鮮海’


1. '日本海’의 ‘竹島’로 바뀐 朝鮮海의 獨島

"…… 고기가 많은 것에 대하여 일본의 해안이나 많은 섬을 대부분 답사했으나 조선해 만큼 고기가 많은 것을 본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거의 거짓말 같이 수면으로부터 높이 뛰어올라 무리를 지어 고기가 밀고 오는 것을 보았다. …… 이것을 보더라도 조선해에 고기가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고래 같은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얼마든지 무진장 잡히는 것이 아니겠는가.……"(『대일본수산회보(大日本水産會報)』제301호, 1907년 9월)

위의 글은 불과 한 세기 전 일본의 기록이다. 사면이 드넓은 바다로 둘러 싸인 일본이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선해에 진출한 것은 이 바다가 일본의 바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어족을 가진 황금어장이었기 때문이다.
『大日本水産會報』(제153호 잡록, 1895년 3월)는 “일본이 조선에서 무역 외에 큰 이익을 보려면 어업 이외에는 없다”라고 단언하며 일본내에서 싸우지 말고 조선해로 나갈 것을 권장할 정도였다.
여기서 말하는 '朝鮮海'란 오늘날 '동해', 국제사회에선 '일본해'로 불리는 우리의 동쪽 바다를 가리킨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이 바다에 대해 대안(對岸)인 일본은 ‘조선해'로 표기해 왔다. 이에 비해 일본은 '조선해'를 '일본서해'로 불러왔다(사진참조).

우리의 동쪽바다가 조선해라는 일본측 기록은 지도뿐만 아니라 여러 자료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大日本朝鮮八道支那三國全圖(1882年 武田勝次郞 제작)

① 「朝日通商章程」- 1883년 6월 22일 조선(閔泳穆)과 일본(竹添遲郞)이 체결한 어업협정 조약문이다. 이 조약문 41조에는 일본 연안 항구 도시를 표기하였는데 여기서 "日本國 肥前·筑前·石見·長門은 朝鮮海에 접한 곳 (對朝鮮海面處)"이라고 했다. 뿐만아니라 바다 이름을 '東海'나 더욱이 '日本海'가 아닌 '朝鮮海'로 표기했다. 이는 당시 양국의 조약문에서도 '朝鮮海'를 공식적인 바다 이름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② 「日本水路誌」 제19호- 해군성 수로국이 발행한 이 「水路誌」에는 당시 해군 수로국장이었던 기모쓰키(肝付兼行)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이방인들이   오키(隱岐) 가까이 있는 바다를 일본해라 한다"라는 記錄이 있다. 이 말은 일본인들은 이 바다를 '朝鮮海'로 알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이를 일본해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기록이다.

일본인 스스로도 '일본해'란 호칭이 세계지도상에 정착한 것은 1815년 이후라고 인정하고 있다(가세노 요시오, 『日本海の謎』, 1975년)
현재 독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거나, 조사한 자료 가운데 1794년부터 1882년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24종의 지도를 살펴보면 1865년까지 한반도의 동쪽바다는 조선해로 표기돼 있다(일람표 참조). 또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지도에도 조선해와 대한해(大韓海)로 표기돼 있다.

‘朝鮮海’ 및 '大韓海’표기 지도 일람표


*일본에서 목록만 확인된 것임

최근세까지만 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던 조선해는 메이지(明治)유신을 계기로 일본이 제국주의 색채를 드러내면서부터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조선일본양해(朝鮮日本兩海)', '일본서해(日本西海)', 로 명칭이 바뀌다가 일본해로 굳어져버렸다.

'조선해'를 잃어버리게 된 단초는 1876년 일본에 의한 개항이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통해 통상과 자유로운 해안 측량을 확보하게 됐다. 나아가 1882년 7월 25일에는 「朝日通商章程」을 체결, '조선해'에서 합법적인 어로작업을 하게됐다. 또한 1890년 1월 9일에는 한일사이에 최초로 체결된 어업협정인 「朝日通漁章程」을 맺어 '조선해'를 완전히 장악했다.

1895년 4월 3일자 『산인(山陰)신문』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대승을 거두자, "대만 및 팽호열도(澎湖列島)가 일본의 판도로 편입되자 세계 지도상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까지는 류쿠만(琉球灣)이 일본해의 끝이었으나 다시 지나해(支那海)를 빼앗아 그 영역을 넓혀 무려 1,000 방리(方里)에 이르는 팽호열도 주변까지 모두 일본해라 칭할 수 있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한국강점이 조선해에 대한 침탈로부터 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일제는 1905년 '역사적으로 일본의 영토'라느니 '원래 주인이 없는 땅'이라느니 ‘측량을 해보니 일본본토와 더 가깝다는’억지논리를 내걸어 독도를 강점했고 1910년 마침내 한국전역을 강점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해는 일본해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조선해협은 쓰시마해협으로 완전히 그들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바다에 대한 집착은 역시 태평양 전쟁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 『東京日日新聞』(1942년 1월 9일자)에는 해군 보도부 과장 히라데(平出) 대좌가 일본 A-K방송에서 한 연설을 게재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제압하여 '新日本海'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호언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지 한달 후에 맞이한 일본 천황을 받드는 기념일에 한 연설이어서 그들의 야욕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불 수 있다. 만약 일본이 승리했다면 태평양, 인도양 등 세계의 모든 바다가 일본해로 변했을 것이다.

2차대전 패전이후에도 '조선해'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아 독도는 여전히 '일본해'에 떠있거나 존재하는 '다케시마(竹島)'로 되어있다.
필자가 입수한 일본 국회나 시마네현 의회의 회의록을 살펴보면 독도는 변함없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일본의 고유영토다. 대표적인 발언을 살펴보자,

……다케시마는 일본해에 떠있는 섬인데 우리들은 히비야공원 정도의 넓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다케시마가 당연히 일본의 영토라고 믿고 있으며 이곳에 한국이 실효지배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국민으로선 참을 수 없는 바, 이것이 솔직한 일본인의 감정일 것입니다.(……竹島というのは日本海に浮かんでいる島ですが, 私たちは, 日比谷公園ぐらいの廣さというふうに敎わっておりますが, これは當然日本の領土だと信じておりますし, ここに韓國が實效支配を强めている, 國民にとっては我慢がならないところ, これが率直な日本人の感情でありましょう-제145회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 富澤의원, 1999년 3월 3일)



……일본해에 존재하는 다케시마, 우리의 고유영토이며 우리들은 이를 보전해야한다고 국민은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日本海に存在する竹島, これは我が國の固有の領土ということで, 私どもはその保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國民はそう思っているわけであります-제141회 중의원 결산위원회, 穗積의원, 1997년 11월 12일)

그러나 일본은 일본해에도 만족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의 바다(日本の海)'로까지 부르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200해리, 중국 한국 어선을 일본의 바다로부터 쫓아내는 한편 일본은 제주도 해안이라든가, 조어도에서-여기는 일본이 영유하여 문제가 되는 곳이지만-또한 중국 영유가 되는 부분에서도 중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인 곳에서도 상당부분 조업하고 있다.(日本にとって二百海里, 中國, 韓國の漁船を日本の海から締め出す一方, また日本は,濟州島沖とか, あるいは魚釣島でも, これは日本の領有で問題なところですが, さらに中國の領有となる部分についても, 中國の二百海里, 排他的經濟水域となるところでもかなりの部分を操業している-제136회 중의원 농림수산위원회, 山田의원, 1996년 5월 15일)

이제 일본의 바다는 한국, 중국배에 유린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외국선박이 침범하여 조업하는 것을 단속하려면 현상체제로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今や日本の海は韓國, 中國船にじゅうりんをされておる,こういう實態であります. 今後, 二百海里の排他的經濟水域で外國船の侵犯操業を取り締まるとなれば, 現狀の體制では不可能ではないでしょうか-제136회 중의원 운수위원회 米田의원, 1996년 2월 23일)


조선해가 일본해로, 독도가 다케시마로 바뀌었는 데도 한국의 대응은 겨우 한다는 것이 '동해찾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지원을 받는 연구단체에서도 이같은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단체는 몇해전부터 「일본해」란 명칭을 「동해」로 바꾸기 위해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의장과 국제수로기구(IHO)사무총장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학자 등을 초청해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접한 언론의 보도는 위의 기대들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0년 1월 IHO가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倂記)방안을 IHO이사회에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일본측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잖은 국내 전문가들이 아직도 동해찾기에 매달리는 현실은 개탄스럽기만 하다. 다름아닌 오는 8월 개최되는 세계지리학 서울대회에서 국내지리학자들은 동해 지명을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다(관련기사,『월간조선』, 2000년 3월호).

2. 바다의 주권은 '朝鮮海'찾기부터

일본이 국제 기구의 권고마저도 거부하고 일본해를 고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미 100여년전 그들의 주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미 일본해란 공칭(公稱)을 가진 이상 그 해상주권은 우리가 점유한 게 아니겠는가. 국권상 결코 겸연쩍어 할 필요가 없으며 그 해상주권은 먼저 습관상 현재 어로를 하고 있는지 유무에 따라 실적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어선을 이 해상에서 종횡무진케 하고 어업에 힘써 이익을 챙기는 것을 습관화하고 그 실적을 천하공중(天下公衆)에 인식시켜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훗날 이 해상의 주권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논쟁을 벌였을 때 실적을 표명하는 논거가 약해지므로 국권상 불리하게 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이를 또한 깊이 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 수산잡지 關澤明淸, 일본해의 어업은 어떤가, 1893년)

결국 일본의 동해-일본해 병기요구 거부는 동해 이름찾기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겨 주었다. 차제에 동해 이름찾기는 무산된게 차라리 다행이다. 한번 확정되면 다시 바꾸기 어려운게 지명이다. 수천만년이 지나도 동해는 방위개념인 동해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바다의 이름이 일관된 역사성을 지닌 조선해란 진실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체계화하여 국제사회에서 조선해란 이름을 다시 찾는데 온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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