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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우리의 바다 '조선해'

잊혀진 우리의 바다 '조선해' 

                                                                         이종학(전 독도박물관장)

"…… 고기가 많은 것에 대하여 일본의 해안이나 많은 섬을 대부분 답사했으나 조선해만큼 고기가 많은 것을 본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거의 거짓말 같이 수면으로부터 높이 뛰어올라 무리를 지어 고기가 밀고 오는 것을 보았다. …… 이것을 보더라도 조선해에 고기가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고래 같은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얼마든지 무진장 잡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대일본수산회보』제301호, 1907년 9월)

위의 글은 불과 한 세기 전 일본의 기록이다. 사면이 드넓은 바다로 둘러 싸인 일본은 왜 일찍부터 조선해까지 진출했을까. 조선해는 일본의 바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어족을 가진 황금어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선해'란 오늘날 '동해'라고 불리는 우리의 동쪽 바다를 말한다. 19세기 중엽까지 대안인 일본은 물론 제3국까지 이 바다를 '조선해'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느새 '조선해'는 '일본해'로 바뀌었고 우리만이 동쪽바다를 방위개념인 '동해'라고 부르는 것이 지금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민족의 희박한 주권의식은 비단 바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역사의 한 장 한 장이 뼈 아픈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두만강 하구에 녹둔도란 섬이 있다. 1587년(선조 20)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지켜냈던 우리의 영토였다.

그러나 녹둔도는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1890년 청국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소위 '북경조약'에 따라 러시아 영토로 잘라져 나갔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상황을 전하는 1890년 7월 서울 발 『도쿄아사히 신문』과 『마이니치 신문』의 기록은 무기력한 우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녹둔도를 점령하고 해군의 화약고를 설치하는 등 각국의 신문보도로,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마치 동양의 일대 춘사가 발생한 것처럼 어수선한데 한심하고 딱한 것은 그 본가 당사국인 한국에서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신문을 보고서야 겨우 아는 것 같으니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다."

오늘날 우리 국민 가운데 '녹둔도'를 아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제 땅을 빼앗기고도 기억조차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영토의식의 부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해'로 뒤바뀐 우리의 '조선해'

1883년 6월 조선과 일본사이에 체결된 「조일통상장정」41조는 "히젠·지쿠젠 이와미 나가도는 조선해에 접한 곳"이라고 명기하고 있으며 대일본수산회보(제148호, 1894년 10월)에는 "…원래 조선해는 외국의 바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일본 스스로도 '일본해'란 호칭이 세계지도상에 정착한 것은 1815년 이후라고 하고 있으며 '일본해' 명칭도 러시아의 해군제독 크루젠 슈테른이 처음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가세노 요시오, 『日本海の?』)

현재 독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거나, 조사한 자료 가운데 1794년부터 1882년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26종의 지도를 살펴보면 1865년까지 우리의 동쪽바다는 조선해로 표기돼 있다. 또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지도에도 동쪽바다는 조선해와 대한해로 표기돼 있다.

최근세까지만 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던 조선해는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일본이 제국주의 색채를 드러내면서부터 점차 사라져 갔다. 대산 '일본서해', '조선일본양해'로 명칭이 바뀌다가 어느 순간 일본해로 굳어져 버렸다.

1895년 4월 3일 자 『산일 신문』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대승을 거두자 "대만 및 팽호열도가 일본의 판도로 편입되자 세계 지도상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까지는 류큐만이 일본해의 끝이었으나 다시 지나해를 빼앗아 그 영역을 넓혀 무려 1,000 방리에 이르는 팽호열도 주변까지 모두 일본해라 칭할 수 있게 됐다"고 하고 있다. 이렇듯 '일본해'란 이름에는 남의 영토를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속성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은 '조선해'에서 '일본해'로 나아간 반면 우리는 거꾸로 고유명칭인 '조선해'에서 방위개념인 '동해'로 퇴보했다.

제 목소리도 못내는 우리의 자화상

일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역사의 진실이 완전히 뒤바뀌었는 데도 고작 한다는 게 '동해' 이름 찾기다. 더구나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계속 고집하고 있고, 얼마전 해양수산부 장관조차 독도접안 시설준공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해' 이름찾기는 너무나 절실한 과제인데도 지금 우리는 오히려 뒷걸음만 치고 있다.

조선해를 굳이 '동해'로 부르자는 것은 숭례문, 홍인지문이란 이름을 없애도 남대문, 동대문으로 부르자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18세기말 실학자 위백규는 신편표제찬도환영지에서 "대명해, 태평해, 동홍해, 발로해, 파니해, 백서아해는 모두 동해이다."라고 했다. '동해'가 세계 각국에 있는 동쪽 바다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방위개념임을 설명한 기록이다. '일본해'를 고수하는 일본에 대해 우리는 방위개념으로 맞서는 것 자체만 봐도 우리의 소극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몇년전 교통부가 발행한 지도에 조선해가 그나마 '동해'도 아닌 '일본해'로 표기되는 오류가 발생했다. 이를 국민들이 지적하자 교통부는 "동해는 외국인이 잘 모르므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궁색한 해명을 했다. 만약 고유 명칭인 조선해를 고수했더라면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혼동때문에 과거 일본지도도 '조선동해안도'로 명기했으며 북한지도 또한 '조선동해', '조선서해', '조선남해'로 표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희승 저 국어사전의 '동해' 설명을 보자.
동해 : 한국 동쪽의 바다. 일본해.
일상 언어교육에서도 나타나는 주권의식의 부재는 우리의 장래를 더욱 불안케 한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일부 연구단체에서도 이같은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한 단체는 「일본해」란 명칭은 「동해」로 바꾸기 위해 유엔지명전문가회의 의장과 국제수로기구(IHO) 사무총장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학자 등을 초청해 국제학술세마나를 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접한 언론의 보도는 위의 기대들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지난 2000년 1월 IHO가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 방안을 IHO이사회에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일본측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본이 국제 기구의 권고마저도 거부하고 일본해를 고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미 100여전 그들의 주장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이미 일본해란 공칭을 가진 이상 그 해상주권은 우리가 점유한 게 아니겠는가. 국권상 결코 겸연쩍어 할 필요가 없으며 그 해상주권은 먼저 습관상 현재 어로를 하고 있는지 유무에 따라 실적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어선을 이 해상에서 종횡무진케 하고 어업에 힘써 이익을 챙기는 것을 습관화하고 그 실적을 천하공중에 인식시켜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훗날 이 해상의 주권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논쟁을 벌였을 때 실적을 표명하는 논거가 약해지므로 국권상 불리하게 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이를 또한 깊이 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수산잡지』, 세키자와, 「일본해의 어업은 어떠한가」, 1893년)

결국 일본의 '동해-일본해 병기' 요구 거부는 '동해' 이름 찾기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본보기였다.

차체에 '동해' 이름찾기는 무산된 게 차라리 다행이다. 한번 확정되면 다시 바꾸기 어려운게 지명이다. 수천만년이 지나도 동해는 동해다. 이제 우리는 이 바다의 이름이 일관된 역사성을 지닌 '조선해'란 진실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체계화하여 차분하게 국제사회에 조선해로 정착시키는 데 온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선해' 이름찾기 해군에게 달려있다

육지에 지명이 있듯 바다에도 이름이 있다. 일찍이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서구인이었다. '오대양', 육대주 모두 서구인이 붙인 이름이다.

특히 서구에서도 해양의 무한한 발전잠재성을 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미국이었다.

일찍이 미국의 해군사가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은 1890년 출간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660∼1783』에서 '해양력(Sea Power)'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해양력이란 '해역의 자유로운 사용을 확보하고 평시 전시 모두 자국의 상선 군함 등이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반대로 상대국의 자유로운 항행을 저지하는 능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마한은 해양력의 유무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정확히 예견, 해양진출을 역설했고 그의 탁견은 결국 정책에 반영돼 미국이 최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일본 또한 서구를 통해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른 아시아 제국보다 훨씬 먼저 바다에 관심을 돌렸다. 1902년 모리야마는 『바다의 일본』권두언에서 바다와 해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근세에 이르러 해권 장악은 단순히 문명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패권의 성패를 가르고 있다. 19세기 중기 이후 외교문제는 대부분 경제적인 원인에서 발생하고 있다. …… 따라서 해상의 이권을 농단하여 목표를 국제적 상업에 두는 나라는 패자가 될 수 있으며 열국을 풍미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추세다. …… 완전한 해권장악은 오로지 해운업의 융성으로써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예한 해군이 따라야 한다. 즉 안전한 상권은 자국의 국기가 휘날리는 곳에서 신장할 수 있다."

과거 바다는 몇몇 열강의 각축장이었지만 육지의 자원이 거의 고갈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가 해양자원과 해양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사이에 있는 '조선해'는 심각한 영토분쟁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양에서의 어업, 통상 등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또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1만 2천km의 해안선, 3,200개의 도서, 유엔해양법 하에서 배타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해역은 무려 육지면적의 4.5배에 이른다. 특히 무역 물품의 99.7%가 해상을 통해 운송되고 있으며 30만척 이상의 배가 국내 항구에 입·출항한다.

우리는 바다와 떨어질 수 없는 숙명적 해양국가이기에 '조선해'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에 맞설 수 있는 더욱 강한 해군이 요구된다.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몰아내고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이순신 장군의 강한 해군이었다.

'조선해' 이름 찾기는 잃어버린 해양주권을 다시 찾는 첫걸음이며 전국민이 심기일전하여 잃어버린 바다 '조선해'를 다시 찾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막강한 해군이 황금어장 '조선해'에서 우리어민들이 안전하게 조업할 수 있도록 든든히 지켜주고 나날이 변화하는 해양안보환경 속에서 해양주권을 지키는 첨병이 되기를 기대한다

울릉문화 2000.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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