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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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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어업협정, 그 치명적인 실수

일본의 독도 영토권 주장은 1951년 대일강화조약 뒤 잠잠하다 1995년부터 강화돼… 회피적 태도 일관한 한국 정부는 1999년 독도를 중간수역에 둬 분쟁의 불씨 제공

 일본이 독도 주변 한국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해 수로 탐사를 하겠다는 도전적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촉발된 ‘동해 사태’가 양국 간의 물리적 충돌이란 일촉즉발의 대결 국면에서 외교적 협상의 단계로 전환됐다. 일본은 수로 탐사를 중지했다. 한국도 해저 지명안 제출을 연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물리적 충돌을 피했다.


△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코너에 몰렸던 한국은 신 한-일 어업 협정을 맺으면서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아슈화할 명분을 준 결정적 실수를 했다. 일본은 손해 볼 게 없는 게입에서 계속 목소리를 높여나갈 것이다. (사진/ 연합)

 일본 제국주의의 발판

 한-일 간의 긴박한 충돌 국면을 모면한 이번 외교적 타결을 놓고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한-일 외무차관 직접회담에서 타결된 합의안은 양국 간의 긴박한 대결을 일시적으로 미봉한 것에 불과하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지금까지보다 더 대담하고 공격적인 일본의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동북아에서 중국과 한국을 제치고 먼저 근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대륙을 향해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실현하고자 할 때, 지리적으로 제일 먼저 만나는 타국의 육지 영토가 바로 울릉도와 이 섬, 즉 독도인 것이다. 1904년 초에 개시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전략적 거점을 탐색하던 일본이, 동해 가운데 있는 이 돌섬을 무단으로 은밀하게 영토로 편입한 것은 1905년 2월22일이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역사의 땅이다.

독도를 점령한 일본의 행위는 한 번도 국제법상으로 정당화된 적이 없다. 독도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한반도 전체에 대한 식민 통치권이 종결되고, 병탄된 한반도를 반환할 때 당연히 한국에 반환된 한국의 국토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 통치권을 적법한 권리라고 다시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일본의 독도 영토권 주장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협상 단계에서 시작됐다. 강화조약이란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에 전쟁 종결 이후의 법률관계를 확정하는 것이며, 통상 승전국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패전국에게 관철된다. 그러나 1950년 소련 공산세력이 한반도를 침략해 해양세력인 미국에 도전하고 있던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승전국인 미국과 패전국인 일본의 관계는 공산세력에 대항하는 실질적인 동맹자 관계로 변모돼 있었다. 이 평화조약의 협상 과정에서 승전국의 우방인 한국은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됐다. 반면 오히려 패전국인 일본이 강력한 협상의 주체로 부상했다. 일본은 이런 국제정치적 기회를 십분 활용해 평화조약의 초안 작성 과정에서 2차 대전의 패전으로 상실하게 된 점령지를 회복하고자 집요하게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가 독도였다. 일본은 미국을 완전히 설득했으나 연합군의 구성국이며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반대로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명기하려는 의도가 좌절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독도는 조약의 조문 표현상 다소 모호하게 취급됐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치르고 있던 한국 정부의 곤경을 이용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확정하려는 공격적인 노력을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조약의 발효 이후에도 계속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간의 기본관계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대일청구권 자금을 얻어내려는 한국 정부에 독도 문제를 양국 간의 영토적 문제로 조약에 규정해둘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며 한국과 일본 간에 독도에 관련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입장이 조문 표현상 법적으로 관철되었다.

 일본에 대등한 지위주는 독소조항

 1965년 이후 한-일 기본관계조약과 한-일 어업협정의 타결로 평화선을 넘어 한국 쪽 수역에서 어로를 보장받은 일본은 형식적으로만 독도 영유권 주장을 유지하는 선에서 실질적으로는 현상 유지 상태를 존중한다는 방침을 선택했다. 한국과 일본은 그 이후에 대체로 1996년까지 독도 문제에 관한 한, 회피적인 정책을 고수해온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일본 정부 고위층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예는 많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은 “기록을 남겨두자”는 선이었다.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노선을 지켜왔다. 냉전 아래의 국제정세, 사안의 민감성 등을 감안해 본격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1983년 8월 우리 쪽이 독도에 접근한 일본 어선에 경고사격을 했을 때도 외무장관 대신 정보문화국장의 담화로 항의 수준을 낮췄다.

그러나 일본은 1995년 하시모토 내각 출범 직후부터 ‘독도 문제’를 공식화할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본 외무성은 “그간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으나 동시에 “영유권 주장의 포기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아무리 비판을 받더라도 계속 주장한다”라고 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의 강도를 높여왔다.


△ 일본이 독도를 넘본 건 100년 전 러일전쟁 때부터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한동안 조용했으나 신군국주의 움직임이 부활한 1995년부터 다시 독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사진/ 사진 공동 취재단)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해 한국과 일본의 법률적 지위가 획기적으로 변경된 것은 1999년 ‘신 한-일 어업협정’의 체결부터다. 1996년부터 일본이 독도에 관한 공격적이고 구체적인 영토권 주장을 시작하고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종래의 회피적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독도 문제를 한-일 간의 영유권 분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구조를 제공하고, 영토권 주장에서 한국이 일본과 거의 대등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독소 조항을 포함하는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원의 공동관리가 이루어지는 중간수역 속에 한국과 일본의 영토권 주장이 대립되고 있는 독도를 위치시켰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간에 일촉즉발의 물리적 대결 국면 직전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동해 사태’를 치르고 나서도 우리는 아직도 이 협정이 독도 영유권 문제와는 분리되며 한국의 법적 입장을 해소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국제법상 기본적인 오류와 착각에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적인 논리의 일관성도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신 한-일 어업협정의 체결로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해 결정적으로 훼손된 한국의 법률적 지위를 고착시키고 국제사회에 이를 강조하기 위한 일본의 조치가 바로 이번에 제기된 한국 EEZ를 침범해 수로 측량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대담한 시도는 다름 아닌 한국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일 어업협정 종결시켜라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취한 ‘조용한 외교’는 사실상 한국 정부의 불성실하고 비겁한 자세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증거에 불과하다. 독도 문제가 국제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피하려면 ‘조용한 외교’, 즉 실질적으로 무대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독도 영유권 문제란 절대로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것으로 결국 국제재판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 시각’ 속에 들어 있는 명백하고 기초적인 논리상의 모순과 뿌리 깊은 패배주의에서 나온다.

늦었지만 늦은 대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그 국민을 설득해 부당한 영토권 주장을 완전히 포기시키고 말겠다는 결의와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이를 하지 않으면 독도 문제에 제3자가 개입할 것이다. 중재든 조정이든 아니면 국제재판이든 제3자가 개입하는 해결은 어떤 경우에나 우리의 정당한 영토주권을 우리 뜻같이 온전히 지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조용한 외교’의 망령에 최면당해 있는 동안 귀중한 시간이 너무 허비됐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파국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난 4월26일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문에 담긴 독도 문제에 관한 역사적 인식은 아주 정확하고, 국토 수호의 의지는 정당한 것이다. 정부 당국의 발표로는 한-일 양국의 EEZ 경계 획정을 위한 국장급 회담을 다음달부터 열기로 돼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경계 획정 문제에서 한국의 EEZ 범위를 울릉도로부터 기산하던 종래의 방법을 수정해 독도로부터 기산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얼핏 독도 문제에 관한 한국의 태도가 강경한 쪽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한국의 EEZ 범위를 울릉도로부터 기산하든 또는 독도로부터 기산하든 그것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문제를 일본과 확실히 타결한 이후의 문제이다. EEZ 경계 획정에 관한 일본의 입장은 양국의 EEZ 경계가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그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결국 EEZ 경계 획정을 위한 양국 간의 협상에서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철회되지 않는 한 어떠한 합의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가 주장하려는 EEZ 독도 기점의 문제와 관련해 유념해야 할 문제가 있다. EEZ 협상에서 적어도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이 지녔던 법리적 일관성의 결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하는 방도로는 1999년 신 한-일 어업협정을 그 조약 합의문에 따라 종결시키는 방법이 있다. 잘못된 협정을 종결시켜 폐기하는 경우에 오히려 양국 간의 어업분쟁을 재연시킬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협정 폐기 이후의 경과조치를 세밀하게 마련해놓는다면 지금까지 과장되게 강조돼온 것과 같은 충돌과 파국을 피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에 우리의 입장 알려야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노력은 참으로 늦었다. 그래도 여전히 진정 평화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추구해 한-일 양국의 관계를 올바른 자리에 돌려놓으려는 일본의 지성인, 전문가들에게, 우리의 결연한 국토 수호의 의지와 그 정당성을 성의껏 알리는 일에서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토 주권을 근거 없이 부정하고 침해하려는 일본 정부의 모든 공격적인 행위는, 시대착오적인 일본 정부의 국가우월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결단코 용서될 수 없는 것임을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알리는 일이다.

▣ 김영구 려해연구소장·전 한국해양대 국제법 교수

2006.05.03(수) 제608호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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