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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2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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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외교에 자주성이 있는가?

- 새로운 한·일 어협협정 체결과 독도 영유권 문제를 중심으로 -

조 하 만 (정치평론가)


독도 문제 때문에 체결한 한·일 어협협정

1998년 10월 28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있었던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은 지난 9월 25일에 타결된 새로운 한·일 어협협정 합의안을 보았다. 한국 정부는 이 합의안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그나마 비공개로 본 것인데, 놀라운 사실은 그 합의안에 중간수역을 나타내는 좌표만 표기되어 있을 뿐 독도와 관련된 어떠한 표시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합의안 내용을 공개하여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국정감사에서 해당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니까 하는 수 없이 비공개로 슬쩍 보여준 까닭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국회의원들은 한국 협상대표단이 일본의 반대 때문에 섬이름을 독도라고 표기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일본 사람들이 우기고 있는 '다케시마(竹島)'라고 표기할 수도 없어서 결국 두 이름을 모두 표기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독도의 위치를 점과 좌표로만 표시했으리라고 막연하게 상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협정 합의안을 들여다보니, 섬이름은 고사하고 위치표시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업지도에서는 독도가 갑자기 증발하고 말았는가, 아니면 바다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는가? 아니면, 어협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두 나라 대표들이 하찮은 바위섬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협상과정에서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독도를 어느 수역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두 나라 협상단은 각기 어업문제보다 독도와 관련된 정치적 의미에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는 게 언론의 평이다. 한국의 한 일간지가 보도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우선 어업협상 자체가 독도문제 때문에 시작됐다. 양국이 96년 비준한 유엔 해양법 협약이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원칙에 맞추기 위해 시작됐던 것이다. 그러나 EEZ 협상을 위해서는 「독도를 기점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 있다면 누구 땅이냐」를 두고 양국이 대립할 수밖에 없고, 이를 피하기 위해 양국이 택한 「우회로」가 어업협정인 것이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독도 문제를 놓고 두 나라 대표가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언론이 표현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신용하 교수의 표현대로, "독도 영유권 때문에 중간수역이 설정됐다"고 했을 때, 우리는 독도 문제를 놓고 두 나라 대표 사이에서는 처음부터 의견이 충돌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면서 동해 전체를 지배해 보려고 획책하는 '탐욕스런 해양대국'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면서 자꾸 자기의 영토라고 우기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애도 알만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협정 합의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일본의 협상대표는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궤변을 강하게 들고 나왔을 것이 뻔하다. 그럴 때 한국쪽 협상대표는 그 궤변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독도라는 섬이름을 적어넣어 영유권을 분명하게 밝혔어야 했다. 국제협약에서 자국 영토의 영유권을 확인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일 어협협정은 주권국가들 사이에 맺어지는 협정인데, 그러한 협정에서 한국의 영토를 전혀 표시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독도 문제 때문에 강대국 일본과 싸움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독도를 협상범위에서 없애버리자는 항복 행위였다고 해야 할까? 이러한 외교적 항복은 우리나라의 영토인 독도의 영유권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나 다를 게 없다.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스스로 훼손하면, 이득을 보는 쪽은 누구일까? 앞으로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에 관한 협상이 시작된다면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면서 독도를 기준점으로 하여 수역을 정하겠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도 1998년 11월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장에 나온 홍순영 외교부 장관은 "독도는 '우연히' 중간수역에 위치하게 됐지만 우리 영토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고 답변했다. 독도가 우연히 중간수역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1998년 11월 9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 나온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은 "독도를 자꾸 언급하면 분쟁화하고, 우리 영토로 주장하면 어업협정이 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독도 문제를 회피해야 한다는 말이고, 어업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 독도 영유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인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국정감사에 대한 답변이라고 내놓은 사람들이 나라일을 맡아보는 장관 자리에 앉아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유엔 해양법 협약 제121조 3항에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섬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갖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외교통상부는 "정부는 독도를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을 지니지 않는 암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 의하면, 독도는 무인도이므로 유엔 해양법 협약에 의하여 배타적 경제전관수역 2백해리를 확보하는 기준점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엔 해양법 협약을 한 치도 틀림없이 지키려는 외교통상부의 준법정신은 갸륵하기 그지없다. 김대중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보편적 세계주의'를 주창한다더니, 국익 추구 같은 것은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오해 받을 수 있으므로 영토와 국경을 초월하는 '세계주의 정부'로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 정부의 이러한 '선진적인 세계주의 정책'과는 다르게 중국은 무인도를 기점으로 경계선을 긋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도쿄만(東京灣) 남쪽 태평양에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인공섬도 영해 기준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태도를 보면 기가 막힌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자국 영토라고 보고 독도가 배타적 경제전관수역까지 갖는다고 선언했으며, 독도 주변 바다에서 일본 국내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조치해놓았다는 점이다.

이제 한·일 어업협정이 발효되면 일본어민은 중간수역이면서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공동관리수역인 독도 앞바다에서 일본 국내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마음대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된다. 한국 정부는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근거를 내세워 독도를 중심으로 한 12해리가 한국 영해라고 주장해왔지만, 일본은 한국의 독도 영해 주장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어업협정 체결로 한국이 영해로 주장해왔던 바다마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수역에 포함되었으므로 일본 사람들 앞에서는 더 이상 독도 영해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일본어민이 독도의 영해를 공동관리수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도 영해를 마구 침범하고 독도 연안에 바짝 다가와도 한국 정부는 이번 협정이 발효된 뒤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이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밖에 없게 된 것이다.

1998년 11월 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이 협정문안에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밝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추궁하자, 홍순영 외교부장관은 "어업협정은 영유권과는 관계가 없는 배타적 경제수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우리 영토인 독도를 협정에 명시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고 한다. 대일협상에서 한국쪽 협상대표인 윤병세 아시아·태평양 심의관은 "어업협정은 양국 영해를 제외한 해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우리 영토인 독도는 이번 협상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보충 설명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야당의원과 외교부 장관 사이에 오고간 말을 옮겨보자.


야당의원 - "우리 영토라고 왜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나?"

외교부장관 - "그렇게 되면 영토권 분쟁을 부각시키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다."

야당의원 - "왜 독도를 기점으로 수역을 선포하지 않았나?"

외교부장관 - "무인도는 기점으로 삼을 수 없다."

야당의원 - "일본은 더 작은 돌섬도 기점으로 삼고 있다."

외교부장관 -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신용하 교수가 지적한대로, "독도는 이제 울릉도의 부속도서가 아니라 공동관리수역 안의 주권이 명시되지 않은 섬"으로 되고 말았다. 이상면 교수는 "독도 주변 수역을 공유한다는 것은 독도가 발양해내는 광대한 바다를 공유한다는 말이며, 곧 독도 그 자체를 공유한다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한국해양대 김영구 사회과학소장은 "왜 독도문제를 회피하는가? 당연히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여러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서 회피한 일관된 사실이 입증되면 그 자체가 결국은 한국의 영유권을 부정할 수 있는 유력한 국제법상의 조건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과연 독도 영유권을 지킬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어업협정 타결을 계기로 독도 문제에 관하여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적 판단'을 다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를 때, 맨처음으로 마음에 걸리는 사실은 독도에 적은 수의 주민이 살도록 허가하여 유인도로 만들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을텐데 왜 유인도로 만들지 않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주민이 살게 되면 독도의 자연환경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자연친화적인 생활양식을 갖춘 특수 마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독도의 서쪽섬에 새물이 있고 지금 주민 두 사람과 경비대원 41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발표되기도 했다. 문제는 독도 영유권을 지키려는 정부 차원의 의지가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독도에 주민을 살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한국 국민이 자국 영토인 독도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조차 없게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은 독도에 갈 때마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른바 '입도(入島) 허가제'다. 한국 정부는 자국민이 왜 독도에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을까? 자유로운 방문이 독도의 자연환경을 해칠까봐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독도가 무인도로 남아 있어서 일본의 야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한국 정부가 독도를 유인도라고 공식 선포하는 일은 물론 독도 방문조차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어떤 국회의원은 "1992년 이후 일본을 의식한 외교적 배려 때문에 46건의 독도 입도 신청이 불허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한국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과연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

그 다음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독도 경비가 일본의 경비에 비해서 허술하다는 사실이다. 한국 동해 해경이 보유하고 있는 함정은 모두 10척인데 이 가운데 독도에 가서 경비를 할 수 있는 함정은 겨우 세 척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동해를 관할하는 일본 해상보안청 8관구 순시선은 모두 27척이며 이 가운데 8척이 독도에 출동할 수 있다. 동해 해경 함정은 한 척당 5백-1천t급인데 비해, 일본 순시선은 한 척당 1천-1천5백t으로 두 배나 크다. 동해 해경은 경비 함정 한 척을 독도에 배치하고 있는데, 일본 순시선은 한 주일에 3-4차례씩 독도 앞바다에 나타나고 있다.

독도에는 1백72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들인 접안시설이 설치되었고, 1997년 8-11월 사이에 독도의 서쪽섬에 이층건물인 어민 대피소가 세워졌으며, 1997년 12월에 착공한 독도 유인등대 공사는 1998년 12월에 끝나게 된다고 한다. 지난 1954년에 세운 무인등대 자리에 세우는 유인등대는 철근 콘크리트 2층 건물 위에 11m 높이 등탑이 올라가게 된다. 이 등대에는 직원 6명이 파견되어 3명이 한 개조가 되어 한 달씩 교대로 일하게 된다. 이 유인등대는 독도와 울릉도 사이의 바다 47.5해리(87.8km) 가운데 현재 두 섬의 등대빛이 보이지 않는 9.7해리(18km) 구간에 빛을 비추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접안시설, 어민숙소, 유인등대가 영유권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떳떳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수호하는 정부의 자주적 의지다.


'중간수역'의 법적 성격은 무엇인가?

동해 해도를 다시 들여다보자. 뭍에서 울릉도 사이의 거리는 약 70해리(129.5km)며, 독도는 울릉도에서 47.5해리(87.8km)가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 어업협정에서 만일 영해를 뭍에서 35해리까지 이르는 바다라고 합의했다면, 한국 육지↔울릉도 70해리(35해리+35해리), 그리고 울릉도↔독도(35해리+12해리)가 연결된다. 울릉도와 독도 사이가 47.5해리이므로 0.5해리(9백25m)가 모자라게 되지만, 0.5해리라는 좁은 바다에서는 사실상 다른 나라 배가 마음대로 지나다닐 수 없다. 따라서 영해를 35해리로 잡았을 경우, 독도는 울릉도 영해를 통하여 한반도에 영해로 연결되는 영해 면적 확장 효과를 나타낸다. 그래서 한국은 일찍이 독도를 울릉도에 딸린 섬으로 인정해왔다.

그러나 이번 어업협정에서 한국은 영해 35해리 주장을 버리고 일본이 내놓은 영해 34해리 주장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1.5해리(2천7백50m)에 이르는 커다란 바다가 '중간수역'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나게 되었고, 한반도 연안의 영해와 울릉도 연안의 영해 사이에도 2해리의 거리가 생겨나 영해로 연결되는 길이 없어졌다. 이로써 독도를 울릉도에서 따로 떼어 아직 영토권이 확정되지 않은 잠정수역 안으로 빼앗기고 만 결과를 낳고 말았다.

신용하 교수에 의하면, 일본은 이번 협상과정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전제하고, 자국 영토인 독도를 기준점으로 삼고 일본의 배타적 경제전관수역(EEZ)과 영해의 경계선을 울릉도와 독도의 중간선으로 설정하겠다고 한국을 위협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 협상단은 독도는 무인도이므로 유인도인 울릉도를 한국의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의 기준점으로 잡아 울릉도와 일본의 오키섬(隱岐島)의 중간선을 경계선으로 하자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의 중간선과 울릉도와 오키섬의 중간선이 중첩되는 수역이니 이를 중간수역으로 하자고 제안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따져 물어야 할 것은 '중간수역'의 법적 성격이다. '중간수역'은 공해(公海)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 정부가 '중간수역'으로 부르게 된 바다는 공해가 아니다. 그 바다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수역이다. 이번에 어업협정을 타결한 뒤에 일본 외무성은 자기 나라 기자들에게 설명회를 열고 "중간수역은 공동관리수역으로 하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두 나라가 공동관리한다는 말은 일본의 국내법도 영향을 미치면서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외교통상부는 중간수역이 어느 나라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공해라는 한심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만일 한국 정부의 해석대로 중간수역을 공해라고 한다면, 공해인 중간수역에서 어획량이나 바다관리 문제를 일본과 협상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중간수역에 대한 일본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일본은 중간수역이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잠정적으로 관리하는 잠정적 공동관리수역이라고 보고 있다. 언론에 의하면, '중간수역'이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만 쓰이고 있으며, 일본은 '독도 주변 잠정수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은 "독도를 둘러싼 수역은 단순히 일본과 한국의 중간에 있는 수역일 뿐"이라는 뜻으로 중간수역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독도를 둘러싼 수역은 소유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잠정적인 수역"이라는 뜻으로 잠정수역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잠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말은 앞으로 일본이 자국에게 유리한 조건이 생기면 그 공동관리수역을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을 확정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1997년 10월에 일본의 요구에 밀려 잠정합의수역 개념을 동해에 적용하기로 하였다.

한국해양대 김영구 사회과학연구소장은 "동중국해(東中國海)에서 일본과 중국이 합의한 잠정합의수역의 개념을 동해에 그대로 적용키로 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일본과 중국은 영유권 분쟁이 있는 첨각열도/조어대(尖閣列島/釣魚臺)를 북위 27도선으로 제외시켰던 것에 반해 한국과 일본은 울릉도와 오키섬 사이의 중간선을 잠정적인 양국의 배타적 경제전관수역 경계로 정했어야 하며, "독도 주변 수역은 일정범위-예컨대 거안 24해리의 장방형 또는 원형 수역-의 위요지(圍繞地:Enclave)로 구획하여 중간수역에서 제외시켰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침탈 야욕은 여전하다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우리는 일본이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고 있는 야욕을 본다. 일본은 앞으로 한국과 협상을 벌여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을 다시 확정할 때, 일본의 배타적 경제전관수역 안에 독도를 포함시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빼앗아가려고 획책할 가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1996년도에 나온 일본의 교과서에는 놀랍게도 일본의 국경선이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그어져 있다. 일본은 자기 나라 학생들에게 독도가 자기들의 땅 '다케시마'라고 가르치고 있다. 최근 이종학 독도박물관장이 일본의 신문, 잡지 등에 독도와 관련하여 실린 70여 편의 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일본의 지식인들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밝히면서, 그 가운데서 아래의 두 사례를 지적하였다. 일본 외무성 고문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가 1996년 4월 『쇼군』이라는 잡지에 "다케시마 문제는 한마디로 영토문제다. 한국의 반일감정이나 역사인식의 차이, 어업권에 관한 이해관계 등은 2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양국 간에서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썼다고 한다. 쓰쿠바대학 교수 나카가와 야스히로(中川八洋)는 1996년 9월 『산사라』에 "다케시마를 한국의 뜻대로 불법점거한 채 놓아둔다는 것은 일본의 국가로서의 위신과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다. 일본으로서는 F15기 한 대의 미사일 공격만으로도 즉각 분쇄할 수 있다"고 적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은 독도를 울릉도에서 분리시켜 빼앗으려고 집요하게 달라붙고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이 한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서 인정 받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어선들을 독도 앞바다를 침범하게 하고, 어업분쟁이 생기면 이를 빌미로 해상자위대를 동원하여 독도 앞바다를 강제로 점령하려는 장기 목표를 세워두고 있으며, 이를 하나씩 행동에 옮기고 있다.

우리는 독도에 한국 경비대원들이 있다는데 설마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독도를 점령하게 될까 하는 안이한 생각에 젖어서는 안된다. 일본은 한국을 자기들 발 아래에 있는 나라 정도로 깔보고 있다. 1997년 6월 8일부터 한 달 사이에 일본 해양청 순시선은 한국 어선 다섯척을 잇따라 자기들 마음대로 납치했다. 지금 독도의 동쪽섬에는 한국 경비대원 40여명이 머물고 있지만, 일본은 그들이 '다케시마'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언젠가는 독도에서 붸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어민의 동해 조업권은 어디로

이번에 어업협정이 타결되어 한국 어민들은 동해 조업권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한국 어민들은 그동안 일본 연안 12해리 밖에서 자유롭게 고기를 잡아왔는데 이제부터는 35해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또한 앞으로 3년 동안 조업손실로 1천3백90억원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한국 어민들은 그동안 일본 연안에서 해마다 22만t의 물고기를 잡아왔다. 그 가운데서 명태는 홋카이도 부근에서 많이 잡히는데 그동안 해마다 5만7천t(약 3백65억원 어치)을 잡던 것을 이제부터는 1만5천t밖에 잡지 못하게 되었다. 큰게는 오키섬 주변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데 그동안 해마다 8백60t(약 1백20억원 어치)을 잡던 것을 이제는 4백30t밖에 잡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2000년부터는 명태와 큰게를 전혀 잡지 못하게 되고, 꽁치, 장어, 고등어 어획량도 크게 줄어들게 되고 말았다.

한국은 원래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을 동경 137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1997년 말 동경 136도로 할 수 있다고 물러섰다. 일본은 그제서야 협상에 응해주었다. 한국이 동경 136도를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할 경우 오징어 어장으로 알려진 대화퇴(大和堆)를 확보할 수 있으며, 독도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배타적 경제전관수역 2백해리가 되는 선이 동경 136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7년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외무성 정무차관 고무라 마사히코를 서울에 두 차례나 보내 협상을 벌였다. 이때 일본은 한국이 내놓은 중간수역 동쪽 한계선을 136도로 하자는 안과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의 폭을 34해리로 하자는 안을 받아들이는 척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4일이 지난 12월 29일에 있었던 외무장관 회담에서 일본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중간수역 동쪽 한계선을 135도로, 배타적 경제전관수역의 폭을 35해리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은 만일 한국이 자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존의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더니 1998년 1월 23일 일본은 기존의 한·일 어업협정을 깨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직선기선 영해를 일방적으로 확대하여 선포했다. 그리고 한국 어선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하였다. 일본은 한국이 경제파탄으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에 편입되고 있었던 때를 노려,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협상을 뒤엎어버리고 기존의 어업협정도 깨버렀다. 이에 대해 이상면 교수는 "올해초 일본은 거의 타결단계에 이르렀던 한일 어업 협상을 갑자기 백지화하고 기존의 한일어업 협정마저 파기함으로써, IMF사태를 당하여 실의에 차있던 우리의 허를 찔렀었다"고 묘사했다. 1996년 5월부터 2년 4개월을 끌어오던 한·일 어업협정은 한국이 경제파탄으로 쓰러지고 있는 틈을 노린 일본의 농간에 의해서 매국적인 내용으로 타결되고 말았다. 1998년 11월 9일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은 이번에 체결된 어업협정을 매국적 협상으로 규정했다.


불행한 역사의 산물은 걷어내야 한다

우리는 불과 한 세기도 안되는 가까운 과거에 두 나라의 '공동관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영해를 빼앗겼던 비참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무능과 부패로 무너지고 있었던 조선왕조 말기에 일제 침략자들은 조선의 영해 3리 안에까지 들어가서 고기를 마음대로 잡아가도록 하는 약탈적인 '어업협정'을 강압으로 체결했다. 이로써 일제 침략자들은 조선의 영해를 일본과 조선이 공동관리하는 이른바 중간수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약탈적인 '어업협정'이 발효되자 일제 침략자들은 조선의 영해에서 우리 어민들을 붸아내고 일본 어민들을 들여보냈다. 일제 침략자들은 하루 아침에 자기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빼앗긴 조선 어민들 가운데 저항하는 사람은 무참히 죽이고 바닷가 마을에 몰려와 조선의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조선왕조의 주권은 중간수역을 설정한 어업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강탈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나라의 운명과 백성의 삶을 외래 침략자들에게 빼앗기고 식민지 노예가 되는 첫걸음이었다. 나라의 자주성이 없으면 제 나라 바다를 지키지 못하고, 제 나라 바다를 빼앗기는 나라는 제 나라땅도 지키지 못한다. 제 나라 바다를 빼앗긴 굴욕과 절망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가?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운 미국에게 경제주권을 고스란히 빼앗기더니, 이제는 독도와 동해 바다는 어업협정을 앞세운 일본에게 빼앗긴 꼴이 아닌가? 지금 대일 외교의 자주성은 있는가? 지금 일본의 극우세력은 태평양전쟁이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한 아시아의 민족해방전쟁이었다고 하면서 "한일합방은 한국 최대 정당인 일진회가 원했고 세계가 인정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들의 주장이 실린 책들이 수십만부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일 협상에 나선 한국 정부가 일본의 눈치나 슬슬 보면서 독도 문제에 관해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는 것은 굴종과 치욕이 아닐 수 없다.

대일 외교에서 한국 정부가 자주성을 지키지 못한 까닭은 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두 나라 사이의 경제관계에서 대일 예속성이 줄곧 심화되어 왔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한국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6월부터 1996년 6월말까지 31년 동안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 총액은 1천1백72억2천4백만달러로, 같은 기간 한국의 총 무역수지 적자액 6백40억7천7백만달러의 약 두 배나 된다. 한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은 1975년까지만 해도 해마다 총 무역수지 적자액에 못 미쳤으나 1981년부터 전체 무역수지 적자액보다 커지기 시작하여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1978년에 도입되어 대일 무역적자 폭을 줄이는 데 이바지했던 수입처 다변화제도가 완전히 없어지는 1999년 4월 이후에는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한국의 대일 무역종속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 무역진흥회(JETRO) 이사장 하타케야마 노보루에게 한국 일간지의 한 기자가 두 나라의 무역 불균형의 원인과 해소대책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의 자본재, 부품산업의 발전이 불충분한데 원인이 있다. 한국의 수출이 늘면 늘수록 일본으로부터 부품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측에도 농산물 수입규제 등 문제가 있다. 하지만 농산물 분야는 인구 감소 등으로 수입에 한계가 있다.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역시 한국이 공업제품을 일본에 팔 수 있는 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내년 4월부터 수입 다변화품목을 해제한다. 이제부터라도 규제를 철폐해 일본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던 1998년 10월 초 일본은 한국에게 일본수출입은행 융자라는 명목으로 30억달러를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이 가운데서 7억달러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일본제 기계설비와 부품을 수입하거나 석유, 천연가스를 수입할 때 써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는 이른바 전대차관(轉貸借款)이다. 전대차관이란 한국 기업들이 일본에서 원자재나 시설재를 수입해 들여올 때 빌려주는 돈인데, 한국은 1998년 5월에도 일본수출입은행에서 전대차관 10억달러를 들여온 바있다. 그렇지만 이 차관 가운데서 한국 기업이 대출해간 금액은 절반도 안되는 4억7천2백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일본은 잔뜩 돈이 궁한 위기에 빠진 한국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이자대로 받아가면서 그 빌려준 돈으로 일본 상품을 사가게 만들어 놓는 교묘한 술책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일 무역종속은 이렇게 하여 전면화,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 무역부문에서 뿐만아니라 기술부문에서도 일본에게 종속되어 있다. 한국이 일본의 기술을 사용하여 생기는 기술 도입료는 1995년에 6억9천4백60만달러나 되었고, 1996년에는 8억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위에서 나온 하타케야마 노보루는 같은 대담자리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에 인색하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기술이전은 투자와 병행되어야 할 문제다. 기술만 달라는 것은 시장경제 하에서 말이 안된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술이 이전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심각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은 금융부문에서도 대일 종속이 심화되어왔다. 일본은 1997년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외환사정이 매우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국의 금융기관에 빌려주었던 단기채무 1백70억달러 가운데 80억달러를 10월부터 갑자기 걷어갔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서 하시모토 당시 일본 총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은 1999년 3월까지 일본에서 빌린 돈 48억달러를 갚아야 한다. 일본은 1998년초 한국에 빌려준 단기대출금 2백40억달러를 장기채권으로 바꾸어 주었는데, 이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1년짜리 채권이 1999년 3월에 만기가 돌아온다. 최근 금융불안과 내수위축으로 시달리고 있는 일본 금융기관들은 만기가 돌아온 대출금은 모조리 돌려받고 있어서 만기연장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은 이처럼 경제적으로 일본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대일 외교에서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타결된 어업협정은 굴욕적인 대일 외교가 낳은 매국협정이었다. 형편이 이 지경인데도 한국 정부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되어온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으로 된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1998년 10월 29일 도쿄에서 열린 제15차 한·일 재계회의에서는 아시아 금융안정화를 위해 '엔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한·일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하자고 합의하였다. 일본은 이른바 '새로운 미야자와 구상(New Miyazaya Plan)'을 발판으로 삼아 장차 아시아 통화기금(AMF)을 창설하고 그 여세를 몰아 엔화를 아시아 결제통화(決濟通貨)로 만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이 자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진영경제화(bloc-economization)하고 아시아의 패권적 지위를 노리는 게 아닐까 하고 경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반대에 걸려 눈치를 보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일본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엔을 아시아 결제통화로 사용하자고 일본에게 제안하고, 일본이 요구한 이른바 '한·일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창설하는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대학생 수준의 일본 경제와 초등학생 수준의 한국 경제를 전략적 산업협력과 자유경제무역지대라는 틀 안에 완전히 묶어놓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강대국이 주변 약소국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협력'이니 '공영'이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 속여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 경제가 지난 33년동안 대일 종속이 심화되는 악순환 과정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으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반도가 둘로 갈라져 전민족적인 역량이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에 자주적 통일국가를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 일본 같은 외세의 간섭과 지배를 받고 있으며,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번 어업협정에서 한국의 자주권과 이권이 크게 손상된 것도 따지고 보면 분단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이 민족이 자주적 통일국가를 세우지 못하는 한, 한국은 언제까지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이어갈는지 모른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길은 조국통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자. 우선 매국적인 어업협정 체결의 모순과 폐해를 한국 민중에게 정확히 알리고 반대여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한·일 어업협정 문제는 동해 조업권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이고, 이러한 문제는 대일 외교의 자주성 문제이다. 우리는 이번 협정의 부당성과 매국성을 폭로하고 재협상을 하도록 요구하는 대중운동을 벌여야 한다. 대중운동은 국회가 매국적인 어업협정을 비준하지 못하도록 사회여론을 불러일으키고 한국 정부에게 매국적인 어업협정을 백지로 돌리고 중간수역을 없애라고 촉구해야 한다.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청산하고 자주외교를 추진하는 길은 한국 민중의 자주정신과 단결력에 달려있다. 불행한 역사와 그 산물을 민중의 자주정신과 단결력으로 말끔히 걷어낼 때, 새로운 세기는 한반도의 장래 운명에 희망과 번영의 세기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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