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본부

지난해 12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싱가포르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는 페드라 브랑카(Pedra Branca)섬 일대 영유권을 말레이시아가 갖는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 판결로 양국의 영토분쟁은 자칫 전쟁으로 비화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지역은 브루나이섬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페드라 브랑카섬 일대로 시파단(Sipadan)·리티간(Litigan) 등 2개 섬이 포함된 도서지역이다. 본래 이 지역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3국간 영토분쟁으로 시끄러웠던 곳이다. 페드라 브랑카섬에 대해서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에, 시파단·리티간 등 2개 섬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사이에 오랜 영유권 분쟁으로 갈등을 겪어왔다. 결국 3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고 재판소는 말레이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싱가포르가 이 지역을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실질적으로 치안과 행정을 관할해 왔다는 점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도 1840년대부터 이 일대를 독립하기 전 현 싱가포르 지역이 영유권을 확보해 왔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정부와 기업들이 이 지역에서 각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지역은 싱가포르가 실효적인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지역을 국제사법재판소가 말레이시아 영토로 판결을 했으니 자연 양국간 갈등의 뇌관을 건드리는 격이 되고 만 셈이다.

양국간 깊은 속내야 알 길이 없지만 영토분쟁에 있어 실효적 지배도 사법적 판단에는 별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이쯤이면 우리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독도의 실효적인 지배 논거에 대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독도문제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므로 무대응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피하고 독도에 대해 분쟁지역으로 국제적 이슈화를 방지하겠다는 논리다. 듣기에 따라서는 겸양지덕의 외교정책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페드라 브랑카섬 일대에 대한 소유권 판결에서도 보았듯이 결코 현명한 대처방안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 정부는 독도가 어느 모로 보나 우리 영토이고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어 아쉬울 게 없다는 식의 무대응이지만 국제사회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국제사회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호소하는 쪽에 동정과 관심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더구나 일본측의 일방적인 정보만 접하게 되면 결국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게 뻔한 이치다. 그러므로 독도문제가 지금처럼 한일간 현안으로 부각된 이면에는 우리 정부의 책임이 상당 부분 있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영토정책이 오히려 일본의 공격적인 영토정책을 부추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해’ 명칭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처 상황을 보더라도 그렇다. 당시 국제수로기구(IHO)가 새로 발간하는 ‘해양과 경계’ 책자에 50여년 동안 ‘동해’ 명칭을 ‘일본해’로 표기해 왔던 것을 ‘동해/일본해’로 함께 표기하기로 했었다. 그러자 일본은 모든 외교력을 동원하고 집요한 로비를 통해 결국 그들 의도대로 병행 표기를 저지시켰다. 반면 우리 정부는 오랜 현안이 해결된 양 승리감에 도취되어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결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고만 꼴이 되고 말았다. ‘동해’ 명칭문제가 독도문제와 무관치 않는 이상 일본의 공격적인 영토정책이 결국 우리 정부의 회피적인 영토정책을 제압한 형국이 되고 만 셈이다.

따라서 독도 문제는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길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독도를 경비대원 몇 명으로 점유했다 해서 완전한 실효적 지배인 양 만족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억지 주장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논거를 마련하여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더불어 독도를 개발하여 거주환경을 만들고 우리 국민들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왕래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을 포기하지 않은 한 언젠가는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이때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조 창 용(칼럼니스트/인천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2003.1.8.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