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우리의 자세는 무엇인가.’
최근에 있었던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한과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새 출발, 그리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의 정부 승인을 지켜보면서 다시 되새겨보는 해묵은 질문이다.
일본과 우리는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깝고, 정치나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고, 그리고 50여일 후면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해야 하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이다. 물론 두 나라는 ‘특수한’ 역사적 과거를 가지고 있고, 역사적 사실의 왜곡으로 인하여 국민감정은 여전히 배타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월드컵의 공동개최와 역사문제를 정리해 나가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약속을 계기로 우리는 ‘특수한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고 ‘민족화해’의 물꼬를 터나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독도의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고등학교용 교과서인 ‘최신 일본사’가 문부과학성의 심의를 거쳐 통과됐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역시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이고, ‘민족화해’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재확인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일본은 끊임없이 ‘망언’과 ‘사죄’를 반복하면서 왜곡된 역사를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보편화시켜 왔고, 독도의 영유권 문제 역시 그렇다.
우리는 일본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정부는 우리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지속적인 정책수립이 필요하다. 지난 2000년 9월 당시 총리인 모리 요시로(森喜朗)는 방한을 앞두고 KBS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나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주장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정상회담을 염려하여 ‘우려’를 표시하는 것으로 끝냈고, KBS는 이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최신 일본사’가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것도 이러한 모리식 주장이 보다 공식화한 것이고, 우리의 미숙한 대응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에 의하면, 외교당국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한 교과서 왜곡기술에 관하여 한·일관계의 악화를 막기 위해 지난해와 같은 정부 차원의 재수정이나 삭제를 요구하지 않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통해서 포괄적으로 다루어 나가도록 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방침’의 배경에는 독도는 외교사안이고, 교과서의 독도 기술문제는 처음이 아니며, 또한 월드컵을 앞두고 양국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은 독도문제를 ‘검정’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점차 정부차원으로 끌고 가고 있고, 한·일 월드컵과 같은 기회를 이용하여 오히려 공식화하고 있음에 비하여 정부의 태도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직접 담당하기보다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통해서 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을 연구하고 규명할 뿐이지, 외교부가 수행해야 할 협상과 외교까지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정부에 유감을 표시하고 항의를 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절차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민과 정부의 모든 관심은 정치에 쏠려 있다. 국민경선,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금년은 정치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직업관리들은 어느 당이 집권할 것인가, 또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국가의 자존(自尊)과 국민의 이익을 지킨다는 공복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더 충실해야 할 것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대하는 외교통상부의 자세도 예외는 아니다.
( 한상일 / 국민대 교수·정치학 ) 2002.4.11.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