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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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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어업협정 파기와 한일관계

김영구(한국해양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

한일어업협정이란?

한일어업협정이란, 1965년에 한일기본관계조약과 함께 체결된 것이다. 동해에서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해양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를 이룩해 왔다. 미국은 2차대전 종결 직후, 패전국 일본을 관리하는 최초의 조치로 일본의 어업활동을 일본본토 주변으로 한정하는 MacArther Line을 선포하였다. 한국은 이 조치의 시행주체도 규제대상도 아니었지만 그 반사적 효과를 십분 활용하여 이 선의 서쪽 경계선을 월선하여 조업하는 모든 일본어선에 대한 어업 규제와 나포를 강행하였다. 미일 평화협정이 타결되어 한시적 조치였던 MacArther Line 이 실효하게 되자, 한국은 한반도 주변 해역에 [평화선]을 선언하였다.

아직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과 같은 법적인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서 이 [평화선 선언]은 대단히 획기적인 조치였다. 이 조치는 한국 측으로 보면, 고도로 잘 장비된 일본 어선들이 한국 주변수역 어족자원을 남획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는 대단히 효과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었으나 국제법상 전통적인 공해자유의 원칙에 입각하여 동해와 황해 및 동중국해에서 어로활동을 전개하려든 일본으로서는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은 결국 1965년 한국과 일본 간에 「한일 어업협정」이 타결되므로서 이 [평화선 선언]을 실질적으로 배제(排除)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한국과 일본은 각국 연안에서 12해리 범위의 수역을 어업전관수역으로 하고 그 나머지 수역에서는 사실상 공해자유의 원칙에 입각한 일본 어민의 자유로운 어로가 보장되게 되었다. 연안 12해리는 그 당시 이미 연안국의 절대적 영역주권이 미치는 영해(領海)로 인식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어업전관수역을 일본과의 양자조약으로 새삼스럽게 정하고 있는 1965년 한일 어업협정은 그 당시 한국으로 보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일종의 불평등(不平等) 조약이라고 까지 비판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 군사정부가 국가 경제를 부흥시킴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하다고 판단한 일본과의 관계강화와 재정적 지원을 얻어내는데 있어서 이 한일기본관계조약과 한일어업협정이 가교(架橋) 역할을 하였다고 보면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역할을 해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 한일어업협약의 기본적인 여건은 바뀌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한국 어선의 규모 및 장비와 기술이 발전되었음은 물론이고 1977년 이후에는 북태평양에 진출했던 한국의 원양어선단이 쏘련과 미국의 200해리 어업보존수역의 선포와 그 시행에 따라 이 수역에서 축출당하게 되자 이들이 대거 일본 근해 어장으로 출어하게 되었다.

반면에 일본은 200해리 경제수역 개념이 점차 해양법상 제도로 정착되어 가고 또 수산업 종사 인력이 감소하는 추세를 감안하여 이른 바 어업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을 1976년 이후 시작하였다. 그 결과 한반도 근해에서 조업하는 일본 어선은 감소하고 일본근해 해역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처럼 정반대로 변화된 한일어업협정의 현실적인 여건에서 1980년 한국과 일본은 북해도와 제주도 주변수역에서 각기 자국 어선의 어업수역의 범위, 조업시기, 및 척수 등을 제한하는 [조업자율규제]라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는 한일간의 상호신뢰와 협력관계의 바탕 위에 한일어업협정 체제의 현상을 유지한다는 양국 정부의 일치된 입장에서 결과된 것이었다.

한편, 최근 수년 이래 실질적으로 가동(稼動)하게된 국제해양법 체제에 따른 근본적인 해양질서 개편의 요구와 동해(東海)에서 한일 양국의 어업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어업협력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 지난 1996년 초부터 양국은 이른 바 어업협의를 개시하여 지금까지 상당한 진전을 이룩해온 바 있다. 이 한일(韓日)간의 어업협의는 종래의 기국주의 원칙에 입각한 한일어업협정 체제로부터, 연안국의 전속적 관할제도인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체제로 변환시키는 것인 만큼 새로운 해양법 규범체제를 조속히 정착시키기 위하여 아주 합리적이고 전진적 자세로 상호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간에는 독도 영유권의 문제, 어족자원 보존관리 주체의 전환, 및 어로 실적에 의거한 상호 입어조건의 설정 등 쉽게 타결되기 어려운 난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이 새로운 제도의 실현을 위해 합의해 줄 것은 전진적으로 합의해주고 한국의 기본적 지위를 위해 지킬 것은 확보해 두어야 한다.

일본은 왜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破棄)했나? 그러나 특히 일본은 북해도와 일본 혼슈 서해안 일대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들의 어업 활동으로 인하여 일본의 근해 어자원이 부당하게 수탈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본 국내 수산단체(水産團體)와 일본 어민들의 압력으로 지난 1996년 초부터 양국간에 진행 중인 협의내용과는 별도로 동년 6월에는 공격적이고 확장적인 직선기선을 일본 북해도(北海島), 혼슈(本州)와 규슈(九州)의 모든 해안에 걸쳐 일방적으로 선포하였으며 이 위법적인 직선기선(直線基線)에 근거하여 일본연안 근해에서 조업하는 한국어선을 1997년부터 나포(拿捕)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또 한국과의 어업협의 타결(妥結) 시한을 1997년 7월 30일로 제시하고, 조속하고 원만한 어업협력체제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한일어업 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의사를 여러번 천명하였다. 그 동안 한일 양국 사이에 파국(破局)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일본은 한일어업협정 파기(破棄)를 일방적으로 통고하므로써 이 사연 많은 한일간의 어업협약은 매우 불행한 모습으로 실효(失效)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지난 1월 23일 일방적으로 한일어업협정을 파기(破棄)하였다. 한국은 대응적 강경조치로서 조업자율규제조치를 정지(停止)하였으며 이에 따라 북해도 근해어장에 한국의 트롤어선이 들어가 조업을 강행하자 일본어민들은 해상시위를 감행하고 일본 순시선과 일본 어선은 합동으로 한국 어선과 물리적인 대치와 추격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대결과 충돌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조짐이다. 한국 국민은 아주 어려운 고비에 있는 지금과 같은 때에 협정의 일방 파기라는 극단 조치로서 상호간의 신뢰와 협력관계의 기본적 틀을 깨고 있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으며 한 동안 진정되었던 반일(反日)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즉 한국과 일본은 수교(修交)이래 가장 경색된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극단의 돌출행동을 하게된 일본의 동기는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협정수역의 동쪽 한계를 동경135도로 고집하는 일본의 주장을 한국이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자국 인근해역에서 조업하는 한국어선에 의해서 그 어족자원을 부당하게 수탈당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는 일본어민들의 불만이 일본 정부에 대하여 일종의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였으며 또 하시모토 총리의 재정개혁 실패와 극심한 경기침체 등 일본 국내정치 문제를 한국에 대한 강경책으로 돌파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제10조 2항)에는 일방 당사국의 협약파기 통고조항이 있으므로 일본의 일방적 파기조치가 법규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협약은 일방의 파기 통고일로부터 1년 후에 실효(失效)되므로 만일에 일본이 지금 이러한 극한적인 조치를 감행한다면 이른 바 기국주의(旗國主義) 체제가 유지되는 이 1년의 유예기간(猶豫期間) 동안 한국 어부들은 일본측 수역에서 극한적으로 어로행위를 감행할 것이므로 설사 한국 정부측이 보복적 강경책이라고 하여 조업자율규제조치를 정지(停止)하지 않았더라도 한국과 일본간의 극단적인 마찰과 충돌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한일간의 이처럼 명확히 예측되는 대결과 마찰은 한국이나 일본 어느 쪽에게도 유해(有害)한 것으로서 양국의 성실한 노력이 있었다고 하면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측은 국내정치적 애로(隘路)의 국면전환을 위해 어업협정 일방파기의 수순을 밟아 왔고 한국측은 반일적(反日的) 국민 정서에 영합하기 위한 인위적 강경자세를 견지하므로서 일본에게 협정파기의 빌미를 주고만 것이다. 일본측의 협박에 가까운 독촉 속에서 서둘러 진전되어 온 한국과의 어업협의가 일본의 이러한 일방적인 극단적 조치로 결국 조기 타결될 수 있다고 일본이 계산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확실히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현대 국제사회의 기본적 윤리규범에 반하는 것으로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일종의 신사협정(紳士協定 gentleman's agreement)이라고 할 수 있는 조업자율규제를 보복적 차원에서 철회한 한국 정부의 소위 "강경조치"도 이미 예정된 충돌과 마찰에 대한 정치적인 결과책임을 일본과 더불어 부담하게 만든 졸속한 대응(對應)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협상자세, 그대로 좋은가? 이 일본과의 어업협의에서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협상의 자세와 접근된 합의의 내용 및 앞으로의 대응 방안을 재음미 해 보기로 한다.

현재 한국과 일본간의 협의 진전 사항을 대체로 보면 한국은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항에 대해서 일본 측이 제시한 내용 거의 모두를 실질적으로 이미 수용하고 있다. 종래의 「잠정적 중간경계선 설정」주장을 철회하고 「잠정수역 설정안」을 받아드린 것이 첫 번째의 중요한 양보이다. 전속적 관할수역의 범위에 관해서도 24해리를 고수하려던 한국의 입장은 일찍이 후퇴되었다. 이 처럼 중요한 양보를 이미 해놓은 지금, 전속관할 수역의 범위를 35해리로 하는 것, 또는 잠정수역의 서측 경계를 136도로 하는 것 등은 일본과의 정면 대결을 불사할 정도로 우리에게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는 이미 아니다.

본래 [잠정수역 설정안]이란, 한국과 일본이 그 연안으로부터 일정 범위의 수역을 전속관할수역으로 하고 그 나머지 수역을 자원공동관리 수역으로 한다는 것인 바,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일본 간에 지난 1997년 9월에 이미 합의된 바 있는 [잠정적 합의수역]의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 문제가 있는 동해 수역에 중일(中日)간의 [잠정적 합의수역]의 형식을 도입한 것은 논리적으로 부적절한 것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합의를 보면, 북위 27°에서 북위 30°40′사이의 구역에서 각 연안국은 각기 그 해안에서 52해리 까지를 전속관할수역으로 하고 그 나머지 수역을 이른 바 공동관리수역으로 한다는 것이다. 영유권 분쟁이 있는 조어대(釣魚臺)/첨각열도(尖閣列島)를 포함한 북위 27도 이남(以南)의 수역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존(旣存) 어업질서를 유지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바, 이는 다시말해서 이들 잠정조치 합의에서 27°이남의 수역을 제외하므로서 "그 현상(status quo)을 유지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즉 이는 혹 잘못 인용되고 있는 것 처럼 [영유권 문제를 보류시킨 잠정합의]라기 보다는 [영유권 분쟁수역을 제외시킨 잠정합의]이며 영유권 귀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잠정합의 조차도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사례(事例)라고 할 수 있다.

독도는 지리적으로 한국과 일본간에 합의되어야 할 잠정조치 수역의 중앙에 위치하여 이를 "제외"하기가 사실상 부적절하기 때문에 동해지역에서는 日·中간의 합의와 같은 공식을 무비판적으로 모방 도입하는 것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사실상 행사하고 있는 한국의 법적 지위를 결과적으로 훼손하는 조치가 된다. 이 방식을 만일 그대로 동해 쪽에 적용하여,한·일 양국 사이의 잠정적 공동관리 수역을 정한다면 결국 독도(獨島) 주변 수역을 한일 양국의 공동관리 수역으로 묶으므로서 독도(獨島)에 관한 한국의 배타적 영유권이 현실적으로 부정(否定)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잠정수역안」에서 한국이 주장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택의 범위란, 양국 연안의 일정 범위(한국은 35해리, 일본은 36해리를 주장하고 있다.)를 전속관할수역으로 하고 나머지 수역(즉 독도 주변수역)은 공해(公海)로 남겨둔다고 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잠정수역의 성격에 관해서는 아직 합의가 안된 것으로 되어 있고 일본은 이 수역이 당연히 자원공동관리 수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수역의 성격이 공해(公海)로 확정될 것인가는 미지수 이다.

그런데 독도가 한국의 영토이고 이 영유권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수용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주변수역을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공해(公海)로 확인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영토인 독도 주변에는 12해리의 영해(領海)는 물론이고 24해리의 접속수역이 한국의 관할수 역으로 이미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범위에 관해서도 독도가 섬(島)으로서 해양경계획정상 어떠한 법적인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를 교량하여 (이 점에 관해서 일본과의 협의를 통해서) 독도로부터 일정범위의 수역에 한국의 배타적 관할권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잠정수역안」의 수용은 필연적으로 독도에 대한 현실적인 영유권을 한국이 행사해 오고 있었던 지금까지의 현상유지상태(status quo)를 법적으로 변경시키게 될 것이다. 즉 영유권에 관한 한국의 법적 지위는 결정적으로 훼손된다. 이러한 양보나 태도의 수정은 "독도는 명백한 한국의 영토이며 일본의 어떠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영유권 문제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라는 우리 정부의 지금까지의 입장과는 일관성이 없다.

독도(獨島)문제

동해에서 일본과의 관할수역 경계를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잠정적 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독도(獨島)문제 때문인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한일(韓日)간의 독도(獨島) 문제는, 1952년 1월 18일 한국이 한반도 주변에 [인접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주권 선언](일명 평화선)을 선포하자, 일본이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의 자국 어민활동이 배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면서 이 평화선의 불법성을 주장하고 나서는 중에 이 평화선의 범위내에 죽도(竹島) 즉 한국의 독도(獨島)가 포함된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여 이른 바 독도(獨島)에 대한 영유권 다툼이 한일(韓日)간에 시작된 것이다.

1952년 1월 28일 일본의 죽도(竹島; 다께시마) 영유 주장이래, 독도(獨島)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일본 외무성과 일부 일본 학자들의 집요한 합리화 작업으로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일본의 영토 정책의 하나가 되어 있다. 물론 일부 국수적 성향의 일본 국민과 정치인들의 계산된 움직임이 여기에 부수되고 있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도(獨島)에 대해서 일본이 국권에 의한 영유적 지배를 행사한 실적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19세기 말에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감행한 한반도 병탄(倂呑) 행위의 일부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실적은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므로서 법적으로 무효이며, 아무런 의미를 인정할 수 없는 침략적 사실로 확인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정책은 유엔 헌장에 명기된 2차대전의 적국(敵國)으로서 침략적 전력(前歷)을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의 주도적 국가로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일찍이 시정(是正), 타기(唾棄) 해야할 [문제의 정책]이며 일부 일본의 진지한 학자들도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은 그 동안 이 독도 문제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하여 회피해 왔다. 특히 한국은 자국의 온전한 영토가 인접국에 의하여 근거없이 법적 권원의 다툼을 받는 문제이므로 진작에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안주(安住)하여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일 조차도 금기(禁忌)로 해왔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일본은 어느 면에서 국제사회에서 매우 책임있는 국가이다. 일본에는 성실한 전문가들도 있다.

독도 영유권의 문제는 아주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중국과 일본간의 조어대(釣魚臺)/센까구(尖閣列島) 또는 일본과 러시아 간의 북방(北方) 4도 등 영토 문제와는 그 유형(類型)을 달리하는 매우 간명하고 확실한 사건으로서 한국의 영토적 권원이 진작에 확인되었어야만 하는 문제이었다. 일본의 일부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이 독도 문제에 관한 사실관계를 뒤늦게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측이 진작에 일본의 성실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발굴 정리하여 이 문제를 일찍이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의 재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이 독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회피해 왔다.

1965년 한일(韓日)간 기본관계조약과 한일(韓日) 어업협정에서도 양국은 기술적으로 이 독도 문제를 회피하는데에 성공했던 것이다. 가장 유명한 사실은 1965년 한일 양국의 합의에 부수된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에서 이 독도 문제가 명문으로 회피되었다는 것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가간의 분쟁으로 보지 않는 한국의 입장에서 이는 한 차레의 외교적인 개가(凱歌)로 기억될 수 있는 사건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분명히 일본 외상은 그 국회에 출석하여 이 교환 공문에서 명기하고 있는 "양국간의 분쟁"에는 당연히 독도의 분쟁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답변했던 것은 아주 유명한 사실이다.

독도 문제를 회피한 또 하나의 현저한 예로서는 지난 1974년 한일(韓日)간의 북부대륙붕 경계에 관한 협정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계 합의에서도 독도(獨島) 문제를 의식해서 경계선은 장기갑 근처 까지 밖에 타결되지 못했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이제는 더 이상 이 독도(獨島) 문제를 회피하기 어려운 때를 당면하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96년 이래 유엔 해양법 협약의 실질적인 가동과 더불어 당면의 과제로 떠오른 새로운 어업제도 및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제도의 실시와 연관해서 한일 양국은 좁은 동해(東海)에서의 해양관할권의 경계를 획선해야만 하게되었다. 특히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제도라는 것은 그 관할수역 범위내의 자원과 환경 문제를 연안국이 전속적 권한과 의무로 주관해야 하는 법적인 제도 이므로 관할 범위의 명확한 획선은 이 제도의 시행을 위한 논리적인 전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계획선에 있어서 중간에 위치한 섬의 영유권이 확정되지 않고는 어떤 경계선의 타결도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1996년부터 시작된 한일간의 어업협의와 경계문제 협상에서 독도문제에 관련하여 특히 한국 정부는 종래와 같은 문제 회피적 태도를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독도는 인간의 거주와 지속적 경제생활의 영위가 불가능한 돌섬(岩島)이므로 해양법 협약 제121조 3항에 의거하여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갖지 않는 섬이라고 명시적으로 전제(前提)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개된 입장도 이 독도문제를 회피하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의를 환기해 두고 싶은 점은 앞서 지적한 것 처럼 경계획정 문제의 기본적 성격상 독도 영유권 문제가 더 이상 회피될 수 없다는 점을 접어 두고라도, 지난 1997년 9월 3일 합의, 발표된 미국과 일본간의 "방위협력지침"(Guide Line) 에 의하건대 앞으로 일본은 동북아 지역안보의 주도적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인수받는 국가가 될 것이며 아주 필연적으로 한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갈수록 강력해 진다고 보아야 할 상항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항은 종래 일본 정부의 독도에 관한 영토정책을 일종의 "확장적 현상유지 정책"에서 보다 공격적인 "일방 추진 정책"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현 한국의 금융위기 사태로 인하여 IMF의 주요 투자국인 일본은 외화(外貨) 채권의 물리적 힘으로 한국의 경제정책에 깊이 개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미 이를 기화로 독도문제에 영향력을 구사하려는 조짐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고 생각된다. 이 섬에 관한 한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영토적 권원이 여러 경우에 계속해서 부당하게 침해받고 있는 데도, 독도 영유권 문제를 본격적인 국제법적인 분쟁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禁忌)로 하는 지금까지의 우리 한국 정부의 태도는 시급히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부당하고 근거없는 것인 만큼, 한국은 이 문제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부당한 주장을 관련된 문제의 처리에서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일본이 근거없는 국제분쟁을 제기하고 있는 점을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공론화(公論化)하여야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한국이 성실하게 독도 문제에 다시 접근한다면 적어도 유엔 안보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하는 일본이 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인접국의 영역을 무단히 침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일(韓日)관계의 전망(展望)과 대안(對案)

독도 문제는 분쟁이 아니라고 강변(强辯)하면서도 한국은 중요한 문제에 당면할 때 마다 이 독도 문제를 회피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피적 태도가 이번에는 결정적으로 1952년 이래 계속적이고 평화적으로 행사되어온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역 주권 행사(continuous and peaceful display of territorial reignty)에 심대한 법률적 훼손을 갖어오게 되었다.

잠정합의수역의 성격을 공해(公海)로 명시하고져 하는 한국의 입장은 아마 독도에 대한 한국의 현실적 지배라는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궁여지책은 논리적인 일관성도 없고 일본에 의해서 받아드려진 바도 없다. 한국 측에서는 일방적으로, 지금까지 일본과의 합의사항 중에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는 현상태를 유지한다."는 합의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는 [협의 과정 중의 한일 협상 당사자 간의 비공식적인 우호적 분위기]일런지는 몰라도 적어도 명시적으로 그러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예민하고 중대한 문제가 합의의사록 등에 명문으로 적시(摘示)되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 당사국 (특히 한국)의 입장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제법의 기본 상식이다. 동해 수역에 日·中간의 [잠정적 합의수역]의 형식을 기왕 불가피하게 수용한 경우라도 독도와 울릉도 인근 일정범위의 수역을 위요지(圍繞地: enclave)로 정하여 이 잠정적 합의수역 범위에서 제외시키는 명시적 조건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한다.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일본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독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동해(東海) 중앙의 일정범위의 수역을 잠정합의 수역의 범위에서 제외(除外)시키는 것에는 동의해야 하며, 한국은 최소한 이러한 동의를 일본으로 부터 받아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첨예한 협의에서 한국은 아무런 명확한 보장적 조건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본래 한국측이 전속관할 수역의 범위를 연안 24해리로 묶으므로서 잠정수역의 공해(公海)부분 (일본측으로서는 공동관리 부분)을 넓게 확보하려 했든 것도 독도의 현상을 훼손당하지 않으려는 배려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미 이 문제는 한국 안(案) 35해리와 일본측 안(案) 36해리로 접근되어 있다. 잠정합의수역의 서측 경계문제에 있어서 일본측 안(案) 동경 135°와 한국측 안(案) 동경 136°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정부는 대화퇴(大和堆) 어장을 확보하는 문제를 여기에 연결시키고 있지만 어차피 동경 136°로도 대화퇴(大和堆)는 전부 포함시킬 수 없다. 한마디로 이런 문제는 독도문제에 관련해서 보면 지극히 지엽적인 것이다.

차제에 한국의 신정부는 일본과의 어업협상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즉 [잠정적 중간경계선 안(案)]으로 다시 돌아가서 1974년 한일간 북부 대륙붕 경계합의선 제35번 점에서 양국 연안으로 부터의 중간선을 취하여 양국의 [잠정적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선]으로 하는 방안을 일본 측에게 진지하게 제의하여야 한다. (지도-2 참조) 이때 한국 영토인 울릉도와 독도(獨島), 일본 영토인 오끼도는 중간선 획선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실제로 해양 관할 수역의 경계를 정함에 있어서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섬을 고려요소에서 제외시킨 예는 많이 있다. 1970년 Iran 과 Qatar 간 경계협의에서 영유권 분쟁이 있던 Halul Island, 1977년 Cuba와 Haiti간 경계협의에서 Navasa Island 등이 그 예가 된다.

이미 양국간에 구체적인 사항에 걸쳐 의견접근이 상당히 이루어져 있으므로 실제로 한일간 어업협상의 최종타결은 독도 문제에 관한 위와 같은 한국의 주장이 받아드려 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협상주체가 될 한국의 신정부가 성의와 결의를 갖이고 일본을 설득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결코 일본과의 협의타결 그 자체를 서둘러서는 안된다. 앞으로 1년의 유예기간 동안에도 어업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때는 이미 발효된 양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로는 1952년 한국이 선포한 [평화선]이 부활 되어야 함이 주장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1965년 한일어업협정이 실효하면 당연히 한일어업협정의 그 이전(以前) 상태로 돌아가야 하며 그것은 바로 1952년 이래, 동해에서 한국이 선포하고 실시해 온 [평화선] 체제이기 때문이다. 맺는 말 현재로서는 동해(東海)에서 한국과 일본 어민간의 충돌이 더 이상 심각하게 발전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고작이다. 현지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다수 출동하고 있으나 이 일로 인해서 한국과 일본간에 무력적 충돌이 당장에 일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민간 선박간의 불의의 사고로부터 양국 어민을 보호하는 차원의 공동작전이 양국 군사당국에 의해서 준비되야 하는 사태에 이를지도 모른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난 1997년 9월 3일 합의, 발표된 미국과 일본간의 "방위협력 지침"(Guide Line) 에 의거, 일본은 동북아 지역안보의 주도적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인수받는 국가가 될 것이고, 아주 필연적으로 한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이 갈수록 강력해 질 것이다. IMF 사태로 경제적 위기에서 회생하려는 극한적 노력을 경주하는 한국에 대하여 일본은 IMF 주요 투자국으로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현재의 상항도 여기에 가세(加勢)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항들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독도에 관한 영토정책으로 지금까지 견지해오던 일종의 "확장적 현상유지 정책"에서 벗어나서 보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공격적 확장정책"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이 대처할 방향은 무엇인가? 물론 우선적으로 현재와 같은 국가적 비능률, 불합리의 구조를 시급히 조정, 개선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것은 이렇게 재정비된 국가체제를 바탕으로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해양관할권 문제 또한 만만치가 않다. 국제적 관계에서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하는 요체는 결국 국력(國力)이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국력(國力)이다. 그러나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철수(撤收: phase out)해가는 이 동북 아시아에서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첨예한 정치력, 외교적 력량의 발휘에는 고도로 잘정비된 첨단 해군력(海軍力)이 꼭 필요하다. 아무리 어려운 경제적 여건이라고는 하나, 우리 해군력을 빠른 시일안에 일본 및 중국의 해군력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키워내야만 한다.

200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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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관련해 내각에 제출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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