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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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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다에서 떨어져 나간 독도

-울릉도 기점 전관수역 사이에 생긴 0.5해리의‘틈’이 주는 의미…

이상면 서울대 법대(국제법 교수)

최근 타결된 한·일 어업협정은 독도를 ‘중간수역’(우리측 표현)에 넣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독도가 비록 중간수역에 들어 있어도 울릉도를 기점으로 한 전관수역(배타적 어업수역)에서 불과 0.5해리(9백25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이 정도 폭을 배가 뚫고 지나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0.5해리의 ‘틈’이 있더라도 일본배가 지나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번 어업협정 제1조는 ‘이 협정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대상으로 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에 독도의 지위는 종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측이 대화퇴어장에서 약간 양보하는 척하며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자고 한 저의를 간과한 것 같다.

1996년 한·일 양국이 새 해양법협약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새 체제에 맞는 어업협상을 시도할 무렵, 일본측은 예상을 뒤엎고 독도를 유인도로 단정하면서 독도와 울릉도의 중간선을 경계로 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독도를 무인도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무시하고 울릉도와 오키도의 중간선을 경계로 하자는 소극정책을 폈다. 독도가 우리 땅이니 독도와 오키도의 중간선을 경계로 하자는 말은 꺼내 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독도가 ‘뜨거운 감자’라고 하더라도 경계선의 기점을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로 하자고 후퇴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독도의 영토적 지위를 흔든 셈이 됐다.

양측이 1997년 내내 협상을 벌인 결과 나온 것이 중간수역 개념이다. 얼핏 보면 전관수역을 연안에서 34해리(일본측)로 하느냐, 35해리(한국측)로 하느냐를 놓고 겨룬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속셈은 독도를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전관수역에서 떼어내는데 있었고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0.5해리의 ‘틈’을 확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일본배가 지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독도가 울릉도를 기점으로 한 전관수역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는 것은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독도가 중간수역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12해리 밖 독도 주변 수역이 공유상태에 들어 간다는 말이다. 대화퇴 어장의 절반에서 함께 조업하기로 하는 등 다소의 성과가 있었다고 하나 광대한 독도 주변 수역이 공유상태에 들어간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부 당국의 설명대로 독도의 지위에 변함이 없다면 왜 독도를 기점으로 한 12∼35해리 해역이 전관수역으로 남지 않고 일본과 공유하는 중간수역으로 빠져 나갔는가. 우리나라 모든 도서에 설정돼 있는 35해리의 전관수역이 유독 독도에만 빠져 있는데 어떻게 독도의 지위에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동해로 나가는 길목 내준 청나라의 교훈

공유의 속성은 일정한 목적을 성취한 다음엔 종식되는 것이다. 가까운 예를 보자. 청나라는 1858년 러시아와 아이훈조약을 체결해 연해주를 공동관리하에 두었다. 그러나 1860년 영·불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했을 때 러시아 공사 이그나티예프가 이를 중개해 주는 대가로 공유상태에 있던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겼다. 그 결과 청나라는 광활한 동해로 나가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고 러시아는 천혜의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를 확보했다.

먼 훗날 일본은 독도 및 그 12해리 영해는 한국의 ‘점령’하에 있었지만 유인도인 독도가 발양해 내는 2백해리 경제수역은 공유해 왔다고 공언할 것이다. 공유 해상에서의 작전권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역사적 권원(權原)의 주장은 독도 영유권 자체에 심각한 해를 유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토가 어느날 갑자기 일방으로 넘어간 예는 없다. 치밀하게 짜여진 단계적 공략 과정을 거친다. 이번 어업협상은 그 시험장이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일본의 저의를 묵납(默納)했다.

또 유인도 여부가 영토 인정의 잣대가 된다고 하여 민간단체가 기금을 조성해 가면서까지 독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가 스스로 독도를 무인도라고 하면서 경계선의 기점을 울릉도로 후퇴시킨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수비대가 상주해 있는 독도는 개발가능성을 갖춘 잠재적 유인도다. 우리도 일본처럼 독도를 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대화퇴어장의 일부분이 우리 수역에 들어온다.

2백해리 해양법 시대가 도래해 구해양법시대에 체결되었던 한·일 어업협정은 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협정에 넣으려고 애쓸수록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신구 해양법시대 사이에는 어차피 다소간의 과도기가 필요할 것이니 가능한 것만을 먼저 합의하고 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는 여유도 중요하다고 본다.

독도의 지위에 해가 되는 규정을 넣지 않고서도 어업자원 이용을 중심으로 어업협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더러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규정을 넣어 가면서까지 서둘러 어업협정을 체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코노미스트 지 1998년 10월 20일자 통권 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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