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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0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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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땅 간도, 지켜야 할 땅 독도

간도 알리기, 국민적 홍보 통해 힘을 모아야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일부

일제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는 '어머니가 계신 땅'으로 북간도가 나온다. 북간도는 윤 시인의 고향이다. 용정, 훈춘, 길림 등 간도 지역의 지명은 우리의 귀에 익은 이름이다. 그곳은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본거지였고 지금은 중국의 조선족(재중동포)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북방 영토가 바로 간도이다.

잊혀진 땅 간도는 어떤 땅인가. 그동안 우리와는 상관없는 땅으로 여겨져 왔으며 듣기에도 생소했던 이 지역은 지금 중국의 영토가 되어버린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우리의 옛 땅이다. 우리가 만주로 알고 있는 압록강, 두만강 이북의 땅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며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그러나 이 땅은 아주 오래 전 우리의 땅만은 아니었으며 바로 근대 조선 후기까지도 청나라와의 영유권 분쟁상태에서 간도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우리가 개척하고 실질적 영유권을 행사한 우리의 영토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땅이 우리 땅이었어?’라고 할 지경으로 한때의 시절처럼 국민에게 멀고도 낯설게 인식되고 있다. 왜 지금과 같은 결과가 생겼는가? 남북이 가로막혀 그 지역이 상대적으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유도 있지만, 북방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방관적 태도, 그로 인한 국민의 전반적인 영토의식이 부족해서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 땅이었던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간도 땅이 사실상 누구도 주인이 아니었던 것은 청나라가 선조의 발상지라며 봉금지대를 선포한 이후부터다. 18, 19세기 서양 고지도들은 대부분 이 지역을 중국이나 한국 어느 쪽의 땅도 아닌 말 그대로 출입이 금지된 지역으로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강을 건너 간도를 드나들었고, 19세기 말부터는 이곳에 집단 거주하면서 행정권까지 확립하는 등 이른바 실효적 지배 상태를 유지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청나라는 국경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1712년 숙종 38년 조선과 함께 ‘백두산정계비’를 설치했다.

그런데 청과 조선이 세웠다고 하나 사실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세운 정계비는 '西爲鴨綠, 東爲土門'이라 적혀 있는데, 내용인즉 서쪽으로 압록강과 동쪽으로 토문강(土門江)을 경계로 삼아 양국의 국경을 확정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토문강이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흐르는 쑹화강의 한 지류이다.

백두산 정계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토문강의 동쪽인 지금의 연변 지방, 즉 중국의 동북 지방은 우리 한반도의 차지가 돼야 하고 더군다나 이 정계비는 청나라에서 세운 것과 다름이 없으니 중국 쪽에서도 간도지방이 우리 영토라는 것을 인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지역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은 정계 비문에 적힌 '토문강'이 중국 측이 믿었던 것과 달리 '두만강(도문강)'이 아닌, 쑹화강 상류의 또 다른 강 이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청나라가 봉금 지역으로 설정했던 만주 일대에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韓)민족도 상당수 진출해 살았다. 청나라는 원래 자기네가 선언했던 봉금 지역을 지키기 위해 1883년 토문강 서쪽과 북쪽 지방에 사는 한민족을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지역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이 지역 주민(한민족)이 두만강 발원지를 탐사해 보니, 목극등이 정계비에 기록한 토문강이 두만강과는 전혀 별개의 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중국 쪽에서는 또 말을 바꾸어 '토문은 만주어로 두만이란 말과 같다. 그러니 이 정계비에 나온 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말은 서위압록, 동위두만과 같으니 간도지방은 우리 중국이 차지하겠다는 주장을 폈고 조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조선과 청나라는 이 문제로 인해 두 차례에 걸쳐 ‘감계 담판’이란 국경 협상'을 벌였지만, 간도 지역을 둘러싼 양측의 협상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청·일 전쟁, 러·일 전쟁 등 국제 정세가 격변하자 중단되었다.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고종을 협박해 이른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일본은 조선을 삼키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일삼았고, 제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주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를 동원하여 광범위한 조사를 하고, 10만여 한인(韓人)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독립운동의 무대로도 유명했던 용정에 '통감부 파출소'까지 설치했다.

일제가 이어서 취한 조처는 간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고. 만주를 좀 더 쉽게 삼키기 위해 청나라와 조약을 체결했다. 그 내용은 만주 지역 철도 부설권, 푸순 탄광 채굴권 등을 청나라로부터 얻어내고 간도 지역을 청나라에 양도하는 조약이었던 것이다.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외교권을 상실해 버렸고, 그 대신 일본이 조선의 외교를 도맡았던 것이므로 조선은 손도 써보지 못하고 간도 지방을 잃어버렸다. 1965년 한일 국교수립이 성사되면서 일본은 한국에게 100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내놓고 일제 때 한국을 대신하여 행사한 모든 외교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간도협약 역시 일본 마음대로 체결한 조약이니 무효가 되는 것이고, 이대로라면 간도는 우리 영토가 돼야 했지만 현실적으로 분단된 한국 상황에서 중국이 그동안 지배해오던 간도를 되찾는 일이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1992년 한중 수교 후 중국과 교섭이 활발해지면서 간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아마도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잃어버린 땅 간도를 되찾는 일이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제법적으로 무효인 을사조약에 의해 맺어진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일 수밖에 없으며 이에 우리는 간도협약 무효를 중국 측에 통고하고 간도 땅을 되찾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중국 측은 우리의 통일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서자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왜곡하며 간도의 영유권을 고착화하려 하고 있다.   

국가 간 체결된 조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은 '조약 체결 후 100년 이내'인 데 지난 2009년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제야말로 간도를 둘러싼 북방영유권 문제를 중국과 본격 논의해야 하며, 간도 문제를 더 늦기 전에 국제사법재판소 등 국제기구에 보내 법적 해결을 꾀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청·일 간에 맺은 간도협약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중국에 통보하지도 않았고, 대외적으로 간도지역에 대한 우리의 영유권과 한중 간에 미해결된 지역임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 결과 최근 각종 국제회의에서조차 동북아 경협이나 동북아 안보를 논하면서 간도지역이 영유권 문제제기 지역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외국인 학자는 없었다.

이러한 결과가 누구의 책임인가. 이것은 간도 영유권에 대한 중요성을 국민 모두가 외면했고, 아예 없었던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도영유권을 분명히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에서는 혹시 모를 일, 즉 우리의 통일에 대비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 발해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노력과 아울러 고구려 역사가 한국의 역사로 인식될 것을 우려해 북한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성사시키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연변의 조선족에게까지 조국은 중국, 모국은 한국이란 세뇌를 시켜 조선족들로 하여금 중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며 대비를 하는 중국과 비교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되찾을 간도의 크기는 남한 국토의 절반 크기가 넘는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일본과의 해묵은 감정으로 조그마한 섬인 독도에는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독도보다 1000배나 더 넓은 간도 지역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분쟁은 1905년(메이지 38년) 일본의 일개 현(縣·우리나라의 군에 해당) 정부가 발효한, 국제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 한 고시에서 비롯했는데, 이른바 '시마네 현 고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 고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7도 55분, 오키도(島)로부터 85해리(157㎞)에 있는 무인도(즉 독도)는 탸국이 이를 점령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취가 없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 편입해 다케시마(竹島)라고 명명하고, 시마네 현 오키도사(島可)의 소관으로 한다.”

이 고시는 한국을 식민화한 일본이 이듬해인 1906년 당시 울릉군수인 심홍택을 찾아 독도를 일본에 편입한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독도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 측 억지로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매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왔다. 일본이 한국민과 정부의 거듭된 항의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적으로 외교 문서를 보내는 이유에는 바로 시효중단을 위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대다수 국내의 역사학자와 영토문제 전문가들은 북방 영토 간도에 관한 영유권 문제제기를 비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더 이상 간도영유권을 주장할 근거마저 세우지 못하게 만든다고 본다. 만약 우리처럼 간도영유권 문제에 방관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독도 문제를 놓고 일본이 기회 있을 때마다 억지를 되풀이하는 행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지만,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나올 경우 우리도 같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맞대응하면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수역이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는 일본 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소리 나지 않게 독도에 대한 실효적 점유를 강화해서 일본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사실 독도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점유한 우리의 영토로 외교적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독도의 영유권을 확고히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도에 대한 평온하고 실효적인 지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며, 이러한 실효적 지배가 장기간 계속될 경우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이의제기는 사라질 것이다.

실효적 지배는 ‘국가권력의 계속적이며 평화적인 행사가 주요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독도가 대외적으로 분쟁지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영토문제는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서 그것이 일본 측에서 제기될 때 감정폭발이 먼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감정을 진정시키며 일본을 침묵케 하는 길을 찾아서 보다 발전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한국인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도 중국에 정부 주도로 간도 영유권 주장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 간의 영토분쟁은 평화적인 해결로 끝난 경우가 드물며,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길다. 더구나 간도지역이 양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익이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간도 영유권 분쟁은 평화적인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현재 점유하고 있는 간도지역에 대해 제일 먼저 할 일은 간도협약의 무효선언을 통한 중국의 점유 시효를 단절시키는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국민에게 간도의 중요성을 알리고 중국 정부에게 간도의 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며,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문서를 꾸준히 보내야 한다. 만약 중국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고, 정부와 국민은 간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의식과 의지를 강력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 간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국민적 홍보를 통해서 간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이제 분명해졌다. 
출처 : 김정기 시티넷(아시아태평양지방정부연합)대표 [브레이크뉴스 2023.07.13. ]

독도본부 2023.07.21.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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