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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독도 강치’

[애니멀피플] 장노아의 사라지는 동물들
일본강치와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76x57cm, 종이에 수채, 2019

일본강치와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76x57cm, 종이에 수채, 2019
일본강치: 1970년대 멸종.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295.8m, 요코하마, 일본

독도의 주인은 누구일까? 일본일까, 한국일까? 우리의 일상적 판단과 실제는 다르다. 본디 주인은 이 섬에 살던 강치라는 해양포유동물이었다.-주강현 『독도강치 멸종사』

우리나라에서 강치로 불리는 바다사자는 식육목 바다사자아과의 해양포유류로 주로 한일 양국의 환동해권역에 서식했다. 독도에 대규모로 군집해 살았기 때문에 독도강치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세계 학계에는 일본바다사자, 일본강치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강치를 포함해 캘리포니아강치, 갈라파고스강치 세 아종이 있다. 일본강치는 그중 몸집이 가장 크다. 흑갈색인 수컷의 몸길이는 2.3~2.5m, 체중은 450~560kg에 이른다. 암컷은 훨씬 작으며 새끼와 마찬가지로 황갈색이다. 최대 30년까지 생존한 기록이 있고 천적은 범고래와 상어다.

일본 각지에 서식하던 강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수렵을 금지했던 에도 시대와 달리, 메이지 시대의 정치적 혼란기에는 보호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독도의 강치에 눈독을 들인 어업가 나카이 요자부로는 1904년 독도 영토 편입 및 차용 청원을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 명분은 강치 밀렵 및 남획 예방과 보호였다. 당시 러일전쟁 중이었던 일본은 청원을 계기로 삼아 1905년 2월22일 독도를 비밀리에 시마네현에 편입하고 강치어렵독점권을 승인했다.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한 망루와 통신시설도 무단으로 설치했다.

일본강치, 종이에 연필, 2019
일본강치, 종이에 연필, 2019

독도 강치 학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04~1913년에 약 1만4000여 마리가 희생됐다. 가죽으로 모자챙, 가방, 배낭, 담뱃잎통, 방한 용구 등을 만들었고 피하지방을 끊여 기름을 취했으며 고기는 익혀 건조해 비료로 썼다. 동물원과 서커스에 팔기 위해 생포하기도 했다.

1900년대 초 연평균 약 1300~2000마리 포획됐던 강치는 1916~1928년 100~300마리로 급감했다. 1933~1941년에는 연간 16~49마리로 멸종 직전의 희귀종이 됐다. 강치잡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중단됐고, 일본의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었던
강치들은 전쟁 중에 먹이 부족으로 죽었다. 1951년 살아남은 독도의 강치는 50~60마리에 불과했다.

1974년과 1975년에 목격된 개체들을 마지막으로 강치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1994년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일본강치 절멸을 선언했다. 현재 강치 박제 표본과 영상 등 희귀한 자료 대부분을 일본이 소장하고 있다. 일본은 멸종 한참 전인 1886년에도 시마네현에서 포획한 강치를 박제해 보관했다. 네덜란드 라이덴 자연사박물관에 박제 표본 세 점이 있고, 영국 대영박물관에 모피 한 점과 두개골 네 점이 있다. 국내에는 한 점도 없고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741년 북태평양 코만도르스키예 제도에서 처음 발견된 스텔러바다소는 가죽과 기름을 얻으려고 몰려든 사냥꾼들에게 마지막 한 마리까지 죽임을 당했다. 1768년, 인간에게 발견된 지 27년 만이었다. 몸길이가 8~9m에 이르는 거대한 동물이지만 더없이 온순했던 스텔러바다소는 저항도 없이 작살을 맞고 조용히 죽어갔다. 독도의 강치도 가죽과 기름 때문에 수십 년 만에 희귀종이 되었고 마지막 서식지 독도에서 최후를 맞았다.

1895년 기록에 따르면, 독도의 강치는 배를 타고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적이 없는 섬에서 평화롭게 살던 도도나 스텔러바다소처럼 경계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남획으로 희귀종이 된 일제강점기 말의 증언은 다르다. 보초를 서는 커다란 강치가 뱃사람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 전부 도망을 갔다. 일본에는 ‘강치 차례’라는 말이 있는데, 불침번을 두고 교대로 자는 것을 뜻한다.

당시 일본의 강치잡이 기록을 보면, 새끼를 낳고 젖을 먹여 키우던 이 온순한 해양동물을 오로지 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짜낼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호의 목적도 영구적인 이익 보전이었다.

독도의 강치를 멸종시킨 일본 어부들의 모습은 다른 나라를 침략해 마구 죽이고 강탈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그대로 재현한다. 강치는 멸종된 후에도 평화를 얻지 못하고 독도 영유권 분쟁에 끌려 나온다. 일본은 과거의 독점적 강치잡이를 독도 영유권 근거로 제시하고, 멸종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고, 강치 동화책을 제작해 아이들에게 날조된 역사를 가르친다.

우리 민족은 우리 산과 바다에 살던 동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거나 착취하지 않았다. 강치도 표범도 호랑이도 일제강점기에 희귀종이 되었고 끝내 사라져 버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일본의 침략이 아니었다면, 강치는 지금도 독도의 주인이었을 것이다.[장노아 화가]

[한겨레 2021.03.10]

독도본부 2021.03.18.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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