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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에서 눈을? 참 놀라운 일이다

임진왜란을 예언한 조선통신사 황윤길, 대마도에 본 추모비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와서 일본의 조선 침략을 대비하자고 주장했던 황윤길을 일본이 추모하고 있다니(?) 조금은 이상했다.

파도가 심해서 출항을 하지 않는다니...이런 큰 일이...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과 증여를 통하여 대상지를 매입하거나 확보해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The National Trust of Korea, NT)의 최중기(인하대 해양과학과 명예교수)공동대표를 포함하여 NT회원 몇 사람과 함께 지난 2017년 1월 20일~22일(금~일) 일본 쓰시마(対馬島,대마도)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길안내는 '로드 디자이너(road designer)'로 일하고 있는 고광용 선배가 했다. 지난 밤부터 아침까지 중부지방은 대설주의보. 눈이 10cm 이상 왕창 내리는 가운데 겨우 택시를 잡고는 아슬아슬하게 서울역에 도착하여 오전 5시 15분 KTX에 올라타 부산으로 향했다.

7시 40분 경 부산역에 도착하기 직전, 먼저 부산항에 도착한 손안나 선생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 "오늘 파도가 심해서 비가 출항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큰일이'. 나와 고광용 선배는 급히 다른 선사(船社)로 연락을 취해, 급행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어렵게 배를 잡았다. 물론 거기도 파도가 심해서 조건부 취항이라고 한다. 

당초 오전 9시 20분 출항하는 배 예약을 했던 터라 시간여유가 조금은 있었는데, 선사(船社)가 바뀌면서 배와 취항시간까지 변경되어 8시 45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게 되었다. 부산역에서 부산항까지 도보로 5분, 발권하는데 10분, 출국 수속에 10분. 아침식사는커녕 잠시 방문을 하고자 했던 면세점에 갈 여유도 없이 서둘러 승선했다.

아무튼 파도로 인해 출발도 못할 상황에서 갈수 있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다행히 멀미도 없이 한 시간 만에 북섬의 '히타카츠(比田勝)항'에 도착했다.

서울에도 폭설이 내리는 날씨였는데, 재미나고 즐겁게도 이곳 쓰시마에도 눈이 온다. 부산보다 조금 아래인 쓰시마에서 눈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행복한 일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는 30분 정도 인근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에서 산책하려고 출발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채 10분을 걷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눈이 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섬의 강한 바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고통이다. 눈길을 바람까지 맞으며 걷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서 조금은 일찍 점심을 하기로 하고 천천히 방향을 돌려 식당으로 갔다.

쓰시마에 있는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 일본 쓰시마 신년의 부적


▲ 일본 쓰시마 우동이 최고


역시 쓰시마의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두 팀으로 조를 나누어 한 팀은 먼저 식사를 하고 다른 한 팀은 잠시 시내를 산책했다. 쓰시마에서 개발하여 전국화되었다는 오징어 회전건조대에 걸린 오징어가 보인다. 서점, 잡화점, 신사, 카스텔라 빵 속에 팥소를 넣어 말아서 만든 카스마키를 파는 빵집 등을 두리번거리면서 지나친다. 골목골목이 아기자기하고 재미나다.

골목 어귀에 있는 은행 입구에는 신년에 달아둔 부적 같은 것도 보이고, 주택가 사이사이에는 귤나무도 여러 그루 서 있다. 다시 항구방향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우동을 먹었다. 사람이 많고 복잡하여 시간이 걸렸지만, 맛은 좋았다.

이제 식사를 마쳤다. 재일동포 3세인 렌터카 사업자 김삼관 사장에게 미리 예약을 해둔 승용차 4대를 빌려 동쪽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우선 '모기(茂木)'에 있는 '모기하마(茂木浜)해수욕장'으로 갔다. 이곳은 북쪽에 있는 '도노사키(殿崎)'와 함께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 함대 패잔병들이 숨어들었던 곳이다. 넓은 모래사장과 푸른 물이 있어 운치가 넘쳐났다.

모래사장에 감탄을 하고 있을 무렵, 최중기 교수님이 자갈사이에서 모자반을 조금 가져왔다. 역시 해양학자다. "모자반이 많이 자라는 곳은 물고기들이 먹이를 얻거나 산란하기에 적합하여, 환경보존과 어업자원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자원이다. 맛이 약간 씁쓸하기는 하지만 건강식으로 먹을 수 있다. 해조 공업의 원료로 이용되거나 비료로도 쓰인다"라며 조금 먹어 보라고 한다. 

정말 맛만 보기 위해 살짝 먹어보았지만, 마른 모자반이라 별로 맛은 없었다. 물에 씻고 불려서 양념을 해서 먹으면 미역이나 톳처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어디에서나 흔한 해초라고 하니 21세기 구황식품으로 좋을 것 같다. 아무튼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최 교수님은 "모래사장이 상당히 넓은데, 원래는 더 넓었던 것 같다. 입구 우측에 시멘트로 턱을 만들고, 좌측에 돌로 방파제를 만들어 인공이 가미된 이후에 모래유입은 줄고 유출이 늘어난 듯하다"라며 "그대로 두었다면 더 아름다웠을 해변인데 이곳저곳에 공사를 하면서 분위기를 망친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숯공장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데...


▲ 일본 쓰시마 모기해수욕장


▲ 일본 쓰시마 숯공장


이어 해수욕장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숯가마로 갔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떡갈나무(カシワ, 柏) 숯'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다. 사실 나는 떡갈나무 숯보다는 잎에 관심이 많다. 떡갈나무는 참나무의 일종으로 일본에서는 숯으로 많이 쓰는 것 같다.

가정에서 떡을 만들 때 떡갈나무의 큰 나뭇잎을 떡 사이사이에 넣고 싸서 찌면 달라붙는 것을 막고 잎 향기가 떡에 스며든다. 일본인들은 떡갈나무 잎으로 싸서 찐 떡을 지금도 많이 먹고 있다. 나도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기는 하다.

쓰시마에는 삼(杉,スギ)나무, 동백나무, 편백나무 등이 많이 자생하여 나무를 이용한 산업이 많다.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으로 나무를 가공하여 숯과 목재 등으로 많이 쓴다. 변방이라 목재 가공기술과 장비가 부족하지만, 자본과 인력을 투자하면 임산물 가공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숯 공장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데 이곳 쓰시마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감사하고 고마웠다.

이제 길을 조금 더 내려가서 '오시카(小鹿)'쪽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바닷가 방향으로 길을 잡아 '마쓰시마(松島)공원'쪽으로 갔다. 공원 아래에 멋진 몽돌해변이 나온다. 확실히 쓰시마는 진흙이 지하에서 압력과 열을 받아 압력 방향에 수직으로 단단해진 '점판암(粘板岩, Slate)'지형이라 해안 곳곳에 몽돌해안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점판암은 건물의 지붕, 벽, 바닥 등에 건축 재료로 많이 쓰인다.


▲ 일본 쓰시마 통신사 이예 공적비


이곳은 입구에 작은 신사가 보이고, 앞에 몽돌해안, 푸른 바다에 멋진 바위섬까지 풍광이 절묘하다. 나는 돌 구경을 잠시 하다가, 노루의 머리뼈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잠깐 살펴보기도 했다. 사람보다 자연이 좋은 곳이라 그런지 해안선 부근도 볼 것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이어 '사카(佐賀)'에 있는 쓰시마 도주 집안 납골당이 있는 '소가묘소(宗家墓所)'와 '엔쓰지(円通寺)'로 갔다. 나는 초행길인 사람들을 위해 이곳 납골당 안내와 도주 집안에 관한 이야기며 입구에 있는 조선통신사 '충숙(忠肅)공 이예(李藝) 선생의 공적비' 등을 설명했다.

이곳의 지금 모습은 초라하고 작지만, 쓰시마 도주 집안과 사람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안팎을 살펴본 우리들은 점심을 우동으로 간단하게 먹었기 때문에 간식으로 인근 '나가도메카시덴(永留菓子店)'이라는 '타이야키(たい焼き, 붕어빵)'전문점에서 빵을 하나 사먹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쉬는 날이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쉽다. 정말 맛난 붕어빵인데 말이다.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정원을 보다


▲ 일본 쓰시마 감기에는 한방 감기약 갈근탕이 최고


다시 출발하여 '우라소코(浦底)' 남쪽에 있는 대형할인점으로 갔다. 나는 집사람에게 선물할 카메라 삼각대와 아들에게 줄 초콜릿을 조금 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감기가 걱정되어 한방감기약인 '갈근탕(葛根湯)'을 샀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 바람이 심하고 추운 날이라 감기예방차원에서 저녁에 한포씩 강제로 나누어주었다.

몇 사람은 술을 사기도 하고, 음료와 과자, 젤리 등도 조금씩 구매했다. 차량으로 이동할 때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다들 적당하게 산 것 같다. 이제 다시 차를 몰고는 북섬 아래쪽에 있는 '고후나코시(小船越)'로 갔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낮고, 폭이 무척 좁은 곳이다. 인간의 힘으로 배를 좌우로 옮겨 통행을 돕기도 했던 곳이다.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배를 들어서 옮긴 지혜가 대단하다. 물론 지금은 쓰임이 사라진 유적지로만 남아 있다.

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아소만 깊숙한 후미에 자리 잡은 '니시노코기테(西の漕手)'가 나온다. 동쪽에서 서쪽 이곳까지 폭이 160m정도 밖에 되지 않아 작은 배는 육지 위로 끌어올려 넘어가는 것이 충분했을 것이다. 만이 깊고 물이 잔잔하여 호수처럼 보인다. 

겨울이라 벌써 해가 넘어가려고 한다. 급히 차를 쓰시마의 중심이며 시청이 있는 '이즈하라(厳原)'로 이동한다. 슈퍼에서 저녁에 먹을 간식거리를 조금 사고는 시청 옆에 있는 '가네이시성(金石城)터와 정원'으로 갔다. 쓰시마도주가 살던 곳으로 1528년 14대 도주 '소 마사모리(宗将盛)'가 저택을 세웠고, 1669년 21대 도주 '소 요시자네(宗義眞)'가 누문을 만들어 가네이시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일본 쓰시마 덕혜옹주와 소 백작의 결혼기념비


현재 공원에 남아있는 성벽, 성문의 흔적, 정원 등이 옛날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특히 정원은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근세 정원의 보기 드문 디자인과 구조로 유명한 곳이다. 아울러 정면에 남아있는 누각은 지난 1990년에 재건했다. 한국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사실 지난 1931년에 세워진 '이왕가 소가백작 어결혼 봉축 기념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가 있다.

쓰시마 도주의 후손인 '소 다케유키(宗武志)'백작과 덕혜옹주의 결혼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전쟁 후, 정신분열 증세가 악화되자 두 사람은 이혼했고, 기념비는 철거되었다가 2001년 복원했다. 나는 쓰시마에 오면 덕혜옹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난다.

전생에 무슨 인연인지, 내 스스로가 덕혜옹주의 외손자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쩌면 부평초처럼 한일간을 너무 자주 오가는 나의 삶과도 비슷한 것 같다. 조만간 남양주 홍유릉(洪裕陵)에 있는 덕혜옹주의 산소에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


 ▲ 덕혜옹주의 무덤 남양주시 홍유릉에 있는 덕혜옹주의 무덤


역시 초밥, 맛은 최고인데 서울 반값이라니...


▲ 일본 쓰시마 역시 초밥은 일본



▲ 일본 쓰시마 해 뜬다

자! 이제 저녁식사를 위해서 인근 초밥(寿司,すし)집으로 간다. 역시 초밥은 일본에서 먹어야 한다. 최고의 맛인데 가격은 서울의 반값이다. 13명이 정말 엄청나게 먹고, 음료와 술을 한 잔씩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액으로 2만 5천 엔 정도 나왔다. 서울이라면 50만원은 족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생강에 고추냉이를 적당히 올려 먹었다. 술은 하지 않고 된장국과 녹차로 마무리했다.

이제 숙소가 있는 D호텔로 갔다. 밤이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소리가 좋았다. 방을 배정받았다. 학자답게 최 교수님은 오늘 코스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계신다. 나도 옆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잠시 쉰 다음, 최 교수님과 고 선배와 함께 청주(淸酒)를 한잔씩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일본은 대부분 바닥 난방이 안돼 조금 춥다. 히터(heater)를 틀어보기도 했지만, 감기에 걸리거나 목과 머리가 아플 것 같아서 잠시 틀고는 이내 꺼버리고 잤다. 

21일(토) 아침이 밝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호텔 앞마당으로 나갔다. 바다냄새가 좋다. 서서히 붉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식사를 하기 위해 1층 식당으로 갔다. 창가에 앉아서 일출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다. 정말 조망이 좋은 호텔이라고 하더니 아침부터 최상이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쉰 다음, 호텔 좌측 언덕에 지난 2011년에 세워진 '통신사 황윤길 현창비(通信使 黃允吉 顯彰碑)'까지 산책하며 걸어갔다. 이런 곳에 왜 황윤길 선생의 추모를 뜻하는 현창비가 있는지 정말 의문이었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와서 일본의 조선 침략을 대비하자고 주장했던 황윤길을 일본이 추모하고 있다니(?) 조금은 이상했다. 이런 것을 보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양심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일본 사람들이 곳곳에 많은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통신사 황윤길은 1590년 통신정사(通信正使)로 선임됐다. 부사 김성일(金誠一), 서장관, 허성, 사신으로 온 일본 승려 겐소(玄昭), 수행원 200여명을 거느리고 쓰시마를 거쳐 오사카로 갔다. 일본의 관백(關伯, 왕을 대신하여 정무를 총괄하는 관직)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등을 만나보고 이듬해 봄에 환국하여, 국정을 자세히 보고한 사람이다.



▲ 일본 쓰시마 조선통신사 황윤길 현창비


서인이었던 황윤길은 일본의 내침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주장하였으나, 동인인 김성일은 도요토미의 인물됨이 보잘 것 없고 전쟁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 당시 동인 정권하에서 일본에 대한 방비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리하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임금이 황윤길의 말을 좇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고 한다. 한편, 그는 일본에서 돌아올 때 쓰시마도주 소 요시토모(宗義智)로부터 처음으로 조총 두 자루를 얻어가지고 돌아와 조정에 바쳤지만, 아쉽게도 실용화계획도 세우기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역사가 서인 정권이었고, 황윤길의 주장이 관철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무튼 황윤길의 현창비는 조금은 뜻밖이었다. 그만큼 일본인들이 과거역사에 대해 진실을 알리는 마음과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는 양심적인 백성들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  2017.01.26]

독도본부 2017.01.31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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